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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사진: '김염'으로 잘 알려진 김덕린 선생의 청년시절
국가보훈부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금광 광부, 영화배우, 가정주부 등 독립을 향해 온몸을 던진 독립운동가 총 28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합니다.
△ 애국장(愛國章) Patriotic Medal
△ 애족장(愛族章) National Medal
· 건국훈장 애국장 19명, 애족장 46명
· 건국포장 29명
· 대통령표창 189명
<건국훈장 애국장>
■ 직산 광산 광부로 입장면 만세 시위를 이끈 김영호·김세철·남기석 선생
세 분은 모두 본적이 미상이고, 1919년 당시 충남권에서 금광으로 유명했던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동료 광부 100여 명을 이끌고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소재 헌병주재소 앞으로 쇄도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사진: <3·1운동시 피살자명부> 1919년 만세 시위 당시 순국한 인사의 성명을 기재한 피살자 명부에 김영호, 남기석, 김세철 선생의 성명이 보인다.
<건국훈장 애국장>
■ 교사로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항일의식을 설파한 김경출 선생
김경출 선생은 부산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비밀결사 '적색 교육 노동자 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식민지 현실의 참혹함을 아동들에게 설명하고 자택에서 항일 선전물 약 400부를 직접 인쇄해 공장 노동자들에게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사진: <동아일보> (1933.12.11.) 비밀결사 '적색 교육 노동자 협의회'의 활동상을 소개하면서, 김경출 선생이 책임자로 선전물을 인쇄·배포한 것으로 보도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고 새기고 장렬히 순국한 이천홍 선생
이천홍 선생은 히로시마 조선소에 강제 동원된 뒤 한인 동료들과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다 1945년 4월, 체포되었다. 같은 해 6월 경찰서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는 글을 새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사진: <특고월보> (1945.6.11.) 선생이 1945년 4월 6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중 같은 해 6월 9일 유치장 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는 내용을 적고 자결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건국훈장 애족장>
■ 항일영화에서 열연하며 독립정신을 전파한 '영화 황제' 김덕린 선생
김덕린 선생은 '김염'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였다. 고모부 김규식 선생이 운영한 남화학원에서 수학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으며, 1930년대에는 다수의 항일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여 한중 양국 국민에게 독립정신을 널리 전파했다.
*사진: 1934년 항일영화 "대로"에서 주연 배우로 열연하는 모습과 청년 시절의 김덕린 선생
<건국훈장 애족장>
■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서고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한 최준례 여사
최준례 여사는 1904년 김구 선생과 결혼한 뒤 남편이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자 4년간 옥바라지를 하였으며 안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한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했으며,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될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사진: <김구·최준례 선생의 가족사진> (1922) 최준례 여사와 남편 김구 선생이 장남 김인과 찍은 가족사진
<건국포장>
■ 경남 진주에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한 최경진 선생
최경진 선생은 1920년 8월경 진주에서 비밀결사 진주소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1921년 3월 진주소년운동회가 새롭게 결성되자 동참하였다. 특히 10대 후반의 학생으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하다 체포되어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사진: <동아일보> (1921.6.24.) 진주소년회 공판 관련 보도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 계획 경위와 더불어 최경진, 김경홍, 박우삼세 선생 등 주도자 3인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제81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사진: '김염'으로 잘 알려진 김덕린 선생의 청년시절
국가보훈부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금광 광부, 영화배우, 가정주부 등 독립을 향해 온몸을 던진 독립운동가 총 28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합니다.
△ 애국장(愛國章) Patriotic Medal
△ 애족장(愛族章) National Medal
· 건국훈장 애국장 19명, 애족장 46명
· 건국포장 29명
· 대통령표창 189명
<건국훈장 애국장>
■ 직산 광산 광부로 입장면 만세 시위를 이끈 김영호·김세철·남기석 선생
세 분은 모두 본적이 미상이고, 1919년 당시 충남권에서 금광으로 유명했던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동료 광부 100여 명을 이끌고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소재 헌병주재소 앞으로 쇄도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사진: <3·1운동시 피살자명부> 1919년 만세 시위 당시 순국한 인사의 성명을 기재한 피살자 명부에 김영호, 남기석, 김세철 선생의 성명이 보인다.
<건국훈장 애국장>
■ 교사로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항일의식을 설파한 김경출 선생
김경출 선생은 부산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비밀결사 '적색 교육 노동자 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식민지 현실의 참혹함을 아동들에게 설명하고 자택에서 항일 선전물 약 400부를 직접 인쇄해 공장 노동자들에게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사진: <동아일보> (1933.12.11.) 비밀결사 '적색 교육 노동자 협의회'의 활동상을 소개하면서, 김경출 선생이 책임자로 선전물을 인쇄·배포한 것으로 보도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고 새기고 장렬히 순국한 이천홍 선생
이천홍 선생은 히로시마 조선소에 강제 동원된 뒤 한인 동료들과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다 1945년 4월, 체포되었다. 같은 해 6월 경찰서 유치장 흙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는 글을 새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사진: <특고월보> (1945.6.11.) 선생이 1945년 4월 6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중 같은 해 6월 9일 유치장 벽에 '조선 독립 만세'라는 내용을 적고 자결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건국훈장 애족장>
■ 항일영화에서 열연하며 독립정신을 전파한 '영화 황제' 김덕린 선생
김덕린 선생은 '김염'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였다. 고모부 김규식 선생이 운영한 남화학원에서 수학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으며, 1930년대에는 다수의 항일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여 한중 양국 국민에게 독립정신을 널리 전파했다.
*사진: 1934년 항일영화 "대로"에서 주연 배우로 열연하는 모습과 청년 시절의 김덕린 선생
<건국훈장 애족장>
■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서고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한 최준례 여사
최준례 여사는 1904년 김구 선생과 결혼한 뒤 남편이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자 4년간 옥바라지를 하였으며 안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한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했으며,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될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사진: <김구·최준례 선생의 가족사진> (1922) 최준례 여사와 남편 김구 선생이 장남 김인과 찍은 가족사진
<건국포장>
■ 경남 진주에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한 최경진 선생
최경진 선생은 1920년 8월경 진주에서 비밀결사 진주소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1921년 3월 진주소년운동회가 새롭게 결성되자 동참하였다. 특히 10대 후반의 학생으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를 기획하다 체포되어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사진: <동아일보> (1921.6.24.) 진주소년회 공판 관련 보도로, 3·1운동 2주년 기념 만세 시위 계획 경위와 더불어 최경진, 김경홍, 박우삼세 선생 등 주도자 3인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