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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거주 참전용사도 6·25무공훈장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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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 출범 후 첫 해외 이주 수훈자
국가보훈처 제공 인적사항 큰 도움
용학수·김종회 옹 “생전 찾게돼 감사” 
 

용학수 옹

김종회 옹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조사단)이 미국에 거주 중인 6·25 참전용사 2명의 훈장을 찾아줬다. 국가보훈처와 협업해 거둔 이번 성과는 조사단이 공식 출범한 이후 해외 거주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올린 첫 번째 성과다.

조사단은 13일 “6·25전쟁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된 수훈자 중 해외로 이주한 참전용사 2명의 기록을 국가보훈처의 협조로 확인했다”며 “수훈자에게 훈장 수여 사실을 통보한 뒤 주LA 총영사관과 긴밀하게 협조해 수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참전용사가 재외동포법에 따라 해외 이주 전 신상신고서를 관할 보훈청에 제출하면 해외에 거주하더라도 보훈급여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비교적 신상이 명확한 해외 이주 참전용사들의 명단을 수훈자 명단과 비교해 무공훈장의 주인공을 찾게 됐다. 무엇보다 조사단이 해외 거주 참전용사의 인적 자료를 요청했을 때 법령에 따라 해외 거주 참전용사의 인적 사항을 신속하게 제공한 국가보훈처가 한몫을 했다. 그 결과 조사단은 아직도 훈장을 전해 드리지 못한 생존자 용학수·김종회 옹(훈장 수여 당시 일등중사)의 신상을 확인, 이들에게 훈장 수여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

조사단의 끈질긴 노력으로 훈장을 찾게 된 용 옹은 1949년 7월 1일 입대해 1963년 4월 10일 상사로 전역했다. 육군본부와 첩보부대에서 근무하면서 군 작전여건 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1951년 11월 23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김 옹은 1949년 9월 13일 입대해 1954년 11월 1일 일등상사(현재 상사)로 전역했으며, 국군 북진작전과 장병 사기 앙양에 기여한 공로로 1952년 11월 10일 화랑훈장이 결정됐다.

용 옹의 아들 익순 씨는 “단 한 명이라도 훈장을 찾아주려는 조국의 노력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옹은 “살아생전 국가가 잊지 않고 훈장을 찾아줘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등 현지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미 LA 총영사관 이종돈 영사가 방문해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단은 지난 1월부터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 61명의 수훈자 명단을 육군협회 미 서부지부에 제공하는 등 해외동포사회의 협조를 바탕으로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채무 기자


임채무 기자 < < lims86@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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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국방부의 보도자료를 전재하여 제공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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