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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예술의 탄생

[클래식에 빠지다] ⑥ 북유럽의 국민악파, 러시아의 5인조 그리고 체코의 민족음악가들

2021.03.26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19세기 초 중반 나폴레옹의 전쟁패배로 열린 빈 회의를 계기로 유럽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외무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회의는 당시 나폴레옹과 직접적인 전쟁을 벌였던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외에 스웨덴, 덴마크, 포르투갈, 스페인 등 크고 작은 200여개의 정치세력들이 전후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였다.

이 결과 유럽의 열강은 나폴레옹과의 전쟁 이전 영토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특정지역과 민족의 독립움직임이 보이면 서로견제를 통해 와해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감자역병’으로 인한 3년간의 기근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전파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지식인들에 의해 1848년 전 유럽을 강타한 혁명에 불을 지폈다.

한편 클래식음악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의 국가들도 19세기 중반 이후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 중에는 북유럽과 러시아, 체코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대표적 민족주의 색채를 보이는 음악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국민악파’라 불렀다.

◆ 북유럽의 국민악파

북유럽의 대표적 국민악파 음악가로는 노르웨이의 그리그(E.Grieg), 덴마크의 칼 닐센(C.Nielsen), 핀란드의 시벨리우스(J.Sibelius)를 들 수 있다.

북쪽으로의 길(영토)이라는 뜻의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에 합병되었다가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독립했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합병되어있었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은 오슬로에서, 이 외의 상은 스톡홀름에서 시상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그리그는 피아노 콘체르토와 페르퀸트 조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르퀸트는 같은 동향인 사실주의문학의 대가 헨릭 입센(H.Ibsen)의 극에 음악을 붙여 만든 모음곡이다.

첫 곡 <아침의 기분>은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과 새소리가 연상되고, 2막 첫 곡인 <잉그리드의 탄식>은 화가 뭉크(E.Munch)의 그림이 생각난다. 마지막 <솔베이지의 노래>는 서정성이 돋보이며 기악곡으로도 편곡되어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리그는 크고 웅장하다기보다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곡가라 하겠다.

칼 닐센은 덴마크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작곡가지만, 유학시절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공부하면서 변칙적인 리듬과 음색의 강렬함이 특징이라는 것을 느꼈다. 

또한 6개의 심포니도 대담한 표현력과 역동적인 선율이 특징적이다. 북유럽의 어두움과 강인함, 의지가 느껴진다. 칼 닐센은 현악 연주자답게 여러 실내악곡도 남겼다.

한편 핀란드는 노르웨이 다음으로 1917년 독립했다. 20세기 초반 강대국 러시아와의 전쟁도 이겨낸 그들은 알타이어족으로, 우리나라와 닮은 부분이 있는 유럽민족이라 하겠다.

시벨리우스는 이러한 핀란드의 대표적인 국민작곡가로 민족의 대서사시인 ‘칼레발라’에 영감을 받아 교향곡과 교향시를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민속적이고 후기 낭만파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다만 같은 시기의 힌데미트, 쉰베르크, 바르톡과 비교하면 혁신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그는 말년에 들어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혁신적 작곡가들의 등장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린 부분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이올린도 전공했던 시벨리우스가 악기를 좀 더 잘 다루었다면 아마도 작곡가 시벨리우스로는 만나기 어려웠을 듯 싶다. 

시벨리우스의 대표 곡으로는 바이올린협주곡과 <핀란디아(Finlandia)>가 있는데, 특히 핀란디아는 국민음악으로 많은 핀란드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러시아로부터의 저항정신을 일깨우고 고취시키는 이 곡은 7~8분정도로 길지는 않지만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핀란드의 국민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붙인 핀란드 최대 음악당인 <시벨리우스 홀> 전경.
핀란드의 국민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붙인 핀란드 최대 음악당 <시벨리우스 홀>의 전경. (사진=저작권자(c) Martti Kainulainen/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러시아의 5인조

지금은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등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한 클래식 음악의 강국인 러시아는, 그러나 19세기까지는 음악의 변방으로 취급 받았다.

1853년 발발한 크림전쟁 이후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때 쯤 러시아의 5인조 음악가들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맏형 격인 발라키레프(M.Balakirev)는 선배음악가 글린카(M.Glinka)와 아주 친했는데, 러시아 민족주의음악의 가능성을 확신하며 뜻을 같이하는 젊은 음악가를 지원해주고자 했다. 그의 대표 곡으로는 코카서스 여행 중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 환상곡 <이슬라메이(Islamey)>가 있다.

러시아 5인조는 발라키레프가 큐이(C.Cui)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육사출신의 무소로그스키(Mussorgsky), 막내이면서 해사출신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마지막으로 화학자인 보로딘(Borodin)이 합류하면서 완성되었다.

이들은 차이코프스키 음악에는 서유럽의 음악만 있고 러시아 음악은 없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나에게는 차이코프스키 음악도 러시아 음악처럼 들리기는 한다.

이들이 함께 활동한 8년 동안 각자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교향시와 오페라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러시아 밖을 나가 본적 없는 무소로그스키도 <전람회의 그림> 등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는데, 5인조 중 가장 천재적인 작곡가였지만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보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Iliya Repin)의 무소로그스키 자화상을 보면 그의 광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했던 5인조였지만 서유럽으로 건너간 그들의 음악은 인상주의음악에 영향을 주었고 후에 현대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체코의 민족음악가

드보르작(A.Dvorak)과 선배인 스메타나(B.Smetana)가 활동할 무렵 체코는 1918년 독립 전까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속국이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많은 예술가들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지역에서 나왔다. 보헤미아에서는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모라비아에서는 구스타프 말러, 야나첵, 미술가 알폰소 무하, 현대에 와선 작가 밀란 쿤테라등이 있다.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지역이다.

말러는 모라비아 태생이긴 하지만 유대인으로써 민족주의 음악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헤미아의 음악신동이었던 스메타나는 1848년 혁명의 여파로 민족의식에 눈을 떴고 프란츠 리스트(F.Liszt)의 도움을 받아 프라하의 음악학교를 설립했다. 

그의 작품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블타바(Vltava)강> (*독일어로 몰다우강이지만 스메타나의 민족정신을 따라 블타바강으로 불리는 게 맞다)을 들어보면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고 주체할 수 없는 큰 강의 물결로 전개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독립의 정의로운 혁명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그의 후배 안톤 드보르작 역시 체코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넘치는 작곡가였다. 자신의 체코어 이름표기로 출판사와 마찰을 빚기도 했고 미국에서 귀국 후에 10년동안 민족주의 음악에 몰두하였다.

그가 뉴욕의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할 무렵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흑인들과 원주민들을 교육시키면서 결국 미국 전통음악의 뿌리는 그들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악4중주곡 <아메리카>는 원주민의 음악에 영감을 받아서 녹여낸 작품이다. 지금 미국의 대중음악이나 재즈의 세계화에는 드보르작의 인류애적인 유산이 밑바탕 되어 있었던 것이다.

◆ 혁명의 유산

1848년의 혁명은 당시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반세기 이후 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민족들이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명언처럼 역사를 지켜보면 흐르는 강물은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초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으로 여러 민족이 독립할 무렵 우리나라의 3·1운동도 같은 역사의 흐름에 있었다. 비록 유럽의 1848년 혁명처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선열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소리와 특징을 클래식 음악에 접목시킨 세계적 거장이자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음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음악은 우주의 큰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앞선 세대에게 항상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 추천음반

그리그의 페르퀸트나 피아노 협주곡의 음반은 여러 훌륭한 음반들이 있기에 생략하고,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들어보셨으면 한다.

전반적으로 곡에 흐르는 노르웨이의 전통적 리듬과 2악장의 맑고 서정적 선율은 그의 음악적 특징과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뒤메이(Augustin Dumay)와 마리조안 피레즈(Maria Joao Pires)의 연주를 추천한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는 카라얀의 연주가 다른 연주보다 극적으로 들린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Scheherazade)는 김연아 선수의 공연음악으로도 많이 익숙한데, 러시아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Vladimir Fedoseyev)와 스베틀라노프(Evgeny Svetlanov)의 음반을 권한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교향곡은 체코의 바이올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바츨라프 노이만(Vaclav Neumann)과 체코필하모닉의 음반을, 드보르작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첼로협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M.Rostropovich)의 연주로 들어보시면 좋겠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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