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영역
울산의 보물 ‘반구대 암각화’가 잠기고 있어요
한국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알게 됐다는 정무송(25)씨는 선사시대의 유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찾아왔다가 큰 낭패를 당했다.
망원경을 들고 한참을 살펴봤지만, 암각화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 정 씨는 암각화 주변에 비치돼있던 팸플릿 하나를 집어든 채 아쉬움의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 |
반구대로 가는 길 흐르는 강물과 울창한 나무숲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 암반에 새겨넣은 여러 가지 모양의 바위그림이다. 암각화란 바위 ‘암(巖)’ 새길 ‘각(刻)자’로 바위에 새긴 그림을 뜻하며, 주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의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이다.
현재 울산 반구대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돼 있다.
각 동물의 모습은 비교적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데 육상동물로 함정에 빠진 모습 호랑이와 새끼를 밴 호랑이, 교미하는 멧돼지, 새끼를 거느리는 사슴 등이 있다. 바다고기로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이 표현돼 있기도 하다.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됐다. 이런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겼다.
![]() |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망원경을 사용하고 있다. |
이렇듯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1971년 처음 발견된 이후, 세계적인 문화유산에도 이를 수 있다는 역사적 기대와 가치를 한 몸에 받았지만, 1995년 국보(제285호)로 지정된 뒤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보호 대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1965년 완공된 ‘사연댐’의 방류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는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이다. 매년 8개월 여를 이렇게 물 속에 잠겨있는데 물이 부족한 시기인 갈수기에만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물에 잠겨있다 보니 이끼가 발생하고, 각종 침식작용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조치를 통해 암각화가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논의되고는 있지만 울산시의 식수 확보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 |
반구대 암각화의 세부사진. 가운데 고래의 형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 역시 울산 반구대를 직접 찾아가봤다. 반구대로 가는 길은 긴 계곡과 울창한 나무숲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공원의 입구에는 저수지와 다양한 수상식물들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저수지 왼쪽 편으로는 산책로 같은 흙길이 있었다.
흙길은 주변 내연산을 등산하고 온 등산객들과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흙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에는 공룡발자국과 천전리각석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줬다. 1km쯤 걸었을 때 반구대 암각화 안내판과 함께 계곡 건너 암각화가 보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에 눈을 대고 암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울산시 동구에 거주하고 있다는 권은지(24)양은 “울산시민으로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친구들이 울산에 놀러오면 항상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주요 관광지로 추천하곤 했다.”며 지역의 유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권 양은 그러나 “다녀온 친구들이 망원경으로도 암각화를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할 때마다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속이 상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반구대 보호의 필요성을 느껴야 빠른 시일 내에 그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홍보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
많은 사람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고 있다. 역사적 유물에 대한 많은 이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반구대 보호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울산시 수돗물평가위원회 주관으로 국회의사당 대회의실에서 ‘수자원 확보와 연계된 암각화 보존방안’이란 주제 발표가 진행됐고, 앞서 1일에는 정부와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만나 암각화 보존해법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또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수리모형실험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김철용 담당자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중요현안으로 삼고 국무조정회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합의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 문화재청 뿐만 아니라 사연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력공사, 국가의 수자원을 관리하는 국토해양부, 그리고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해 있는 울산시 등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의사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며 “시간이 갈수록 훼손되는 암각화의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빠른 의견조정이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
암각화가 쉽게 보이지 않자 한 어르신이 모형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
울산시의 최경환 담당자도 “울산시 차원에서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그러나 “식수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수위조절이 울산시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시행되는 수위모형실험을 통해 수위조절안과 물길변경안의 과학적 타당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울산시민이 원하는 안정적 식수확보와 울산의 보물인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 노력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반구대 박물관과 암각화 공원 등이 설치돼 있어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또한 반구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암각화가 물에 잠겨있는 상황이여서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 해결방안이 좀더 빨리 모색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 이맘때쯤 반구대를 다시 찾았을 때에는 암각화를 관람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정책기자 김수정(대학생) moduenjoy@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