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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한국 경제와 APEC

2025.10.23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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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은 정상회의를 넘어 '규범·네트워크·신뢰'의 플랫폼이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현재 21개 회원이 참여하는 역내 최대 경제협력체로, 세계 GDP의 약 62%와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APEC은 WTO처럼 관세를 직접 내리는 구속력은 약하지만, 통관·표준·디지털 무역 같은 실무규범을 조율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2025년 한국경제는 위기 없이도 0%대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KDI는 0.8%, 한국은행과 IMF도 0.9% 안팎을 제시했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현실이 되었고, 건설과 설비가 위축되며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다. 추경을 통한 소비쿠폰이 자영업 매출을 방어하고, 반도체 회복이 수출을 떠받치지만, 대외 불확실성과 관세 변수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난제는 '관세 지형의 급변'이다. 미국은 보편 관세와 품목별 관세의 이중구조로 무역질서를 다시 짰다. 7월 3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보편 관세율을 25%→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해야 했다. GDP의 약 20%에 이르는 부담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품목별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자동차는 대체탄력성이 높아 관세가 소폭만 올라가도 수요가 일본·EU로 이동한다. 한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는 아직 25%로 묶여 있어 기존 FTA 무관세보다 크게 후퇴했고, 경쟁국과 같은 15% 보편 관세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반면 반도체·배터리는 장비·표준·생태계가 강하게 결합된 산업으로 대체 공급처가 제한적이다. 관세가 매겨져도 수요의 이탈이 제한적이므로, 미국의 산업정책과 보조를 맞춘 공동 표준·보안 규범, 국경 간 데이터 이동과 클라우드 접근성, 핵심 소재와 장비의 우호국 조달망을 협상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철강·금속 등 전통 주력 업종은 관세와 쿼터의 이중 규제 속에서 생산·수출 계획을 전면 재설계 중이며, 정부는 유동성 지원과 내수 대체, 신흥시장 다변화를 병행하고 있다.

APEC 2025 정상회의장인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 모습.(ⓒ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PEC 2025 정상회의장인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 모습.(ⓒ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복잡한 환경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정상회의를 넘어 '규범·네트워크·신뢰'의 플랫폼이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현재 21개 회원이 참여하는 역내 최대 경제협력체로, 세계 GDP의 약 62%와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1994년 보고르 목표와 1995년 오사카 행동계획은 무역·투자 자유화, 비즈니스 촉진, 경제·기술 협력의 세 축을 세웠다. APEC은 WTO처럼 관세를 직접 내리는 구속력은 약하지만, 통관·표준·디지털 무역 같은 실무규범을 조율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의 개최로, 한국에 전략적 기회다. 연중 200회 이상의 각급 회의, 21개국 정상과 6000여 명의 관료·기업인·언론인이 방문한다. 미·중이 모두 참여하는 장의 특성상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지역 긴장 완화와 외부 불확실성 축소에 신호를 줄 수 있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자동차 관세 협상 타결의 계기도 될 수 있다. 특히 25% 관세가 인하되면 대미 경쟁력은 단번에 개선이 가능하다.

의제를 주도하는 개최국의 권한을 활용하면 가시적 성과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이 내건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이며, 중점과제는 '연결·혁신·번영(Connect, Innovate, Prosper)'이다. 구체적으로는 ①디지털 통상 규범(데이터 이동·신뢰·보안), ②공급망 회복력(핵심 광물·배터리·반도체의 조달·재활용·추적성), ③탄소중립 전환(탄소국경조정과의 조화, 중소기업 전환비용 지원), ④무역 원활화(통관 디지털화·서류 간소화)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합의제·자발성 원칙을 감안하면, 앞선 국내 사례를 표준화해 '따라올 유인'을 설계하는 접근이 유효하다.

APEC이 주는 직접 이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통상 규범의 선제 제안이다. WTO 다자체제에서 교착된 디지털·친환경·안보경제 결합 의제를 APEC에서 모범 규범과 가이드로 먼저 정립하면, 이후 양자·소다자 협정의 기본틀이 된다. 둘째, 공급망 신뢰의 확보다. 동일한 절차와 인증을 공유하는 신뢰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기업은 통관·인증·데이터 이전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위험의 분산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APEC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자적 대화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실행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차량–반도체' 이원 전략을 가속하자. 자동차는 북미 현지화 비중을 과감히 높여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원산지 규범을 활용해야 한다. 완성차–부품 동반투자와 멕시코 거점 확장은 관세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해법이다. 반도체·배터리는 규범 선도에 집중한다. 공동 R&D와 표준·보안 체계를 전제로 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면, 관세가 아닌 규범이 시장 접근성을 결정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둘째, APEC과 양자 협상을 연결하자. APEC에서 합의된 원활화 조치를 한·미, 한·멕시코, 한·캐나다 등 양자로 신속 이행해 실질 효과를 만든다. 셋째, 신흥시장 포트폴리오를 확대하자. 중남미·동남아에서 통관·표준 상호인정 시범사업을 추진하면 관세 충격의 완충재가 된다. 넷째,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자. 수출·관세 대응 바우처, 해외 규격 인증, 환변동 리스크 지원을 묶은 패키지를 확대하고, 2·3차 협력사의 북미 동반 진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30여 년 전 보고르 목표가 그랬듯, 제도와 신뢰는 시장을 넓힌다. 2025년 경주 APEC은 그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지화할 것은 과감히 현지화하고, 규범화할 것은 선도적으로 규범화하는 '현지화+규범화'의 투트랙으로 새로운 무역 지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설계해야 한다. 저성장과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길이다.

우석진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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