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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함께 ‘12월의 독서산책’

2022.12.07 정책브리핑 이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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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함께 ‘12월의 독서산책’

  • 첫눈과 함께 ‘12월의 독서산책’ 하단내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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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과 새로운 해를 앞둔 설레는 마음 사이에서 읽을 만한 12월의 추천도서를 소개합니다.

1. [문학] 이국에서│이승우, 은행나무

오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이국에서』의 '작가의 말'에 작가는 이렇게 썼다. “어디에나 있는 다른 나라, 그리고 한 사람 안의 외부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했다. 황선호라는 신념을 지키고 싶으나 자신의 보스의 뇌물 스캔들을 뒤집어쓰게 돼 '보보민주공화국'으로 숨어 있어야만 하는 인물을 둘러싼 필연으로, 혹은 외부인이거나 내부인으로, 정당한 자유를 꿈꾸며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인물들로.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그 평범한 인물들이 만들고 가꿔가는 작은 세계에 우리는 황선호처럼 감탄하고 스며들게 될지 모른다. 황선호는 보스의 명령과 그 조직을 이끄는 ‘기린’의 권유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선택을 하게 되었으나 그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리는 결말에서의 선택은 ‘남을 위한 일이어도 네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충고와 맞닿아 있고, 독자도 그와 함께 안도하게 된다.

구원과 자유의 문제, 숨겨진 진실과 생의 무거움에 대해 이승우만큼 고집스럽게 천착하는 작가도 드물다.

“투명한 하늘과 순수한 햇빛”의 도시 보보에서 그가 만나게 되는 희망의 실마리들은 무엇일까. 읽는 내내 긴장과 두근거림 때문에 책을 쥔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책을 다 덮고 나선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둘러싼 안전하지 않은 이 공동체에서 비밀리에 반복되고 있는 정치(精緻)한 음모들 때문에. 이 소설적 허구가 단지 이국에서 일어난 한시적인 사건이기를.

_조경란 위원, 소설가


2. [인문예술]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오월의봄

인문학을 날카로운 비판과 면밀한 해석을 통해 인간 됨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김순남 선생의 이 책은 가족에 관한 좋은 인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가족이 위기를 겪고 있다거나 가족 제도 내지 가족 구조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은 이 책에서 이러한 위기 내지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 묻고 있다. 선생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족 구조의 변화를 단순히 가족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할뿐더러 위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 이유는 가족의 위기라는 표현은 이미 어떤 정상적인 가족의 모델을 전제하는데, 그것은 이성애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 모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현재 가족의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인 가족의 모델로 되돌려야 할 비정상적인 변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대신 선생은 오히려 현재의 가족의 변화를 통해 가족구성권의 문제를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사고하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족구성권 개념은 다양한 가족의 차별 해소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선생은 이 개념에 기반을 두고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것은 퀴어, 장애인, 비혼 여성, 싱글맘, 빈민 등과 같이 기존의 정상적인 가족 구조에서 배제되거나 그 속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가족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려는 기획이다. 

가족 제도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인데, 이 책은 그 제도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간명하고 정제된 글쓰기가 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더 많은 독자들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가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_진태원 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3. [사회과학] 하버마스와의 대화│한상진, 중민출판사

글로벌 시대의 전 지구적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영화와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대중 문화의 '한류'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 진지한 영역인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여전히 서구의 이론가와 사상가들이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을 '지방화'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서구의 사회이론을 지방화하려면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서구 사상을 대표하는 이론가의 한 사람인 하버마스와의 대화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40년 이상의 긴 세월을 하버마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여 연구했고 하버마스를 한국에 초청하여 한국학계와 하버마스와의 대화의 장을 마련한 한상진 교수의 대화록이다. 1995년에 시작되어 2018년 코로나19 이전까지 계속된 하버마스와 한상진의 지적 교류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하버마스와의 언론매체를 위한 인터뷰, 독일의 하버마스 저택으로 가서 사적으로 나눈 경험을 쓴 탐방기, 1996년 하버마스의 한국 방문 뒷이야기와 하버마스가 한국 방문 후 보낸 편지 등이 파도처 럼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책의 마무리 부분의 부록에서는 하버마스가 한국을 포함해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면서 갖게 된 동아시아의 문명과 현실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이미 1996년에 이루어진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진영 논리로 갈라진 한국 민주주의를 예견한 듯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악마로 만들지 않도록 보장하는 자유주의 정치문화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종교적 소수자와 낯선 사람을 용인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시민적 예의가 우세한 시민사회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족이나 집단에 대한 애착과 함께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합니다.” 

대화체의 글이라 사회철학이나 사회이론에 관심이 있는 일반 교양층 독자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_정수복 위원, 사회학자/작가

4. [자연과학]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김민형, 김영사

수포자가 늘어나는 세상에서 수학함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수학자, 수십 년간 수학을 연구해 온 세계적인 수학자 김민형 교수가 쓴 수학 교양서다. 

세상을 이해하는 효율적인 언어로서 수학의 쓸모를 탐구하고, 역사를 통해 보는 수학의 가치와 매력을 살피면서, 마지막으로 현대의 수학 문화를 이끌어가는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추가된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왜 가장 중요한 수식이며, 음악은 어떻게 수학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플라톤은 왜 수학을 공부하라고 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어떻게 실수의 과정을 거쳐 풀렸는지 등등을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어렵게만 느껴지던 수학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저자가 만난 세계적인 수학자들의 일화와 더불어 현대 수학 문화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어느 수학책에서도 보기 어려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를 통해 현대 수학의 대략적인 흐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수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며, 인류 문화의 일부라는 자명한 진리를 새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_권복규 위원, 이화여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5. [실용일반] 반도체 삼국지│권석준, 뿌리와이파이

‘산업의 쌀’로도 불리는 반도체는 21세기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열쇠다.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 생산의 10%, 전체 수출의 20% 정도를 반도체가 차지한다. 부제목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활로'인 이 책에서 공학자 권석준 교수(성균관대)는 한중일 반도체 산업 현황과 역사, 향후 구도와 전망 등을 기술전략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경제·산업이나 기술개발·반도체 등을 잘 모르는 필자 같은 독자라도 조금만 집중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도전은? 대응 전략은? 중국, 일본 반도체 산업의 허실과 가능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갖는 의미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전쟁의 핵심은? 일본은 국가의 지나친 간섭과 미국의 견제 속에 세계 기술표준과 동떨어진 길을 가다 몰락했지만 소재, 부품, 장비 분야 세계 최고 경쟁력을 바탕삼아 재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 세계 최대 내수시장, 엄청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도약을 꾀하지만 미국의 견제가 강하다.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 미국 논리에 동참하게 되겠지만 중국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중 기술 전쟁, 중국의 반도체 굴기 투자, 미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 대만의 파운드리 지배 등 여건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시의적절한 내부 개혁이 없으면 쇠망할 가능성이 늘 있다.

한국은 뭘 해야 할까? 첫째, 산학연 클러스터·반도체 생태계 활성화로 '슈퍼을'을 양성해야 한다. 둘째, 핵심 기술 인력과 IP(지식재산)를 보호해야 한다. 셋째, 차세대 혁신 기술의 기반인 물리학이나 소재과학 같은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 다변화와 역량 강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그 당시의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을 반드시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간과 자원의 한계가 있으니 그러한 기술을 모두 갖출 수는 없으나, 반도체에 대해서라면, 특히 소재와 공정의 핵심 요소 기술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ASML(반도체 제조용 공정 장치를 만드는 네덜란드 기업)처럼 아쉬운 사람이 먼저 찾아가 읍소할 수 있는, 그런 ‘슈퍼을’의 지위를 국가 차원에서도 반드시 전략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_표정훈 위원, 평론가

6. [그림책/동화] 내가 알던 것보다 사연이 많아! K-요괴 도감│이고은, 후즈갓마이테일

많은 어린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눈을 질끈 감고, 등 뒤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무서운 이야기에 빠진다. 강렬한 자극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로 공포를 대리 체험하며 두려운 세상을 헤쳐 갈 지혜와 용기를 얻고,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기도 한다. 무서운 이야기는 꽤 많은 역할을 한다. K-요괴 도감의 저자도 “무서운 미지의 이야기들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요괴 도감을 그렸다”고 했다.

‘K 요괴도감’은 제목대로 우리 고대 문헌부터 현대 도시의 전설까지, 35종의 한국 요괴를 모았다. 흉년을 일으키는 골칫덩이 강철이, 고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 친숙한 도깨비와 저승사자, 눈코입이 없는 달걀 귀신, 태양의 힘을 가진 신성한 까마귀 삼족오, 그리고 길에서 차를 세운다는 자유로 귀신까지 등장한다. 도감은 이들 요괴를 하나씩 소개하고, 요괴가 출몰한 시기, 지역, 기록된 문헌, 이들의 요괴력을 전한다. 

요괴와 관련된 이야기는 만화로 구성했고, 관련 토막 역사 상식도 담는 등 짜임새 있게 만들어 재밌게 읽으면서도 상식과 정보를 챙길 수 있게 했다.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 한국 요괴는 꽤 독특하다. 무섭지만 해학이 있고, 두렵지만 매우 인간적이기도 하다. 많은 한국 요괴는 희로애락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있기도 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만들어진 캐릭터이기에 우리 조상들의 오랜 삶이 녹아있기 때문일 테다. 그만큼 요괴의 세계는 우리 한국인의 세계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작가도 “한국 요괴는 다른 나라 요괴보다 유독 속설이 많다. 다양한 속설 사이에서 적절한 사연을 고르고, 내 생각을 더해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책의 장점은 일러스트이다. 재미있으면서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요괴들을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아주아주 크다.

_최현미 위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7. [청소년]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신승미,김영선, 다른

한 인간의 삶은 또 다른 인간이 살아갈 길을 결정하기도 한다. 온몸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낸 사람은 후대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 특히 역사적 인물들은 한 사회의 변곡점을 만들어 공동체 전체의 삶을 변화시켰다. 인류는 선조들에게 직,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문명을 이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먼저 살다 간 위인들의 면면을 살피며 각자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성찰해야 한다.

대개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는 청소년기에 멘토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 역할은 부모, 교사, 선배일 수도 있으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인 경우가 많다. 이름난 정치인과 학자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따르고 싶은 롤모델은 한 인간의 삶을 추동한다. 국어 교사 신승미와 김영선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즉 조선 시대 중 후반에 활동했던 일곱 명의 인생과 예술을 소개한다. 허균, 윤선도, 김만중, 이광사, 김정희, 정약용, 조희룡은 모두 유배를 다녀왔다. 15~16세기 관료 중 24퍼센트가 유배 경험이 있고 네덜란드인 하멜과 코끼리까지 유배된 기록이 남아 있으니 이들의 유배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배는 한 인간의 삶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의미한다. 가족과의 이별, 미래에 대한 불안, 축적된 경력의 단절 등 심각한 부작용으로 실패한 인생이 펼쳐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의 내면은 단단하다. 성장 배경, 유배 이유는 물론 유배지의 생활을 통해 이들의 생각과 경험이 어떻게 예술로 발현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부조리한 제도를 비판하며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보였고 실용적인 학문에 힘을 쓴 인본주의자였다는 공통점은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필요한 관점이다. 극한의 상황을 이겨낸 의지와 노력, 현재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치 유배 생활을 하듯 거리두기를 하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삶의 태도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우선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면 자신의 상황과 내면을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배’와 ‘예술’로 엮인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_류대성 위원, 『읽기의 미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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