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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과거와 현재·미래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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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말부터 약 1주일 동안 경주에서 진행된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한미 관세협상 난항, 미·중 전략경쟁 등 불확실성이 겹쳐 있었고, 숙박과 교통 등 개최지 인프라와 준비 과정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경주 APEC 정상회의는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을 이뤄냈다. 한국 외교가 경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고,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구체적으로 구현된 사례였다.
결정적 분수령은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실무 차원의 관세협상이 교착되면서 정상회담 전망이 어두웠지만, 미국이 한국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합의안을 채택했다. 투자액 3500억 달러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투자로 분리시키고, 일반 투자 2000억 달러에 대해 10년 동안 분할 납부하되 연간 200억 달러 상한선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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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00억 달러는 우리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감당 가능하고, 한국의 경제 역량 강화를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윈윈(상생)'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안보에서도 중대 진전이 있었다. 한국 정부의 20년 숙원 사업인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미국 동의를 받은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위반 논란 가능성으로 미국은 단호한 반대 입장이었다. 이번에 이를 관철한 것은 두 나라 정상 간 신뢰가 최상급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 향후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와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권한 부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한중 정상회담 또한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파국적 상황이 이어지던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가 됐다. 핵추진 잠수함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고, 북한도 비핵화와 관련해 초강경 비난을 제기한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의미가 깊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무난하게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당연시하는 우익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일 정상회담이 무난하게 진행된 것은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과다.

이처럼 이재명 대통령은 주변국 지도자들의 성향 차이를 넘어 국익 중심의 외교 리듬을 유지하며 균형감과 주도력을 보여줬다.
미·중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도 상징적이다. 미·중 정상은 부산에서 열린 회담에서 서로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당분간 전략 경쟁 차원의 공방전을 자제한다는 태도를 교환했다. 치열한 전략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서 일시적 휴전 기류를 연출한 것은, 한국이 외교 차원에서 신뢰받는 플랫폼 국가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자 외교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주의를 주도하면서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공동 선언문이 채택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뤘다. APEC 정체성은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이기 때문이다. 의장국인 대한민국은 미국 입장과 APEC 정체성을 고려해서 '협력과 연대' 개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경주 선언문을 채택하는 외교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인공지능( AI) 관련 산업 발전과 관련해 글로벌 대응 논의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AI 격차와 기술 불평등이 세계적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전 경보와 공동 대응의 틀을 제시한 것은 책임 있는 선진국 외교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공공외교 분야에서 거둔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성을 모티브로 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서사, 그리고 케이(K)-푸드와 K-뷰티를 결합한 공공외교 프로그램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이라는 점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한미 관계에서 보면 관세 및 안보 합의 문서화와 국회 후속 절차, 핵추진 잠수함 추진 과정에서 차질이나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중 관계 복원에서 혐중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의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초당적 협력 체제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경주 APEC의 성공은 국론 분열의 소재로 악용될 수도 있다.
행사 기간 내내 대한민국 홍보에 집중하면서 참가국들과 쌍방향으로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최상급 공공외교는 일방적인 자국 홍보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쌍방향 소통이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점이다. 한편, 숙박시설 등 인프라 부족 문제, 그로 인한 교통 통제 등으로 외국 주요 참석자 수행원이나 기자 중에 불편을 느낀 사례가 많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성찰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경주 APEC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감 있는 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보여줬다. 한때 국제 원조를 받던 나라가 60여 년 만에 글로벌 경제와 안보 질서의 방향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자리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것은 큰 감격과 자부심을 안겨준다.
그러나 성공의 순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적 합의를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단순히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국가가 아니라, 협력의 틀을 설계하고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는 주도적 협력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 추진력을 유지한다면, 한국 외교는 경주에서 확인된 자신감을 토대로 더욱 큰 도약을 이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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