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되찾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국가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광복’. 우리나라는 광복을 통해 일제에 의해 시련을 겪던 암흑기를 지나 밝은 빛을 되찾았다. 광복과 함께 크나큰 희망과 꿈을 품은 우리 민족은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광복을 기념했던 기록과 새 나라 건설의 과정이 담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자료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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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조선 기념엽서 │ 8 × 12 cm │ 1946년 |
힘겹게 찾아온 광복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 36년 동안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기나긴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되찾으며 감격적인 날을 맞이했다. 당시 세계의 여러 신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미국 육군신문 「The Stars and Stripes」1945년 8월 15일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내부적 시선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1면에 크게 적힌 ‘WAR ENDS’가 눈에 띈다. 표제 아래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의) 완전 항복을 선언하다(Truman Announces Total Surrender)’라는 문구를 통해 전쟁의 종식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는 8월 15일 정오, 일본 왕의 항복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당일 이 항복 선언이 한국의 광복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은 그날 오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8월 16일 아침 사람들은 급하게 만든 태극기와 ‘조선 독립 만세’, ‘축 해방’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복의 기쁨을 만끽했다.
힘들게 독립을 되찾았던 우리나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국 독립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조선의 궁궐이 양각된 메달의 앞면 테두리에 ‘조선국(朝鮮國) 독립기념(獨立記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어 광복 1주년이었던 1946년 8월 15일에 미군정청 체신부는 2종의 기념엽서를 발행했다. 이는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엽서로 25전과 5전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 이 중 25전짜리 엽서의 앞면에는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며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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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소식을 전하는 미국 육군신문(Newspaper of U.S Armed Forces) │ 27.8 × 43 cm │ 1945년 (왼쪽)
조선국 독립기념 메달 │ 지름 2.8 cm │ 1945년 (오른쪽) |
영원히 잊지 못할 그날의 기쁨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기념적인 날인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그날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광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했던 기념우표와 엽서, 포스터, 서적 등에서 당시 느꼈던 광복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1946년 8월 15일에는 한반도 지도와 비둘기가 그려진 50전짜리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또한 나라를 되찾은 기쁨을 기념하는 뜻으로 전국에 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는 ‘광복 기념 식목 포스터’를 발행하며 나무심기를 독려하기도 했다.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모자란 화목(火木)이나 시설재목으로 쓰기 위해 일제강점기 동안 나무를 벌채해 가면서 만신창이가 된 우리나라의 숲을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포스터 상단에는 ‘해방 기념 식목, 나라를 위하야 나무를 심읍시다’, 하단에는 ‘전국민이 일치단결하야 산림을 애호합시다’라는 문구가 각각 적혀 있다.
광복을 회고하는 서적도 발간되었다. 1946년 당시 광주부윤(시장)이었던 서민호는 해방 1주년을 맞아 국제 정세와 혼란스러운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해방전후 회고」를 집필했다. 광복 전후의 주요 사건을 정리한 1부와 주요 사건 및 단체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광복 1년 동안의 주요 정치적 사건과 정치 단체의 노선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전통 문학 장르인 ‘가사(歌辭)’의 형식을 빌어 우리 민족의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 그리고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새 나라 건국의 희망을 표현한 「조선건국가사집」이 발행되기도 했다. 표지를 포함해 전체 18쪽의 소책자인 이 작품은 광복 직후에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전체 139행에 이르는 장편가사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를 받다가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된 기쁨을 노래하고,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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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기념 식목 포스터 │ 50.4 × 67.3 cm │ 194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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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 회고 │ 13.3 × 18.3 × 1.3 cm │ 1946년 (왼쪽)
조선건국가사집 │ 13 × 18 cm │ 1945년 (오른쪽) |
새로운 국가 수립의 기록들
안타깝게도 광복의 기쁨은 오래도록 누릴 수 없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분할 점령한 후 국제 냉전이 벌어지면서 또 다른 역경이 닥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어렵게 되찾은 독립 국가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1948년 5월 10일 진행된 총선거에는 다양한 정치 성향을 지닌 후보자들이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200개 선거구의 입후보자 수는 총 948명으로, 전국 평균 경쟁률이 4.7대 1이었다. 입후보자들의 소속 정당과 단체는 48개나 되었고, 무소속 출마자도 417명에 이르렀다. 무소속 출마자중에는 인천의 조봉암, 부산의 김약수 등 중도파 정치인들이 매우 많았다. 5·10 총선거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95.5%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투표를 통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는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헌법 기초위원회를 구성한 후 유진오가 작성한 헌법 초안을 토대로 하여 만든 헌법안은 1948년 7월 12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7월 17일 공포되었다.
헌법이 공포된 후 국회는 바로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거절차를 논의하고 1948년 7월 20일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각각 선출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1호로 관보를 발행하여 국가의 정보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관보 제1호에는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정부조직법, 국무총리 임명에 관한 건, 초대 내각 명단, 대통령 취임사,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 등 새 국가의 기본 틀이 되는 내용이 공시되어 있다. 이처럼 힘든 과정을 거쳐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으며 어엿한 독립 국가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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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총선거 유세 전단 │ 1948년 (왼쪽)
대한민국 관보 제1호 │ 29 × 42 cm │ 1948년 │ 국가기록원 (오른쪽) |
*이 글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이야기 여름호에 실린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