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의 시선
“잘 다녀오겠습니다!”
생일 아침, 짤막한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전역한 지 일주일 만에 자유 찾아 국토종주 대장정에 오른 녀석은 분명 대한의 아들이었다.
‘허태준(2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해양경찰학과 졸업, 학군사관(ROTC)으로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복무(5개월간 ‘세월호’ 수색 구조활동).’
20대 초반의 이력이다. ‘4대강을 낀 국토현장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취업역량 강화를 위한 정신력을 배양하며, 국토종주 인증을 통한 성취감 고취’란 세 가지 목적으로 장장 660㎞ 자전거길을 힘차게 달려나갔다. 더욱이 올해는 광복 70년을 맞는 해여서 그 의미는 남달랐다.
3월 8일부터 14일(6박 7일)까지 진해, 부산에서 서울, 인천에 이르는 국토종단 저전거길 현장을 달리며 보고 느끼며, 깨닫고 체득한 그의 도전기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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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 고락을 같이할 종주 물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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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에서 인천에 이르는 660㎞의 국토종단 자전거길 지도를 펼치며 완주 각오를 다진다. |
#2. 아들의 시선
1일차(진해~부산, 46.43㎞)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쾌조의 출발이다. 진해 벚꽃 꽃망울의 연한 냄새를 맡으며 부산으로 질주한다. 장도에 오르면서 철저히 점검했다. 그런데 아뿔싸, 짐받이가 말썽이다. 신경을 썼는데 출발부터 탈이다. 결국 작은 배낭만 짐받이에 고정한 후 큰 배낭은 둘러메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 후, 한때 한강 이남 고시 1번지로 불렸던 서면 학원가에 들어섰다. 뒷세대들이 꿈을 향해 청춘을 불살랐던 현장을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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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하구둑 인증센터에서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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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길을 달리는데 때맞춰 독수리가 나를 반기듯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한다. |
2일차(부산~창녕읍, 105.36㎞) ‘대충’은 ‘화근’의 불씨
본격적인 라이딩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첫 지점에 서니 마음 벅차다. 국토 종단의 출발점에서 완주를 다지며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얼마 못 가 또 짐받이가 문제를 일으켰다. 이 때문에 30분 차질을 빚었다. 창녕함안보 인증센터 매점에서 에너지바를 먹는데, 허술한 짐받이가 영 마음에 걸린다. 안전부주의사고의 화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가 경계해야 할 안일한 자세가 ‘대충대충’, ‘빨리빨리’라는 걸 자각하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반적인 자전거 점검에 들어갔다. 특히 짐받이를 단단히 고정시키는데 중점을 뒀다. 손품이 많이 들어간 만큼 안전은 가까이 다가선다.
3일차(합천창녕보~칠곡보, 126.27㎞) 컨디션 ‘흐림’, 주인 호의에 ‘쾌청’
밤잠을 설쳤다. ‘안전’의 중요성이 가슴을 억눌러서일까. 나 홀로 자전거길이 고독한 여행길이라는 걸 절감한다. 컨디션 저조로 두 바퀴가 무겁다. 태양은 날이면 날마다 새롭다고 했던가. 다사한 햇살이 앞길을 환히 밝힌다. 에너지가 재충전된다. 이에 고무돼 힘내 달렸다. 몸과 마음이 무거워선지 타이어 바람이 자꾸 새나가는 것 같다. 코스 중간에 설치된 공기주입기로 바람을 채운 뒤 악착같이 나아갔다. 에너지가 소모되고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오늘 구간 완주의 뿌듯함이 밀려든다. 파김치가 돼 숙박업소에 들어갔는데, 대박이다. 친절한 주인은 세탁까지 해준다. 이런 행운이 어디에 있을까. 내일은 정말 쾌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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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보 인증센터에 들어서니 완주가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시작은 반이라 했고, 또 반을 더 달렸으니까. |
4일차(칠곡보~문경시, 97.89㎞) 70대 노익장, 활기찬 터닝포인트
종착지 중간, 아침을 맞는다. 마음을 다잡아 핸들을 힘차게 당긴다. 스트레칭으로 푼 몸이 한층 가볍다. 자전거 무료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은 후 상주 자전거박물관 매점에 들렀다. 뜻밖의 분을 만났다. 평소 라이딩을 즐기는 김갑복(부천·70) 어르신이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주신 그 어르신은, 나와는 거꾸로 “인천에서 부산으로 국토종주 대장정에 나섰다.”라고 말씀해주신다. 평소 한강 자전거길을 자주 다녔지만, 이번 국토종주는 처음이다. 대단한 노익장이다. 노년의 삶이 활기차다. 20대와 70대 라이더가 국토종단 길 중간 지점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로또복권을 움켜쥔 행운을 맛본 것 같다. 신선한 터닝 포인트다. /namose-span">/namose-span">>/>/namose-span">>/>>/>>/>/namose-span">>/>>/>>/>>/>>/>>/>>/>/namose-span">>/>>/>>/>>/>>/>>/>>/>>/>>/>>/>>/>>/>>/>>/>>/>/namose-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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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한 이화령 고개. 조국의 산야를 굽어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
5일차(문경건강랜드~충주시, 82.96㎞) 맞바람에 애면글면, 코스 두 동강
수안보온천으로 이동하던 중, 모처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취미생활로 라이딩을 하는 30~40대의 동호인이었다. 이들은 하루 150~160㎞를 달린다. 나와 견줘볼 때 꽤 능숙해 보인다. 직장을 다니면서 짬을 내 종주 여행을 떠나는 그들은 자전거 마니아였다. 계획에 차질을 빚은 구간이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어제 구입한 안약으로 시린 눈을 달랜다. 맞바람은 전진하는데 큰 장애물이었기에 하루 만에 주파할 코스를 두 동강 낼 수밖에 없었다.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된비알을 바람 안고 애면글면 오를 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벽에 맞닥뜨린 심정이었다. 반면, 바람을 등지고 내리막길을 미끄러질 듯 질주할 땐 ‘룰루랄라’였다. 결국 예정된 여주시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충주에서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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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 인증센터. 자전거도 지쳐 드러누웠다. |
6일차(비내섬 인증센터~여주시, 64.67㎞) 열정에 휩싸여 전진, 또 전진
불금, 불타는 금요일이다. 목표 지점을 하루 앞두고 내달리니 힘이 불끈 솟는다. 쌓였던 피곤이 일순간 달아나고 활력이 넘친다. 공격적인 사고가 나를 열정에 휩싸이게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를 떠올리며 세차게 달렸다. 국토종단 완주 깃발이 눈앞에 어린다. 또 내일은 어떤 기분일까. 여주 시내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대망의 인천 아라뱃길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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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의 희열을 맛본 종착지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 |
7일차(광나루 인증센터~아라서해갑문, 136.34㎞) ‘고진감래’ 희열 맛봐
최후 관문이다.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한 후 페달을 밟았다. 이 구간에서 말썽이 생겼다. 새벽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 굽잇길을 돌 때 3번이나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빗길 또는 눈길에는 감속이 필수임을 피부로 느꼈다. 설상가상, 최초로 타이어가 펑크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펑크 때울 도구를 지참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길가 안전한 곳에서 자전거를 수리하고나니, 나 자신이 대견했다.
광나루 인증센터에서 아라서해갑문까지 136㎞를 달렸다. 참 산뜻한 하루였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상쾌한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드디어 목표지점 앞이다. 자동차 못지않은 가속도가 붙는다. 마지막 순간 쾌속질주를 맛보는 기분이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간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가셨다. ‘고진감래’의 희열이 온몸을 감싼다.
#3. 다음은 부자지간 일문일답
-전역 후 휴식기를 취할 만도 한데, 국토종주 도전을 기획한 이유는?
군 복무 때 자전거로 진해~창원을 오가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때 자전거 국토종단을 결심했다. 고행의 가시밭길이 인생살이에 소중한 자산을 안겨줄 거라는 확신이 섰기에, 선뜻 감행하게 됐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특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신경 쓴 점은?
국토종주 경험자들이 올려놓은 인터넷 정보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준비를 했다. 특히 안전사고에 꽤 신경을 썼다. 4대강 자전거길은 대한민국이 조성한 또 하나의 걸작이다. 전용도로는 차도와 분리돼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외 펑크 등 고장 시 응급처치할 수 있는 공구와 비상약을 챙겼다.
-4대강 자전거도로의 좋은 점과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기본 차도와 분리돼 안전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도심을 통과할 때 이정표가 명확하게 표시돼 있지 않아 헤맸다. 또 그 지역 사람들조차도 자전거도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전거길이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선 폭넓은 홍보와 함께 도심으로 들어서는 지점의 이정표를 분명하게 표시해 초행길 라이더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인증수첩에 중복된 인증센터(낙동강 상류 자전거길 페이지 ‘상주 상풍교’와 새재 자전거길 페이지 ‘상주 상풍교’)의 경우 그에 따른 설명을 곁들였으면 좋겠다.
-진해~부산~서울~인천까지 660여㎞를 달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람과 언덕, 경사도다. 셋 다 라이딩을 할 때 라이더에게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특히 맞바람을 안고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었다. 이때문에 하루 일정을 늦추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구간 경사도를 사전에 고려해 일정을 잡아야 하고, 쾌적한 라이딩을 위해 물품을 자전거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안목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극복했을 때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완주 성취 소감과 또래 취업준비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토종주’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졌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극기’ 난관을 극복하니 자신감이 충만했다. 주변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 취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들에게 빡센 ‘나 홀로 여행’을 추천한다. 모든 걸 자기 혼자서 계획, 실행하고 사이사이 시행착오를 겪으면 뭔가 스스로 사고하고 해결하는 힘이 길러진다. 인생 전체를 ‘여행’이라 생각할 때,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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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 인증수첩과 자전거길 체험소감문, 그리고 한국수자원공사 발행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동의서. |
#4. 아버지의 시선
“오르막 뒤엔 내리막 진리 체득한 값진 경험”
“내 페이스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자유 만끽’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갑작스럽게 부닥치는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고나니, 언젠가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같아 뿌듯했다.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여행이라서 감정 또한 풍부해졌다.”라고 느낀 점을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광복 70주년에 인생의 소중한 자산을 거머쥔 소감도 밝힌다. “660㎞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이어지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거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길 뒤엔 항상 내리막길이 있구나.’ 삶도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시점에 서있는 걸까.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오르막길 앞에 당도해 있다.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면 ‘목표 달성’이란 성취감과 함께 신나는 내리막길이 펼쳐질 것이다. 정말 찰나였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의 사이클에서 목표를 향한 열정을 체득했다.”며 완주 포만감에 젖는다.
국토종주 후 아들은 많이 달라졌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어졌다. 일과에 맞춰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내일 할 일을 미리 챙기는 치밀함도 보인다. 야무진 생활태도에 갈채를 보낸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도전하라, 극복하라, 그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프리랜서. 관심분야는 교육, 환경, 보건이고, 우리말글 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