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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의 활동무대가 넓어지고 있어요

2024.05.24 정책기자단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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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꺼졌다. 공연장이 어둠에 갇힌 듯했다. 연주자, 관객 모두가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앞의 무대 쪽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가 김광진의 ‘편지’를 연주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한 곡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오롯이 청각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더욱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귓가에 강렬하게 울렸다. 연주가 끝나자 조명이 켜졌다. 이어서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전시 및 공연이 열리고 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전시 및 공연이 열리고 있다.

무대의 주인공은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였다. 시각장애인 이상재 음악감독을 위시하여 총 25명의 연주자가 활동하고 있다. 15명의 시각장애인과 10명의 비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17년간 무려 670여 회의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사랑의 선율’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공연에 앞서 이상재 단장을 만나봤다. 춘추관에서의 공연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연주하고 있다.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연주하고 있다.

이상재 단장은 “저희 악단은 공연을 많이 하는 클래식 전문 오케스트라입니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가입니다. 저희 같은 시각장애인이라도 곡을 연주함으로써 많은 분께 감동을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완벽하게 연주하기까지 무수히 많이 연습해야만 합니다. 시각장애가 있어서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무대에 대기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만지고 있지만, 그들의 앞에 악보대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상재 단장은 “공연에 앞서 연주할 곡의 목록이 정해지면 악보를 점자로 찍어서 단원들에게 배포합니다. 단원들이 집에서 점자 악보에 맞춰서 각자의 연주 부분을 연습하고 또 연습합니다. 거의 완벽하게 연주할 때까지요. 그런 뒤 단원들이 모두 모여서 연습합니다. 처음부터 단원들이 화음을 맞춰서 연주하는 건 아니었어요. 단원들이 모여서 연습할 때면 어긋나거나 잘못한 부분을 수정하면서 맞춰가는 과정이 있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곡 연주가 완성됩니다. 제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지휘자 역할도 겸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오로지 소리에 의존해서 화음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비결은 연습에 있었다. 그렇기에 단원들은 서로의 화음을 맞출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단다.

장애예술인에게 절실한 것은 전시든 공연이든 그들의 활동 무대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장애예술인에게 절실한 것은 전시든 공연이든 그들의 활동무대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재 단장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애예술인들도 음악을 전공했고 예술인활동증명을 받은 분들이에요. 하지만 장애예술인들은 비장애예술인들에 비해 활동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다행히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에 관한 지원법률이 제정되었고, 현 정부 들어서 장애예술인 지원을 확대하고 있어서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장애예술인 인식 개선은 국민 누구나 장애예술인의 공연을 관람하러 찾아와 주시는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장애예술인에게 절실한 것은 그들이 연주할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애예술인이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도 정작 그들이 연주할 무대가 없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재 단장은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에서 공연한다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큽니다. 과거 이곳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국민 누구나 이곳을 방문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서 연주하는 저희 오케스트라가 국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청와대에서 공연하고 있죠”라고 덧붙였다.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이름에 시각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뺀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한 화음과 선율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공연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어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배은주 상임대표(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는 “예술은 모든 사람을 통합할 수 있어요. 그 안에는 울림을 주는 감동이 있거든요. 그런데 장애예술인 공연은 끈기와 열정으로 승화하는 인간 승리가 내재되어 있어서 더욱 큰 감동을 주고 있어요”라고 소감을 밝힌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리는 장애예술인 전시를 구경하러 온 장애인 관객들도 여럿 있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리는 장애예술인 전시를 구경하러 온 장애인 관객들도 여럿 있었다.

장애예술인에게도 활동무대가 필요하다. 전시든 공연이든, 그들의 활동무대가 넓어지고 있어서 반갑다. 이런 장애예술인 지원정책의 배경엔 지난 2020년 5월 20일 제정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예술인 지원법’)이 있다. 

장애예술인 지원법은 장애예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 실태 조사 및 지원 계획 수립, 창작활동 지원, 작품 발표 기회 확대, 고용 지원, 문화시설 접근성 제고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장애예술인들은 그동안 공연장 등의 문화시설에 접근하기 어렵고 창작·연습 공간과 작품 발표의 기회가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해왔다. 장애예술인 지원법이 마련된 후로 현 정부 들어서 장애예술인들을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제도를 시행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총 847개 기관이 창작물 구매 전체 총액을 기준으로 3% 이상을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창작물로 구매해야 하는 제도다. 우선구매제도의 시행으로 장애예술인들의 자립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에서 장애예술인이 공연하고 있다.(사진=모두예술극장)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에서 장애예술인이 공연하고 있다.(사진=모두예술극장)

작년 10월에 서울 충정로역에 인접한 구세군빌딩에 우리나라 최초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 ‘모두예술극장’을 개관했다. 모두예술극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모두의 예술극장으로 탄생했다. ‘장애든 비장애든 가리지 않고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예술’이 ‘모이는’ 공간이다.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이 있다면 표준전시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스퀘어 별관에 장애예술인 표준전시장을 조성 중이라고 한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장애예술인 표준전시장의 개관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무장애공연이 열릴 때 제공했던 프로그램북에 점자도 표시되어 있다.
국립극장에서 무장애 공연이 열릴 때 제공했던 프로그램북에 점자도 표시되어 있다.

국공립 문화시설의 장애예술인 공연·전시 정기 실시 의무화도 있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장애예술인 음악가의 ‘함께, 봄’ 공연을 관람했던 적이 있다. 무장애 공연을 지향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협연하는 방식이다. 아마도 국공립 문화시설의 장애예술인 공연·전시 정기 실시 의무화가 된다면 더 많은 장애예술인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에 시행된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장애예술인 창작물 유통 플랫폼도 구축 중이다. 장애예술인 지원 예산 확대 등으로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장애예술인 지원정책으로 전국 곳곳에서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장애예술인 지원정책으로 전국 곳곳에서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만나 본 장애예술인은 신체가 불편할 뿐이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각자의 재능이 있었다. 그런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니 그들이 주는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장애예술인들은 이구동성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원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장애예술인 지원정책에 눈길이 간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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