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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한국,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세계 첫 사례

글·사진:위클리공감 2009.11.23

11월 25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다. 1945년 광복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 선진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1969년 우리나라는 당시 돈으로 8백억원에 가까운 지원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다. 정부 예산 규모가 3천억원에 불과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원조(ODA)로 ‘연명’했다는 표현이 적합한 대표적인 ‘수원(受援)국’ 신세였던 셈이다. 이 돈은 각종 사업에 투입되면서 경제개발의 종잣돈 구실을 톡톡히 했다.

우리나라는 DAC 가입국 중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성공적인 변산을 한 유일한 사례다.
우리나라는 DAC 가입국 중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유일한 사례다.
 
40년이 지난 2009년, 우리나라는 한 해 9천3백50억원(지난해 기준)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 공여(供與)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11월 25일 우리나라는 원조사(史)에 한 획을 그을 또 다른 도약을 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별회의에서 ‘개발원조위원회(DAC)’ 정식 멤버로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22개국이 가입된 DAC는 전 세계 대외원조의 90퍼센트를 담당하며 국제사회 원조의 규범을 세우는 국제포럼이다. 한국이 DAC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진정한 ‘원조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에 비해 한참 모자랐던 국제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 기준을 뒤늦게나마 맞추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DAC 가입은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성공적 변신을 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2차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원조를 받은 대부분의 국가는 부패한 정치 환경 등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됐지만 한국만 그 수렁을 빠져나왔다”며 “국제무대에서도 원조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또 “DAC 가입국 중 개도국 경험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살리면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원조 공여국과 수원국 간의 연결고리’라는 차별화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1945년 광복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원조 액수는 1백27억 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6백억 달러, 7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수원국의 지위를 졸업했다.

한국의 국제 지원 확대는 개도국의 식량 부족과 질병문제 등에 대해 범세계적 차원에서 대처한다는 보편적 의미와 함께 국제사회로부터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도 있다. 단편적인 예로 6·25전쟁 때 한국에 군대를 보내 피를 흘리며 함께 싸웠던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 우리나라는 지난해 각각 8백95만 달러, 4백19만 달러, 1백33만 달러를 지원했다.

개도국 경험 있는 한국, 수원국-원조 공여국 연결고리 될 것

한국은 올해 DAC에 가입하고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데 이어 2011년에는 1백50여 개 공여국과 협력 대상국 정상 또는 장관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제4차 원조효과고위급위원회(HLF4)를 개최한다. HLF 회의는 3년마다 열리는 원조 분야 최대, 최고위급 회의로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다.

국제원조
 이처럼 세계 원조사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은 물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막 선진국 클럽에 턱걸이했을 뿐 ODA 규모나 국민 의식 등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국제사회에 지원한 ODA는 8억 달러로 주요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미국 2백60억 달러, 독일 1백40억 달러, 영국 1백10억 달러, 일본 93억 달러 등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네덜란드(70억 달러), 스위스(20억 달러)보다도 적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지출 비율은 0.09퍼센트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 1인당 ODA 기여액도 16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DAC 가입국 평균은 1백34달러다.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액이 경제규모에 비해 적은 것은 아직까지 ODA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남을 도와주느냐”는 것이다.

한국개발전략연구소가 지난해 외교통상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2퍼센트는 “한국의 대외 원조가 국가 이미지 및 국제 지위 향상 등 국익에 기여한다”며 ODA의 취지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현재 원조 규모를 늘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현 수준 유지’(53퍼센트),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28퍼센트)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다.

우리나라 ODA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아직 선진국형 ‘받는 나라 중심의 원조’가 아닌 ‘주는 나라 중심의 원조’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향후 원조 금액을 돌려받는 차관 성격의 유상 원조는 최소화하고 무상 원조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01에서 2007년 DAC 회원국이 지원한 액수 중 무상 원조 비율은 87퍼센트에 이른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59퍼센트만이 무상 원조였다.

또한 ODA를 지원하면서 관련 물자나 건설업자를 자국에서 충당하도록 강제조건을 다는 방식인 ‘구속성 원조’의 비율도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인 김은미 이화여대 교수는 “어려운 나라를 돕는다는 기본 취지에서 벗어나 ODA를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돈 쓰고 욕먹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ODA정책이 명확하게 정의된 원칙과 철학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다수 DAC 회원국은 기본법이나 정책선언문으로 대외 원조정책에 대한 목표와 방침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년간 ‘ODA 기본법’ 채택문제를 놓고 행정부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들이 각자 발의한 서로 다른 5건의 ODA 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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