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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景氣)는 기세(氣勢)다

2025년 하반기 들어 경기는 '급락을 피했다'는 단계에서 '조심스러운 회복'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이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3분기에는 1.3% 성장으로 반등했다. 2024년 1분기 1.2% 성장은 총선을 앞둔 확장 재정의 효과가 반영된 측면이 크지만, 곧바로 2분기 –0.2% 역성장으로 꺾였던 전례가 있다. 반면 이번 3분기 반등은 추경이 있었더라도, 1년 전에 편성된 긴축적 예산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했다는 제약 속에서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기업과 가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쁜 뉴스 자체보다, 내일의 규칙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이다. 그래서 내년을 바라볼 때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올해 하반기에 살아난 기대를 2026년 초에 꺼뜨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답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시간표'다.
정부가 2026년 예산배정계획에서 세출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하겠다고 못 박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6년 예산총계(일반+특별) 624조 8000억 원 가운데 상반기 배정액 468조 3000억 원을 먼저 내려 보내는 구조는, 연초부터 정책이 작동하도록 '출발선을 앞당기겠다'는 선언이다. 더 주목할 점은 2023년 이후 상반기 배정률 75%가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경기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조기 배정'이 일회성 처방이 아니라 운영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배정했다"와 "현장에서 집행됐다" 사이의 간격이다. 예산배정은 부처가 계약 같은 지출원인행위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권리의 부여이고, 자금배정이 이뤄져야 실제 지출이 가능하다. 여기서 한 번만 지연이 생겨도, 지원금은 '필요할 때'가 아니라 '필요가 지나간 뒤'에 도착한다. 회복 국면에서 이런 시간의 미스매치는 체감경기를 빠르게 식힌다.
또 하나의 간과하기 쉬운 지점은 '자금의 흐름'이다. 집행이 앞당겨질수록 국고의 현금 수요도 초반에 집중된다. 기재부 자료는 자금배정 단계에서 조세·세외수입으로 우선 충당하되 부족분은 국채 발행과 일시차입(재정증권·한국은행 차입)으로 조달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신속집행은 경기부양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고 운용의 리듬을 설계하는 문제다. 준비가 빈틈없을수록 조달과 집행이 충돌하지 않고, 예산의 효율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2026년 신속집행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 상반기 배정률 75%라는 숫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상반기 안에 계약·설계·발주 같은 사전절차가 끊기지 않도록 병목을 제거하는 것이다. 둘째, 예산의 성격에 맞게 속도를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다. 경기 파급효과가 큰 도로·철도 등은 조기 사업계획 확정과 설계·발주를 먼저 당겨야 하고, 국고보조사업은 예산 배정과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의 지체 가능성을 줄이는 쪽으로 관리가 설계돼야 한다.
셋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위에서 속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재정정보원에 따르면 관리대상사업의 상반기 집행이 대체로 목표를 달성해 왔다. 2024년에는 상반기까지 167조 6000억 원을 집행해 연간계획 252조 9000억 원 대비 66.3%로 목표(65%)를 웃돌았다. 또한 상반기 집행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22년 69.5%로 당시 신속한 정책지원 독려가 이뤄졌음을 함께 언급한다.

2025년에는 내수 회복이 제약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상반기 신속집행 목표를 67%로 설정해 민생경제 회복과 경기 활성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6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회복의 초입에서는 정책의 방향성보다 '도착 시점'이 더 크게 작동한다. 돈이 3분기에 풀리면 3분기의 경기만 돕지만, 1분기에 풀리면 기업의 투자 계획과 가계의 지출 심리를 함께 움직여 연간 경로를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신속집행이 '빨리 쓰기'로 오해될 때 부작용도 생긴다. 연초에 급하게 집행하다가 사업 설계가 부실해지거나, 지출은 늘었는데 현장의 체감이 약한 경우가 반복되면 정책 신뢰가 손상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함께 '품질'이다. 사업 준비도에 따라 속도를 세분화하고, 지연 위험이 큰 사업은 사전에 대체 사업군을 준비해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필요하다. '초반엔 빨랐지만 중반에 끊겼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분기별 점검과 조정의 손길이 꾸준히 따라붙어야 한다.
따라서 내년 신속집행의 관건은 "얼마나 빨리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일관되게 밀어붙이느냐"다. 중앙은 사업의 준비도를 기준으로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지방은 생활과 맞닿은 사업이 지연되지 않도록 집행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집행 데이터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등에서 즉시 확인되는 만큼, 분기 중간에라도 지연 징후를 조기에 포착해 대체 수단을 가동하는 '운영의 민첩성'이 필요하다.
2025년 하반기의 좋은 흐름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기의 온도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정된 재정이 예정된 시각에 도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26년 신속집행이 흔들리면 회복은 '기대만 남긴 채' 지연되고, 흔들림 없이 진행되면 회복은 '민간의 확신'으로 번역된다. 내년의 열쇠는 결국, 예산의 시간표를 지키는 집행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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