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퍼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부산과 마산의 첫 글자를 따 ‘부마항쟁’이라고 명명됐지요.
당시 시위는 부산대 학생과 시민들이 주축이 돼 시작됐고, 사태가 확산되자 임시 휴교령, 비상 계엄령, 위수령 등이 잇따라 선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1560여명이 연행됐고 군사 재판에 회부된 시민만 120여명에 달했습니다. 부마항쟁의 민주화 열기는 이후 10·26을 촉발해 유신붕괴를 앞당겼고, 5·18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책브리핑에서는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협조로 40년전 그날을 사진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중심가의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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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중심가를 행진하던 시위대의 모습을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촬영 시점은 1979년 10월 16일, 또는 17일로 추정된다. 정 전 기자는 사진 촬영 장소를 부산 중구 광복동 일대로 증언하고 있으나 인근의 상점가의 모습을 감안할 때 광복동에 인접한 오늘날 중구 동광동 1가에서 중앙동1가 방면을 향해 촬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부산 중심가인 서구 · 중구 · 동구 전체가 시위대로 가득 찼으며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유신독재체제 성립 이후 일어난 시위 대부분은 대학생이 중심이었고 일반 시민의 참여는 미비했으나 부마민주항쟁의 경우 회사원, 노동자, 상인, 접객원, 실업자 등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독재정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촬영 :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부마민주항쟁 당시 온천장을 통과하는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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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교내 시위를 계기로 일어났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캠퍼스를 빠져나와 시내로 진출했으며 시민들이 이에 합세해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했다. 이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 캠퍼스를 빠져나와 금정구 온천장을 통과해 시내로 진출하는 학생들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교대 앞에서 시위대를 저지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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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부산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의 시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사진은 부산교대 인근에서 시위대를 저지하는 경찰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부산 시내에 대기중인 경찰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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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이 발발한 10월 16일부터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시위대의 규모는 경찰만으로 진압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서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기동대를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도로를 질주하는 경찰 페퍼포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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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이 한창이던 10월 17일 밤 중구 광복동의 도로를 질주하는 경찰 페퍼포그 차량을 촬영한 것이다. 페퍼포그 차량이 내뿜는 최루가스도 시위대를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부산지역에 내려진 계엄포고문을 읽고 있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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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부산 지역에 주둔하는 군 병력과 공수부대들이 시위 진압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부산 중심가에 배치된 계엄군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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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직후인 10월 18일경 부산 시청 인근에 배치된 계엄군의 전차를 찍은 사진이다. 전차 외에도 공수부대와 해병대가 부산 곳곳에 배치돼 항쟁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사진촬영 :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국제신문사와 부산 MBC가 입주한 부산 국제회관 건물에 배치된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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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당시 서울은 물론 부산, 마산 지역의 주요 언론사들도 극심한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해 항쟁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계엄령이 내려진 뒤 계엄군이 언론사에 배치돼 언론통제는 더욱 강화됐다. 사진은 국제신문사와 부산MBC가 입주한 부산의 국제회관 빌딩을 경비하는 계엄군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계엄군이 배치된 동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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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와 함께 항쟁에 적극 참가한 동아대학교에도 계엄령과 함께 공수부대가 배치됐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석방되는 부마민주항쟁 참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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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수의 부마민주항쟁 관련 수감자들이 석방됐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다시 체포돼 고통을 겪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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