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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me의 웹문화보기34] 블로깅의 즐거움

사상의 분실(分室)이자 인적 네트워킹의 장(場)

200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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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화에 관한 칼럼을 주로 쓰는 탓에, 내게 블로그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난 블로그가 뭔지 잘 모른다. 난 분명 블로거이지만 블로그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블로그가 뭔지 명확히 설명해줄 능력은 없다. ‘몰라도 괜찮다’ 라고 말하거나 ‘써보면 알게 된다’ 는 게 내 무성의한 답변의 전부이다.

블로그가 웹과 로그의 합성어이며, 살람 팍스라는 청년이 시작했고, 트랙백과 RSS를 채택한다는 식의 설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른 이에게도 그러하듯, 내게 블로그는 여러 의미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고료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내가 쌀값을 벌고 가스비를 내고 술값을 마련하는 건 순전히 블로그 덕이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매체 특성에 맞게 고쳐 싣고, 블로그에 올렸던 서평과 독서 메모들을 원고의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며 트렌드와 최근 이슈를 알게 되고 글감을 정한다.

5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글쓰기를 시작한 내게 블로그는 일종의 데뷔 무대였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에 이런 저런 얘기를 올리다가 전문적인 분야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고, 이후 직접 블로그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됐고 ‘readme 파일’ 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런 면에서 내게 블로그는 일터가 되고, 내 사상의 분실(分室)이 된다.
내 블로그

예순이 넘은 어머니께서는 매일 내 블로그를 방문하여 모든 글을 꼼꼼히 읽으며,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의 일상을 전해 듣고, 덧글로 당신의 메시지를 남기신다. ‘mizzsong님의 블로그 편지’ 라는 고정 메뉴를 만들어 드렸더니 이 곳을 통해 이런 저런 얘기를 펼쳐 놓으신다. 한의사인 형님은 ‘readme 파일’에 글을 싣는 또 한 명의 필자이다. 체질이야기와 진료 에피소드, 자작시를 올리고 있다. 이런 면에서 블로그는 우리 가족 대소사의 공개 게시판이 되기도 한다. 30대 블로거(나, 작은 아들)와 40대 블로거(형, 큰 아들)와 60대 블로거(어머니)가 블로그를 통해 나누는 대화가 블로그를 방문하는 이들에겐 일종의 ‘읽을거리’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블로그에 재수 시절 담임선생님에 관한 추억을 에세이 형식으로 올린 적이 있다.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것은 순전히 선생님의 빛나는 시 강의 때문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썼던 이 글을 선생님으로부터 시를 배웠다는 어떤 네티즌이 읽게 되었다. 이 분의 도움으로 12년 간 만나지 못했던,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시를 강의하고 계신 선생님과 해후하는 감격을 맛봤다. 이 ‘사건’은 블로그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는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

내 블로그 또는 다른 이의 블로그를 통해 의견을 서로 교환하는 것을 ‘블로깅’이라고 하는데, 블로깅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혜택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블로그에는 그 사람 특유의 문체가 묻어나기 마련인데,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면 온라인을 통해 가져왔던 인상이나 짐작이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블로거들과 의견을 주고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친분도 쌓여간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떤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남겼던 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메일로 본인 소개와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귀국하면 꼭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사겠다는 코멘트와 함께. 이런 면에서 블로그는 인적 네트워킹의 매력적인 장(場)이 된다.

누군가 블로그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말 못하겠다. 당신이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 나무가 될 수도 물고기가 될 수도 있다. 많이 그리다 보면 그림 좋아하는 이들과 주말 오후 이젤에 캔버스를 챙겨 봄 소풍을 갈 수도 있겠다. 그런 게 블로그다. 생활의 즐거움, 또는 생활의 고단함, 혹은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 그게 블로깅이다. 블로거가 되어 블로깅을 하면 알게 된다.

* 이 글은 '서울예대학보' 에 실었던 글입니다.

국정넷포터 이강룡 readme@readme.or.kr

<이강룡(readme)님은> 99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하여, 인터넷한겨레 웹기획자, 와이더덴닷컴 TTL 웹PD 로 일했으며, 2002년 12월 '우리말글 바로쓰기' 사이트 기획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2003년 11월 열린책들 단편소설공모에 당선됐고, 현재는 웹진 'readme 파일' 을 운영하며 여러 매체에 웹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readm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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