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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 음악가들, 그들의 삶과 예술

[클래식에 빠지다] 오데사의 음악가들

2022.03.10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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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의 오데사(Odessa in Ukraine)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면적의 땅을 가지고 있다. 분리되기 전에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러시아 음악가들 중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음악가들이 상당수 있다.

클래시컬 심포니와 발레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Prokofiev) 또한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철강 산업도시인 드니프로에서 태어났고, 피아노의 제왕 호로비츠(Horowitz)는 수도인 키예프 출신이다.

하지만 여러 도시들 중 우크라이나의 예술가들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지역이 있다. 바로 ‘오데사’인데, 이 곳은 우크라이나 남서부에 위치해있으며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흑해를 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 도시는, 항구도시답게 상공업이 발달해있으며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밀과 곡물을 서유럽으로 수출하는 중요한 반출항이다.

지금은 휴양지이지만 역사적으로도 오데사는 1905년 러시아혁명의 발단을 제공한 도시로서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으나 이를 지켜왔으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의 풍광과 흑해의 아름다움은 음악 미술, 문학 등 훌륭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대문호 푸쉬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의 첫 장은 오데사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나폴리를 생각나게 하는 세계적 칸초네 <오 솔레미오(O Sole mio)>도 사실 작곡가인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가 오데사 여행 중 흑해의 햇살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20세기 최고의 기악 연주자들 중에는 유독 오데사 출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당시 오데사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연주자들 이였는지, 또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해바라기 들판. (사진=저작권자(c) Xinhua/Chen Junfeng/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해바라기 들판. (사진=저작권자(c) Xinhua/Chen Junfeng/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바이올리스트로서 그를 정의 내리자면 모든 바이올리스트들이 한 번쯤은 빠져보았고 그처럼 연주하길 바랬던 연주자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그의 연주에서 보여지는 풍부한 저음과 따뜻한 톤 그리고 균형 잡힌 해석은 많은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주곤 했는데, 나 또한 그의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었으며 유학시절 그의 연주 비디오를 보며 많은 공부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1908년 오데사에서 태어난 그는 스승인 스톨야르스키(Stolyarsky) 문하에서 일취월장하며, 비에냐브스키 콩쿨입상과 이자이 콩쿨(후에 엘리자베스 콩쿠르)을 우승하며 서방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 시절 많은 대가들이 콩쿨을 통하지 않고(콩쿨도 많이 없었겠지만) 명성을 얻은 것에 비하면 29살까지 경연대회를 나갔던 오이스트라흐는 대기만성형의 연주자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자주 해외 초청연주를 하였고 부를 쌓을 수 있었으나 스탈린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정부로부터 많은 착취를 당하게 된다.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착취와 정치적 위협을 피해 망명의 길을 걸었지만, 오이스트라흐는 고향을 사랑하였던 듯하다.

망명한 동료음악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그의 음악을 생각하며 “척박한 땅일수록 포도나무의 뿌리는 더 깊게 내린다”고 표현했다. 그의 음악과 소리의 깊이가 그가 살아온 발자취와 맞물리며 여러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는 러시아의 훌륭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를 했다. 대표적으로 근 현대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프로코피에프, 카발레프스키등의 작품을 초연하며 헌정 받았다.

보통 뛰어난 연주가가 좋은 스승이 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오이스트라흐는 교육자로서도 아주 훌륭했다.

그의 아들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Igor Oistrakh)를 비롯해 올레그 카간(Oleg Kagan) 그리고 우리시대의 최고의 연주자인 기돈 크레머까지, 현대의 수많은 러시아 연주자들 중 많은 이들은 오이스트라흐의 가르침을 통해 세계적으로 성장하였다.

◆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연주를 하고 있는 나탄 밀스타인. (사진=기고자 제공)
연주를 하고 있는 나탄 밀스타인. (사진=기고자 제공)

중고생시절 밀스타인의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커플링 음반은 내가 가장 많이 즐겨 듣던 음반 중 하나였다. 비엔나 필하모닉과 아바도의 지휘로 레코딩된 이 음반은 그의 나이 70세에 발매되었는데, 나이를 잊게 만드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음정의 정확도와 활 쓰기에서 느껴지는 운궁의 힘, 담백하면서도 비르투오소적인 그의 연주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탄 밀스타인은 오데사에서 다비드 오이스트라와 같은 선생인 스톨야르스키에게 수학했고, 이후 하이페츠의 스승이자 유럽최고의 교육자였던 레오폴드 아우어를 사사했다.

오이스트라흐가 더 일찍 타계했기 때문에 선배연주자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밀스타인이 4살더 많은 선배였고, 좀더 일찍 명성을 얻어 활동했다.

그는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음악가인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와 공연을 자주했으며, 이후 역시 동향인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와 함께 트리오공연을 하며 전 유럽에 명성을 쌓아갔다.

20대초반 그의 연주를 들은 전설적인 바이올리스트 외젠 이자이는 “더 이상 나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을 정도로 그의 연주실력은 이미 최고수준에 올랐던 듯하다.

그는 항상 겸손했으며 인터뷰에서 자신은 절대 천재가 아니라고 종종 말했고, 그런 태도는 그가 80대에도 연주자로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연주력을 보여주는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음반 중 60대 이후 레코딩을 최고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70세가 다되어 녹음한 바흐의 음반과 83세의 나이에도 독주회에서 샤콘느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그를 보면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의 바흐 무반주 레코딩은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를 타기도 했다. 밀스타인의 연주스타일은 굉장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정말 쉽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과하거나 지나침 없이 연주하는 그의 스타일은 마치 동양사상의 중용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며, 감정을 머리로 컨트롤하며 연주하는 모습에서는 그의 연주철학과 사상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기계적인 연습보다는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중요시하라고 조언했고, 동시대 최고 바이올리스트인 하이페츠(Heifetz) 또한 제자들에게 밀스타인의 연주를 보도록 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대에 이미 미국에 정착한 밀스타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동료 우크라이나 음악가들과 함께 멋진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 에밀 길렐스(Emil Gilels)

건반 위의 사자라고 불리는 피아니스트 에밀 길레스 역시 오데사 출신으로 오이스트라흐, 밀스타인과 같은 유대인가정에서 태어났다.

17살에 전 소련연방콩쿨에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비엔나와 이자이콩쿨(현재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그의 연주는 바이올리스트로 표현하자면 오이스트라흐와 같은 중후하면서도 품위 있는 연주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그의 베토벤연주를 좋아하는데 자주 듣는 협주곡 4번과 5번은 이보다 더 뛰어난 연주를 찾기 힘들다는 느낌을 준다.

냉전시대 길렐스와 오이스트라흐는 소련을 대표해 미국에서 연주하는 국가대표와 같은 연주자로,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역사가 깊은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는 공산당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길렐스의 연주는 때론 몰아치듯이 강하고 한편으로 너무 서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표현이 일품이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안정적이면서 절대 정도를 벗어나는 법이 없는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와 네이가우스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또 다른 대가 리히터(Sviatoslav Richter)는 길렐스의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초연을 보고 더 이상 그 곡을 연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연주가 너무 완벽해 더 이상 자신이 보태거나 빼기 힘들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리히터에 따르면 길렐스는 성격적으로 자존심이 아주 강하여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누구나 존경하던 스승 네이가우스에게 자신은 더 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그로 인해 리히터와도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중하며 경이로운 피아니스트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은 단순히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료진의 실수로 주사를 잘못 맞아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가 도이치 그라모폰과 10년에 걸쳐 베토벤 전집을 계획한 여정은 미완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여러 레코딩과 영상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감동을 주고 있다.

◆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숄렘 알레이헴(Sholem Aleichem)은 오데사와 키예프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이다.

그의 연작 <우유배달부 테비에>는 우크라이나 유대인사회를 그린작품으로 이후 이 작품은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재탄생했다.

작품 속 그의 세 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혼하지 않았고 자신도 추방당하게 되는 삶을 그리고 있는데, 고달픈 삶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활기차며 어둡지만은 않다.

결정적 장면마다 나오는 바이올린연주자는 “인생은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는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주제곡 <Sunrise, Sunset>처럼 해가 뜨면 다시 지게 마련이며 시간은 떠오르는 해처럼 다시 희망을 가져올 것이다. 스티브 핑거가 말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오길 바래본다.

☞ 추천음반

오이스트라흐와 길렐스의 베토벤과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는 어느 음반을 들어도 항상 좋다. 밀스타인의 무반주 바흐와 차이코프스키, 멘델스존 협주곡은 앞서 언급한 데로 그의 연주철학을 느낄 수 있는 명반이다.

이외 우크라이나 출신 연주자로 오이스트라흐가 경계했던 바이올리스트 보리스 골드스타인(Boris Goldstein)과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의 연주도 추천한다.

끝으로 리히터의 베토벤 <비창 2악장>과 호로비츠가 연주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와도 같은 음악이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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