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산에 와서까지 우측통행하라고 원참?!”
지난 주말, 북한산을 오르던 몇몇 시민이 불만섞인 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을 오르는 입구부터 산책길 양쪽에 설치된 목데크 중간중간에 큰
글씨로 ‘우측통행’이라고 적힌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게 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산에 와서 자유롭게 산책하며 스트레스 좀 풀고 가려는데 산에서까지 우측통행 간섭이라며 궁시렁거렸다. 그러나 좌측으로 가다 몇 걸음을 못가
이내 마주오는 사람들과 맞딱들이자 얼른 우측으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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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국립공원 순례길 입구에 설치된 게이트에 ‘우측통행’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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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국립공원 둘레길 곳곳에 공원 마스코트와 함께
‘우측통행’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보행문화를 개선하기로 하고, 지난 2010년 7월부터 본격 시행해오고 있다. 우측보행 시행 2년을 훌쩍 넘긴 시점이다. 어린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돌을
지나면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우측보행은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곳곳에서는 좌측 보행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민들로 붐비는 서울 지하철.
1, 2호선 환승역인 신도림역
내 환승통로는 콩나무시루처럼 승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얼마 전부터 이곳엔 통로 보행인들의 우측보행 및 안전 계도를 위해 질서지킴이들이 배치됐다. 실제로
곳곳에서 녹색 형광 조끼를 착용한 질서지킴이들이 마이크로 외치고, 적색
안내봉을 휘저으며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밀물처럼 밀려드는 만원
인원에는 역부족이었다. 지킴이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 보였다.
질서지킴이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 환승통로에서 불과 수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계단으로 가봤다.
승하차 승객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넓은 계단이 펼쳐졌다. 중앙에는
철봉이 설치돼 좌우측보행을 할 수 있도록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는 승객의 경우 우측계단을
이용해 보행을 하는 승객은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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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림
역사 내 환승통로에서 질서지킴이들이 통로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우측보행을 계도하고 있다. |
모두 좌측계단을 이용하다보니 우측계단은 텅텅 비었다. 당연히 전동차에서 하차해 우측보행으로
내려오는 승객들과 마주보며 걷게 돼 혼잡을 이룰수밖에 없었다. 우측계단 사이사이에 ‘우측보행’이란 글자가 선명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승객의
경우 좌측계단을 이용하면 우측계단 이용할 때보다 승차 시 2~3미터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시 지하철 2, 3호선 환승역인 교대역으로 가봤다.
이곳 환승통로 바닥에는 보행인의 편의를 위해 중앙에 노란선으로 표시해 좌,
우측을 구분했다.
친절하게도 통로 위 천장에는 좌측보행(적색 X), 우측보행(녹색 →) 표시까지
해놨다. 하지만 많은 승객들은 우측보행을 하지 않고 좌측보행을 했다.
그러다보니 맞은 편에서 오는 승객들이 얼굴을 찡그린 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학생 정희숙(22) 씨는 “오랜
좌측보행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하철 통로에서 우측보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마주오는
상대를 배려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될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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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계단은 비워둔
채 좌측계단으로만 오르내리니 승객끼리 맞부딪치는 등 혼잡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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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교대역 환승통로 천장에 보행질서를 위해 좌측보행(X), 우측보행(→) 표시를 해 놓고, 맞은편 승객들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대담하게 좌측보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대한민국의 관문, 수도 서울역은 어떤가.
출구 위쪽에 ‘들어오는 곳’,
‘나가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나가는
곳’으로 시민들이 밀치고 들어오니 나가려던 사람이 당황해 갑자기 들어오는 곳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좌측보행을 하는 시민이 많았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대체로
우측보행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관광온
외국인들에게 솔선수범하고 우리의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할 판에 오히려 거꾸로 돼 아쉬웠다.
외부 횡단보도는 어떨까.
마침 ‘민방위의 날’ 훈련이 실시되는 지하철 신도림역 환승주차장 앞 횡단보도.
그 날따라 유동 시민이 많았다. 연신 사이렌이 울리고 훈련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횡단보도 녹색등이 켜지자 급하게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민방위
기를 든 안내 대원들이 이를 제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두 명이
길을 건너자 횡단보도 양측에 섰던 시민들이 기다렸다는 듯 횡단했다. 좌우측 보행을 가릴 것 없이 발길
닿는대로 건넜다. 그러다보니 마주오는 사람들과 뒤죽박죽 뒤섞여 혼잡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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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4번 출구, 문 위에
‘나가는 곳’이라고 표시돼 있지만 시민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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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방위의 날, 신도림역 환승버스 주차장 앞 횡단보도에서는 민방위 대원들이 보행질서 계도를 하고 있었지만 행인들은 막무가내였다. |
그런가 하면 코엑스나 킨텍스 등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일수록 우측보행을 더 잘 지켜 통로가 원할한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해 많은 인파가 서로 맞딱드리거나 뒤섞여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됐다.
우측보행이 본격 시행된지 2년을 넘겨 정착 단계에 이르러야 할 시점에 현실은 아직인
듯보였다. 그렇다면
시민을 계도하는 경찰은 우측보행을 얼마나 잘 지킬까.
정사복 경찰 예닐곱
명이 영등포구 소재 도림천변을 야간 순찰하고, 시내로
들어서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데 모두 좌측보행이다. 횡단보도 바닥 우측에는 우측보행 화살표까지 선명했다. 우측보행을 하고 있는 행인을 배려해 좌측으로 비켜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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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사복 경찰들이 야간 순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횡단보도에서 모두 좌측보행을 하고 있다. |
우측보행을 실시하면 보행속도가 1.2~1.7배 빨라지고, 보행자간 충돌횟수가 7~24% 감소한다. 또
교통사고율도 2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측보행은 또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해양부 교통안전복지과 이경순 주무관은 보행문화(우측보행) 개선을 위해 “지하철공사, 공항공사 및 지자체 등 관련기관과 함께 홍보 포스터,
배너 부착 등을 통해 다양한 대국민 홍보와 계도를 병행하고 있다.”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우측보행 조기교육도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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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보행을 하고 있는 아빠와 아이가 마주오는 외국인과 부딪히게 된다는 우측보행 홍보 동영상 화면. (사진=국토해양부
동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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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컬레이트에서는 한줄 서기보다 안전을 위해 두 줄 서기를 해야 한다. |
한편, 에스컬레이트에서는 일반적으로 한줄서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두줄서기를 해야 안전하다. 급한 사람들을 위해 한쪽
줄을 비워두는데, 한줄서기를 할 경우 한쪽으로 힘이 쏠려 부하가 발생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또 에스컬레이트에서는 가능한 걷지 않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클럽(20-50 클럽)’에 진입했다고 으쓱해하고 있지만, 우측보행만큼은 아직도 후진국 클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은만큼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선진시민으로서 우측보행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 보행문화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정책기자
박동현(회사원) qlove1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