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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죠, 옥상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요”

윤태건의 ‘공공예술 즐기기’ ③

2010.06.03 윤태건 The T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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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더톤에서 OOOO의 옥상에 공공미술품 설치한 거 맞지예?”
“네 맞는데요”
“그거 철거하모 안됨니꺼?”
왠 철거?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었다.
“네? 갑자기 철거를 하라뇨?”
“시청에 민원이 자꾸 들어와 미치겠습니뎌. 경찰서하고, 119에다가도 신고가 막 들어오고예”
경찰서? 119? 아니 공공미술 설치한 일이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인허가 관련해서는 다 체크했는데…, 혹시 작품 설치가 불안정하게 됐나? 내가 고정은 잘 시켰던가…. 찰나에 머리 속에 불안한 상상이 전광석처럼 지나간다.
“왜요? 경찰서에 신고할 이유가 없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그게 아니고예. 거기 옥상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예…. 자살하려고 한다는 신고도 들어오고, 사람이 떨어질 것 같아 빨리 구해달라는 전화도 자꾸 온다네예”

그제야 연유가 이해됐다.
창원에 새로 지어진 대형복합쇼핑몰에 설치한 공공미술품 때문이었다. 대로변에 인접한 4층 높이의 옥상에 인체 형태의 조각을 설치한 때문이다. 김경민 작가의 ‘달빛소나타’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담을 넘는 듯한 포즈의 남자와 금으로 만든 트로피를 손에 들고 막 도망치려는 듯, 고개를 돌린 여자의 모습을 정지 화면으로 재현한 구상 작품이다.

김경민의 공공미술 ‘달빛소나타
김경민의 공공미술 ‘달빛소나타
 
공교롭게도 이 작품을 설치한 장소는 4층 옥상의 경계 부분이다. 남자는 한발을 위태롭게 허공에 떨구고 ‘낑낑’대며 기어오르고 있고, 여자는 역시 옥상 위 자칫,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다. 가까이서 보면 조각품의 티가 나지만 멀리서, 도로 건너편이나 1층에서 무심코 올려다 보면 마치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설치해놓고 진짜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으로 착각한 주변의 시민들이 시청에, 경찰서에, 119에 신고를 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공공미술작품
영국의 공공미술작품
사실 관람자를 깜짝 놀래키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일상의 낯선 풍경을 연출하는 유머러스한 구상 작품으로 관람객들이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이외의 작품에 재미와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공공미술을 통해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서 즐거운, 때론 당황스러운 일탈을 경험하게 해주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의 의도 보다 훨씬 반응이 뜨거웠다(?) 관람객들이 놀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119까지 신고할 정도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예상을 뛰어 넘는 성공인가? 아니면 예측이 빗나간 실패인가?

창원시청 담당자의 폭주하는 민원에 대한 하소연과 흉내 내는 애들도 있을 수 있으니 철거했으면 좋겠다는 권유에 대해 이미 심의를 받고 설치한 공공미술이라 어렵다는 말과 함께 외국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했다. 더불어 민원에 대한 번거로움에 거듭 사과하면서 하나쯤 특이한 공공미술이 있는 것도 창원시에 좋을 것이라는 꼬드김으로 철거될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아무튼예 우리도 귀찮아 죽겠습니뎌. 지가 보기엔 재밌지만예, 민원이 많으니 외국에나 머 그런 사례가 있는지, 있다면 그런 공공미술 때문에 생긴 사고는 없었는지 함 조사해서 보내주이소”

담당자가 다행히 작품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덕택에 가슴을 쓸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투덜대는 소리가 귀에 선하다. 2008년도 일이었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비스듬한 기둥에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형상이나 지붕에 매달린 형상, 건물 위를 걸어다니는 형상, 난간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형상, 쓰레기통에 거꾸로 들어가 있는 형상 등 공공장소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공공미술을 통해 시각적 환기, 미적 일탈을 겪게 된다.

물론 이같은 공공미술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던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난간에 걸쳐 있는 작품이나 기타 실제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의 공공미술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이나 욕구해소를 가져와 현실에서는 그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심리학 연구결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창원에서 벌어졌던 것과 비슷한 일이 지금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기 몸을 본 뜬 조각으로 유명한 앤서니 곰리가 실물 조각상 31개를 미국 뉴욕 거리에 설치했다. 3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이라는 명칭의 공공미술 전시에 대해 역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31점은 뉴욕의 거리와 건물 옥상 곳곳에 설치됐다.

앤서니 곰리의 ‘호라이즌’
앤서니 곰리의 ‘호라이즌’
 
그 중의 특별히 한 작품이 화제다. 곰리는 인체 크기의 청동으로 만든 조각 하나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6층 외부에 설치했다. 밑에서 보면 마치 26층 높이의 난간에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뛰어 내릴 것만 같다. 작품이 설치된 후 한 달 내내 뉴욕경찰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사전에 미술작품이니 놀라지 말라고 홍보했지만 허사였다고.

공공미술은 이처럼 마냥 예쁘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종종 관람객들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불안함을 넘어 심한 경우 충격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예술의 특권이기도 하다. 뭔가 새로운 것, 남들과 다른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려는 예술가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딜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도시에서 공공미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재치와 일탈이 주는 시각적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공공미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조나단 브롭스키의 ‘지붕 위를 걷는 여자’
조나단 브롭스키의 ‘지붕 위를 걷는 여자’
 
앤서니 곰리의 공공미술전 이벤트 호라이즌의 자세한 내용은 http://eventhorizonnewyork.org에서 검색 가능하다.


※ 윤태건은?

윤태건(42)은 공공미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젊은 기획자다. 신문로의 ‘망치질 하는 사람’ 등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삼성문화재단 환경미술팀 연구원과 카이스갤러리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공공미술 컨설팅회사인 ‘THE TON’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미술이 필요 없는 도시, 삶 자체가 예술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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