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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북극항로인가…대한민국의 새로운 길 준비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대륙으로 이어지는 북쪽 육로가 막혀 있으니 고립된 섬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땅속 자원도 넉넉하지 않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과 성실한 노동력뿐이라 자원과 원료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으로 오늘의 경제를 일궜다. 원유와 광물을 들여오는 길도, 자동차와 석유화학제품을 내보내는 길도 결국 바닷길이다. 우리에게 바다는 생존의 통로다.

지난 8월 22일, 이 통로에 새 길 하나가 더해질 가능성을 보여 준 항해가 시작됐다. 부산항을 떠난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베링해협을 지나 시베리아 북쪽 바다를 따라 유럽까지 갔다가 50일 만인 10월 11일 돌아왔다.
국내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로 유럽을 왕복한 것은 처음이다.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운항 거리는 35%, 소요 시간은 10일 줄었다. 배에는 화학제품과 중고차 등 우리 수출화물 737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실렸고, 육상에서는 24시간 모니터링으로 안전 운항을 뒷받침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여름철에 쇄빙선의 도움 없이도 북극해를 안정적으로 지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축치해에서는 밤사이 유빙이 길을 막아 몇 시간을 멈춰 기다렸고, 빌키츠키 해협 입구에서는 얼음을 피해 섬 북쪽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강풍과 추위 속에서 장비 고장도 겪었다. 선원들은 그때마다 현장에서 답을 찾았고, 바람과 수온, 수심, 얼음에 관한 생생한 기록도 고스란히 담았다. 이 기록은 다음 항해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경제성 검증이 끝나지 않았는데 왜 지금 준비해야 할까?
첫째,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수에즈 운하와 홍해, 원유 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분쟁과 긴장에 휩싸이면서 우리 수출입 길이 흔들리고 있다.
선박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느라 운임과 시간이 늘어나는 일도 이미 겪었다. 길이 하나뿐인 나라는 그 길이 막히는 순간 선택지가 사라진다. 북극항로는 기존 항로를 대신하는 길이 아니라, 위기 때 꺼내 쓸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지다.
둘째, 미래 해운 경쟁력이 걸려 있다. 바닷길은 하루아침에 열리지 않는다. 얼음 바다를 아는 선원, 극지 기준에 맞는 선박, 정확한 해빙 정보, 유럽 쪽 물류 거점까지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화물이 있어야 노선이 서고, 노선이 서야 화물이 모인다. 먼저 경험을 쌓은 나라가 항로의 규칙과 시장을 주도하기 마련이고 외신이 이번 항해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극지 운항 선박은 우리 조선산업의 새 일감이 될 수 있고,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부산은 동북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북극항로 활성화를 위해 시범운항 화물과 선종을 확대하고 또 다른 북극항로인 북서항로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항해로 북극항로가 '갈 수 있는 길'임은 확인됐다. 비용과 보험, 화물 유치처럼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아 있고, 수집한 자료의 분석 결과도 곧 나온다. 그러나 길이 필요해진 뒤에 준비하면 이미 늦다.
북극항로는 열린 길이 아니라 준비한 만큼 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연 첫 항로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로 이어 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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