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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향한 '그래도 된다'는 저열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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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말 기준, 한국의 체류 외국인은 26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취업 자격을 가지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56만 명에 달한다. 취업비자가 아닌 거주나 영주 비자를 가지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포함하면, 대략 100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간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사 못 짓는다"라는 말은 이제 흔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는 사회의 지속을 위해 한국에 온 '슈퍼맨'이고 '원더우먼'일 것이다. 외국에서 온 '슈퍼맨'과 '원더우먼'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최근 나주의 벽돌공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벽돌과 함께 묶어 지게차로 들어 올리고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12월에는 영하 20도의 날씨에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동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한, 2024년 말 기준으로 보면, 전체 임금 체불 피해자 28만 3212명 중에 8.2%인 2만 3254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 역시 한국인 노동자보다 2.3배에서 2.6배 정도 더 높게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신체적-물리적 학대, 열악한 주거환경, 임금 체불, 산업재해가 왜 이렇게 자주 발생할까?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인 '슈퍼맨'과 '원더우먼' 이주노동자들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지, 이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제도적 차원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는 구조다.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한국의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근로기준법 제 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국적을 이유로 한 다양한 차별이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직의 자유'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한국인 노동자가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그는 '이직'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이직의 자유가 거의 없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입국 당시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에서 근로를 지속하는 것이 원칙이나, 법에서 정한 사유로 해당 사업장에서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곤란한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이직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존 사업장에서 퇴직 후 3개월 내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바로 출국해야한다.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기도 쉽지 않고, 허용되더라도 3개월 내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사업장 변경 제한이 지속되는 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는 계속해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문화적 차원으로 한국인/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여전히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의 법·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라서 그래도 된다"는 '저열한' 인식들이 지배적이다.
또한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온 사람들", "한국에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는 본국에서 받는 월급의 몇 배를 한국에서 받으니 이 정도 쯤이야 그들도 감수하겠지"라는 생각들이 만연하다.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한국인 고용주 및 동료로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폭력과 학대가 반복되고 이주노동자의 코리안 드림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에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한국 경제에 제공하고 있다. 그(녀)가 일해서 한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은 무시된 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이주노동자는 일터의 동료이자, 지역의 이웃이다. 그(녀)의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일손 부족을 해결해주는 보조인력이 아니라, 동료이자 이웃이라는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던 30여 년 전의 '일손 부족'이라는 상황은 현재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저출생-고령화를 경험하면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학대받고, 임금체불을 당하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일이 반복된다면, 외국인은 한국을 매력적인 취업국가로 선택할 유인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주민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 국적을 떠나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기 위한 제도 개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시작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치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주민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 점점 확산하는 시대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다문화 교육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괜찮은 노동조건의 확보, 괜찮은 거주 환경의 마련, 괜찮은 사회 인프라 구축과 다양한 배경을 공유하는 문화 교류를 통해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와 선주민(先住民)이 조화롭게 일하는 일터, 함께 잘사는 나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