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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만난 박목월, 김동리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경주 현장 탐방기

2018.05.17 정책기자 김은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주말 아침, 서울역에서 KTX를 탔다. 열차는 경주로 향했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현장 탐방.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코레일의 주최로 열리고 있는 올해 세 번째 행사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우리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선현들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현장을 인문학자와 함께 탐방함으로써 인문학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인문열차에 타기 위한 신청 경쟁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신경주역 전경.
신경주역 전경.

인문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창밖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2시간 조금 넘어 도착한 경주, 참으로 빨라진 세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신속해지는 교통의 발달이 전국을 이웃사촌으로 만들 태세다. 

박목월 생가를 방문한 인문열차 참가자들.
박목월 생가를 방문한 인문열차 참가자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학창시절 한 번쯤은 수학여행으로 다녀갔을 법한 곳이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국사책에 조그맣게 삽입되어 있던 흑백 사진을 떠올리고 배운 내용을 되새김질했을 것이다.  

경주는 신라의 역사가 곳곳에 숨 쉬고 있고, 각종 전설이나 설화가 산이나 절, 탑 등에 스며들어 있는 것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천년고도의 넉넉한 품으로 김동리와 박목월이라는 한국 현대문학의 두 거목을 품고 있다.  

박목월 생가를 방문한 인문열차 참가자들.
박목월 생가를 방문한 인문열차 참가자들.

두 사람 모두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에서 보낸 시절과 바라본 풍경을 작품 속에 짙게 반영하고 있다. 한 참석자는 “경주하면 신라를 떠올리지, 김동리와 박목월을 떠올려 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목월 생가 앞의 밀밭.
박목월 생가 앞의 밀밭.


먼저 건천읍 모량리에 있는 박목월 생가를 찾아갔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서 노래한 푸른 밀밭이 생가의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탐방 해설을 맡은 김주현 경북대 교수가 시인 박목월을 소개하고 있다.
탐방 해설을 맡은 김주현 경북대 교수가 시인 박목월을 소개하고 있다.

탐방 강사로 일정을 함께 한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박목월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청록파’ 시인”이라고 설명하며 “경주 태생답게 그의 작품 속에 경상도 사투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라고 덧붙였다.

박목월 생가에 세워진 박목월 동상.
박목월 생가에 세워진 박목월 동상.


박목월 이름에는 ‘국민시인’이란 호칭이 붙여진다. ‘송아지’, ‘뻐꾸기’, ‘청노루’, ‘윤사월’, ‘그리움’ 등 우리가 즐겨 애송하고 있는 시들이 그 호칭을 입증하고 하고 있다. 국민시인을 탄생시킨 그의 생가를 거닐어 보며 시인이 느꼈을 당시의 풍광을 상상해 보았다 .

박목월 생가에 세워진 시비.
박목월 생가에 세워진 시비.

경주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꼽히는 쌈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토함산에 있는 불국사로 향했다. “안개를 토해낸다 하여 토함산이라 한다.”는 김 교수의 재미난 설명을 들으며 불국사에 들어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임을 증명하듯이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불국사의 다보탑.
불국사의 다보탑.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과 석가탑을 비롯해 수많은 국보, 보물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기 때문일까. 불국사에 들어서면 긴 역사를 품고 있는 터의 위엄이 느껴진다. 불국사를 보며 자랐을 박목월도 시로 ‘불국사’를 노래하기도 했다.

불국사를 탐방하고 있는 관람객들.
불국사를 탐방하고 있는 관람객들.

불국사 근처 진현동에 ‘동리목월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3월 문을 연 이 문학관에는 동리관, 목월관이 따로 있다. 경주에서 자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 두 사람의 작품 세계와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동리목월문학관의 목월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적들.
동리목월문학관의 목월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적들.

목월문학관에는 박목월의 시를 낭송하는 내레이션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가장 진실한 의미가 전달된다.”며 “박목월의 시 낭송 육성자료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동리목월문학관의 목월관에 재현된 서재 모습.
동리목월문학관의 목월관에 재현된 서재 모습.

“나는 늘 혼자였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박목월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 선배이자 문학적 동반자였던 소설가 김동리를 만나면서 고독감을 달래고,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회고록이 전시실 벽에 적혀있다.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 속 김동리의 흉상.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 속 김동리의 흉상.

목월문학관 맞은편에 위치한 동리문학관. 김동리는 1913년 성건동 출생으로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을 통해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의 갈등에 주안점을 뒀다. 대표작으로는 ‘화랑의 후예’, ‘무녀도’, ‘역마’, ‘황토기’, ‘등신불’ 등이 있다. 소설 ‘을화’로 노벨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 내부 모습.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 내부 모습.
 
20대 초반에 출가를 비장하게 결심했으나 “가부좌가 안 되는 바람에 뜻을 접었다.”는 솔직한 고백에 웃음이 나왔다. 30대 중반에 좌파 논객들과 사상 논쟁을 벌이면서 민족문학의 대표 주자로 나서게 된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이후 40~50대를 거치면서 토속적인 감성에 빠져든 사연이 이어진다.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에 재현된 서재 모습.
동리목월문학관의 동리관에 재현된 서재 모습.

작가의 서재도 재현되어 있다. 도자기와 문갑 등 고풍스러운 집기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서재의 벽면에 한문으로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서재를 바라보니 창작을 위해 작가가 고민했을 고통의 시간이 책상을 통해 전달되는 듯했다.

두 곳 모두 작가의 흉상으로 시작하여 자필 원고, 문학 자료, 생활유품, 서재 재현 등으로 똑같이 구성됐다. 마치 사이좋은 형제의 방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두 거목의 우정은 우대의 문학관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옥룡암의 탑곡마애불상군.
옥룡암의 탑곡마애불상군.

경주에 두 작가의 흔적만 있는 건 아니다. 경주 남산에 자리한 옥룡암은 탑곡마애불상군과 함께 오래전부터 유명 문인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널리 알려졌다. 탑곡마애불상군은 높이 9m, 둘레 26m에 이르는 거대한 화강암에 탑, 여래상, 나한상 등 40여 개의 조각이 사방에 새겨져 있는 보물 제201호다.

저항시인 이육사도 폐병 요양차 옥룡암에 3개월 머물며 호형호제한 신석초 시인에게 외로움을 푸념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 속에서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 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는 당시 경주에 대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 

월성에서 바라본 풍경.
월성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김동리와 박목월로 돌아가 그들이 사색하며 걸었을 월성(반월성)으로 향했다. 김동리는 ‘수도산과 반월성이 내 교실이다’ 라고 줄곧 말했다고 한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월성이라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반월성이라고 불렸다. 935년까지 신라의 중심 궁성이었다. 월성 주변은 선생님과 역사탐방을 나온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주요배경이 된 예기소.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주요배경이 된 예기소.

월성에서의 산책을 끝내고,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주요배경이 되는 예기소로 향했다. 예기청소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소설 속의 모화가 굿을 하다 빠져 죽은 곳이다. 서천과 북천이 합쳐지는 지점으로, 방향이 다른 두 물줄기가 합류하면서 소용돌이가 일고 땅이 패어 소가 생겨났다.

금장대 전경.
금장대 전경.

예기소를 끼고 작은 동산이 높이 자리하고 있다. 금장대라 한다. 금장대 위에 올라서면 아래로 펼쳐지는 예기소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예기소가 ‘무녀도’의 배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 모화의 정한이 스산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예기소.
금장대에서 바라본 예기소.
 
신라의 역사만을 생각하며 여행했던 경주가 다르게 다가온 하루였다. 김동리와 박목월이 태어나고, 성장해서 문학에 큰 획을 긋도록 품을 내어준 경주다. 인문열차를 타고 찾아온 객에게 경주는 그렇게, 새로운 문학적 시선을 선사했다.

 

김은하
정책기자단|김은하mlkway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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