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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행사 자리잡은 5.18 민주화 운동

[5.18 25주년 특집 ①] 의로운 시민들의 항쟁정신 기린다

200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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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월이다. 특히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광주의 5월은 그동안 진실을 밝히려는 수많은 노력에 힘입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의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는 등 그 역사적 의의가 자리매김 됐다. <국정브리핑>은 5.18 25주년을 맞아 민주·정의·인권존중의 5.18 정신을 되새겨 보기 위한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확대되고 전국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광주에서는 5월18일 등교중이던 전남대생과 이를 저지하려는 계엄군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 항쟁의 단초가 된다.

학생수는 점차 늘어나고 이를 막으려는 공수부대의 무차별 과잉진압이 가해지면서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하나로 뭉쳐 결사항전에 들어간다. 이후 광주항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10일만에 처절하게 끝나고 만다.

광주항쟁이 신군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한 뒤 출범한 5공화국 하에서 전국민은 암울한 침묵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독재정권 시대 광주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구속자 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구명운동과 함께 부모자식을 잃어버린 유족들, 부상자들만이 신군부 정권에 맞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80년 5월 이후 7년간의 투쟁이 밑거름이 된 6월 항쟁으로 신군부의 폭압정치가 막을 내리면서 그 동안 광주사태로 매도됐던 5.18의 성격이 민주화운동으로 바뀌고 국회 광주청문회가 열리면서 왜곡 은폐되었던 그 날의 진실이 만천하에 속속 드러났다. 정부도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함에 따라 추모제 등 5월 행사가 합법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했다.

5·18 민주화운동 25주년 기념식을 사흘 앞둔 1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역에 휴일을 맞아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추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995년 들어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신군부 세력에게 역사와 법과 정의에 의한 준엄한 심판을 받게 하였다. 또한 1997년에는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5·18민중항쟁의 복권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17주년 기념식부터는 정부 주관 행사로 바뀌어 열리기 시작했으며 2000년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2년 1월26일에는 ‘광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희생자들이 국가유공자로 명예가 회복되고 그해 7월 망월동 묘지가 국립 5.18 묘지로 승격됐다.

특히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3년,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2년 연속 기념식에 참석해 5.18이 이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의로운 시민들의 항쟁정신을 기리기 위한 국가적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5.18 광주항쟁 정신 계승 발전 주요 일지

1988.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
1990.8.6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5.18 희생자 5006명에 대한 보상금 지급
1995.12.21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1997.5.9 5.18 법정 기념일 제정(정부 기념행사로 거행)
1997.5.16 5.18 망월동 묘지 성역화 사업(5.18 묘지 준공)
2002.1.26 광주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국가유공자로 명예 회복
2002.7.27 국립 5.18 묘지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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