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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 황홀한 해넘이…발 아래엔 일망무제 서울이여

[걷고 싶은 길] 남한산성 본성 성곽

2009.08.21 글·사진: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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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성곽
 
도시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숨 막힐 듯한 그곳을 한나절 동안이라도 벗어나고픈 마음에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을 찾았다. 한 해에 2백만명의 방문객이 몰린다는 남한산성은 초입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경기 성남시의 산성역 사거리에서 남한산성 중심지인 종로로터리까지 4.8킬로미터 구간을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에만 40여 분이 소요됐다. 기다시피 해서 도착한 산성 내의 주차장은 입추의 여지조차 없는 듯했다. 주차를 하자마자 주저 없이 국청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청사 부근에는 남한산성 4대문의 하나인 서문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인 1637년 1월 30일에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기 위해 삼전도에 갈 때도 이 문을 통해서 남한산성을 내려나갔다고 한다.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은 인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은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스러운 항복의식을 치러야 했다.

남한산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서문은 ‘우익문(右翼門)’으로도 불린다. 백제 온조왕 때부터 구축된 천험(天險)의 요새이자 천혜의 전망대인 남한산성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이 바로 이 서문이다.

서문 근처의 성벽 위에 올라서면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북악산, 인왕산, 관악산, 북한산 등에 둘러싸인 서울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좋은 날이면 봉긋한 남산 너머로 은빛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인천 앞바다도 아스라하다. 특히 여기서 바라보는 해넘이와 밤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관으로 기억된다.

걷기 코스
 게다가 마천역과 가까워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해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맨 먼저 통과하는 곳이다. 그런 이점 때문에 서문은 남한산성 본성의 성곽을 따라 온전히 한 바퀴 도는 일주 트레킹의 시점이자 종점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남한산성 성곽의 길이는 총 11.7킬로미터에 이른다. 그중 본성은 9.05킬로미터이고, 나머지 2.71킬로미터는 옹성(甕城)이다. 성곽은 주봉인 청량산(4백97.9미터)을 중심으로 북쪽의 연주봉(4백67.6미터), 동쪽의 망월봉(5백2미터)과 벌봉(5백15미터), 남쪽의 이름 없는 봉우리 몇 개를 연결해서 쌓았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백제 1대조인 온조왕 13년(BC 6)에 산성을 쌓고 남한산성이라 부른 것이 처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 뒤로 신라 문무왕,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에 개축했다고 전해온다. 그러다 인조를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하게 만들었던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 2년(1624)부터 2년 동안 대대적으로 개수한 것이 오늘날의 남한산성이 되었다.

남한산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룬다. 그러나 성곽 안쪽에는 평균 해발고도 3백50미터 내외의 완만한 구릉성 분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우물 80개와 샘터 45개소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

밖에서는 제법 험준해 보이지만 안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야말로 천혜의 전략요충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자연 지형에 순응하며 완만하게 오르내리거나 구불거리는 남한산성의 성곽을 따라 걷는 내내 발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북문과 동장대 암문 사이의 성곽 길. 하남시와 구리시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가깝게 보인다.
북문과 동장대 암문 사이의 성곽 길. 하남시와 구리시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가깝게 보인다.
 
남한산성은 숲이 좋다. 특히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 북문에 이르는 탐방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다. 서울 근교에 이처럼 아름답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수령이 70~90년에 이른다는 이곳의 소나무들은 일제강점기에 주민 3백3명이 벌목을 금지하는 금림조합(禁林組合)까지 결성해서 보호한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원스런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찾아가기도 편리한 남문~서문~북문 구간에는 걷기를 즐기는 트레커(trekker)들보다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놀러 온 행락객들이 많다. 그래서 다소번잡하고 어수선하지만 소나무숲 특유의 청신한 기운이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만든다. 더욱이 성벽 길 곳곳에 탁 트인 전망터가 형성돼 있어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상쾌한 조망을 누릴 수 있다.

북문(전승문)을 지나면 성벽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숲도 소나무 일색에서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뒤섞인 혼합림으로 슬그머니 달라진다. 그러다 2.9킬로미터에 이르는 북문~동문(좌익문) 간의 중간쯤에 위치한 동장대 암문을 지나서부터 소나무는 찾아보기 어렵고,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그 숲을 가로지르는 길은 적막강산처럼 인적이 뜸하다. 덕택에 새소리, 바람소리가 한결 가깝게 들려온다. 녹음 짙은 숲을 쓰다듬듯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유난히 맑고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남한산성 숲길은 참 걷기 좋아요. 너무 힘들지도 편하지도 않게 적당히 오르내리거든요. 그리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꽃 피는 봄날도 좋고, 눈 쌓인 설경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그래서 이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근심 걱정도 사라지고, 한 2년 동안 매주 걸으니 몸도 몰라보게 건강해졌어요.”

매주 한 번씩 부인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서 약 5시간 동안 일주 트레킹을 즐긴다는 김몽석(58) 씨의 남한산성 숲길 예찬론이다.  

‘우익문’으로도 불리는 남한산성의 서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 문을 통해 삼전도로 내려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우익문’으로도 불리는 남한산성의 서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 문을 통해 삼전도로 내려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동장대 옛터와 동문 사이에는 장경사 신지옹성과 장경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옹성은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해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본성의 성벽 아래에는 옹성으로 통하는 암문이 설치돼 있어서 적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드나들 수 있다.

장경사는 산사다운 고즈넉함과 호젓함이 돋보이는 절집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수할 당시 축성공사에 동원된 승군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 세운 여러 절집 가운데 하나다. 축성공사에 동원된 승군들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성곽 방어에 필요한 훈련을 받으며 계속 주둔했다고 한다.

당시 장경사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망월사, 옥정사와 새로 지은 국청사, 개원사, 한흥사, 동림사, 천주사, 남단사 등 9개 사찰을 승군들의 거처로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사찰은 장경사뿐이다. 남한산성의 제일 명당터를 “차지한 덕택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전쟁을 비롯한 전란 속에서도 거의 피해를 보지 않고 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문 옆으로는 남한산성을 관통하는 산성로(342번 지방도)가 지난다. 고요한 숲길을 걸어오다가 갑작스레 만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성벽 곳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에 가슴이 활짝

어느덧 시곗 바늘은 오후 5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애초 계획한 대로 계속 성곽 길을 따라서 남문을 거쳐 서문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서문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장관을 놓칠 수 없기에 비교적 시간이 덜 소요되는 동문~종로~침괘정~수어장대~서문 코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단축코스라 해도 줄곧 약 2.5킬로미터의 오르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병자호란 당시 총지휘부가 자리했던 수어장대를 빼놓을 수는 없다.

청량산 정상의 수어장대에 도착했을 때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수어장대 앞의 성벽에 서니 설핏 기울어진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서울 강남지역의 시가지와 한강, 남산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서둘러 달려간 서문 근처의 성벽과 그 아래의 빈터에는 이미 수많은 사진동호인들이 자리를 잡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 상공을 뒤덮은 먹장구름이 여기저기에 소나기를 퍼붓는 광경이 또렷하게 보였다. 결국 아쉬운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서울 전경은 황홀한 해넘이와 찬란한 저녁노을보다도 긴 여운을 가슴에 남겼다.  

문의·남한산성관리사무소(031-743-6610)  

◆ 여행정보

▲ 숙박=전체 구역이 국가에 의해 문화재(사적 제57호)로 지정돼 있는 남한산성 내에서는 숙박업소를 운영할 수 없다. 숙박업소를 이용하려면 성남 시내나 광주 쪽으로 나가야 한다.

▲ 맛집=남한산성 내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오복손두부(031-746-3567), 함지박(031-744-7462), 몽두가(031-746-6574) 등 76개 업소에 이르는 산성 안의 음식점들은 토종닭백숙, 훈제오리, 손두부(주먹두부), 산채정식, 한정식 등을 주로 내놓는다. 맛과 메뉴, 가격은 서로 비슷한 수준이다.

▲ 가는길=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송파나들목(342번 지방도) → 산성역 사거리(좌회전) → 남한산성 입구 삼거리(좌회전) → 산성터널 →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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