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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극3특', 초광역 협력 기반의 새로운 균형성장 전략
정부는 지난 9월 30일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설계도'를 발표했다. 비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2015년 수도권에 역전된 이후 2022년 기준 47.5%까지 떨어졌다. 인구의 50.8%, 국가 R&D 예산의 74%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재의 구조에서는 기존의 지역 특화·경쟁 방식만으로는 균형성장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하다. 필자는 지난 정부와 현 정부 모두에서 지방시대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5극3특'을 중심어로 삼아 이번 전략의 의미와 필요성, 핵심 성공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정부에서도 균형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광역시도와 중앙정부 간 지역정책을 조정·통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광역시도 간 협력과 통합 논의도 있었으나, 정책 추진 단위가 17개 광역시도에 머물면서 시도 간 분절과 경쟁 구조가 굳어졌다. 시도 차원에서는 전략산업 투자유치와 인재양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구가 핵심 정책수단으로 부상했으며, 기회발전특구는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 전역에 지정되어 기업·투자 유치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별·지자체별로 분절된 사업 체계는 조정보다는 중복으로 이어졌고, 수도권 일극 체계를 넘어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민주권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은 시도 단위의 분절과 경쟁을 넘어 '5극3특'(수도권, 충청권, 광주·전남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의 5대 초광역권과 제주, 강원, 전북의 3대 특별자치도)을 중심으로 초광역권 단위에서 전략산업을 선정·육성하는 데 방점을 둔다. 정부–지방정부–산학이 함께 초광역권의 전략산업을 선정해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며, 이를 위해 초광역특별협약을 체결하여 기업 유치·투자, 창업생태계 조성, 인재양성 등을 지방정부들의 협력과 연계해 범정부 차원에서 패키지로 지원한다.
이러한 정부의 의지와 전략은 2026년 정부 예산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방거점성장 투자를 위해 29조 2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54% 확대된 규모이다. 이 예산안에는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포괄보조금을 전년 대비 3배 증대한 10조 6000억 원과 거점국립대 육성을 위한 9000억 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정책은 김대중 정부 이후 지역별 핵심전략산업·선도산업을 집중 지원해온 특화산업 정책의 흐름 위에 서 있다. 각 지역의 내생적 역량과 산업 구조에 맞추어 산업을 선택하고 이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산업 클러스터 이론과 지역혁신체제(RIS) 모형이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약 30년간 정부–광역시도 단위로 추진된 균형성장 정책의 결과, 지역의 산업 인프라와 지원 정책들은 넘쳐나고 있지만 기업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이라는 '원심력'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인재와 기업의 '구심력'을 이기지 못한 셈이다. 산업 클러스터는 해당 분야 기업과 기관이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이며, 지역 차원에서 지속적인 전문화와 분화를 통해 산업이 성장하는 가운데 창업과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화·분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정적 규모(critical mass)'가 필수적이다. 기업과 인재가 일정 규모 이상 밀집한 공간에서만 지식 이전·교류·혁신·창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첨단산업은 요구되는 지식·기술 수준이 높고 가치사슬이 복잡해 '결정적 규모'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최근 강조되는 '메가시티' 역시 도시 간 연결·통합을 통해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관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결정적 규모'가 필요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첨단산업 인재들은 평생 동안 여러 차례 이직하며 커리어를 발전시키는데,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평균 2~3년마다 이직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역량은 인재의 이동을 통한 지식·기술의 확산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다. 인재는 우수 기업과 동료가 밀집한 지역에 머물고 싶어하며, 첨단기업 역시 인재가 밀집한 지역에 입지하려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기업과 인재의 집적을 강화하는 '구심력'을 강화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천·경기도는 최고 수준의 대학·연구소·국제공항 등 혁신 자산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지방정부는 재정 자립도도 높아 지역 여건에 맞는 정책을 자율적으로 설계·수행하여 왔다. GTX와 광역버스 등 광역교통망 구축을 통해 수도권은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되었다. 수도권은 하나의 메가시티로써 매끄럽게 연결되어 상호 보완적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구심력'은 이와 같은 요소들이 결합해 형성되고 강화되었다.
'5극3특' 전략은 이러한 수도권의 구심력을 비수도권에서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다. 초광역권 단위로 전략산업을 묶고, 중앙–광역–기초–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초광역특별협약을 통해 정합적으로 추진한다. 협약에는 △인재양성('서울대 10개 만들기') △규제혁신 △R&D·실증 지원 △광역교통망 확충 △지역성장펀드 조성 등 5대 패키지가 포함된다. '5극3특' 권역별 거점을 중심으로 광역교통망이 구축되면 생활권도 확대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특회계 내 '초광역특별계정'을 신설하고, 기존 부처별 지역사업은 패키지 형태로 통합된다.
'5극3특' 전략이 성공하려면 먼저 초광역권 단위에서 전략산업을 선정할 때 과거와 같은 지방정부 간 경쟁과 중복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수도권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산업 구조를 고려해 상호 보완적이고 시너지 효과가 큰 방향으로 선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초광역권에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조직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행정체계가 여전히 광역시도 단위에 기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광역권 차원의 추진 동력과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기업과 인재가 새로운 균형성장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공유하고 실제 전략산업별 특화된 지역을 입지와 정착지로 선택해야 한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 차원을 넘어 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나야 가능하며, 정부는 일관성과 신뢰성을 갖춘 정책 추진을 통해 강력한 의지와 추동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간이 '5극3특'을 새로운 균형성장의 전환 신호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한다면 비수도권 GRDP를 50%로 회복하겠다는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수도권 일극 체계를 극복하고, '5극3특'의 다중심축이 구축된다면 3%대 성장률 회복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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