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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가 달라졌다. 잘 나간다.
야구 전문가들은 개막을 앞두고 하위권으로 분류했지만 모두 틀렸다. 초반부터 승승장구를 하더니 3일 현재 어느새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10년 만에 승패 마진에서 흑자 10까지 달성하기도 했다. 돌풍이 아니라 태풍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여름 승부의 분수령을 넘어야겠지만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 가을야구 진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그 중심에 새롭고 달라진 한화야구를 이끄는 한용덕 감독의 리더십이 있다.
한때 한화 이글스 감독 부임은 독배를 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한화의 팬들은 한용덕 감독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목청껏 부르고 있다. (사진=OSEN) |
한화가 야구를 잘하는 이유는 투수진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팀 방어율이 리그 2위이다. 소방수를 포함한 계투진이 리그에서 가장 강하다. 계투진의 방어율 3.26은 다른 팀들을 압도한다. 얼마 전까지 삼성 왕조를 지탱했던 최강 불펜과 견줄 정도이다.
리그 최고 소방수 정우람을 비롯해 부진에서 돌아온 송은범, 안정된 중간투수로 화려하게 변신한 안영명, 삼진 기계로 변신한 이태양의 트리오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서균과 박상원의 젊은 투수들까지 가세해 철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선발투수진을 계투진이 메워주고 있다.
게다가 한화는 야수층은 두터운 팀이다.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등 베테랑들이 즐비하고 송광민 하주석 등 우등생 젊은 타자들도 있다. 제라드 호잉이 4번 타자로 들어와 효자 노릇을 하며 공격을 이끌고 있다. 탄탄한 마운드가 실점을 최소화하고 방망이는 활발하게 터지지 성적이 절로 좋아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만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잘나가는 팀들을 보면 분위기가 대단히 좋다. 감독 및 코치진과 선수들의 관계가 원만하다.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야구를 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항상 웃음꽃을 터진다. 올해부터 한화 더그아웃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졌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더라도 다독이는 등 결속력이 끈끈해졌다.
한용덕 감독이 부임과 동시에 팀 문화를 밝게 바꾼 것이 효과로 나타났다. 이성열은 홈런을 때리면 감독의 가슴을 때린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스스럼없는 스킨십이 이루어진다. “한 팀이 되었다”는 말들이 선수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런 팀이 성적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전임 김성근 감독과 비슷하게 특타를 많이 하면서도 선수들은 힘들어하지 않는다. 한화는 20번이 넘게 역전승을 하는 팀이 됐다. 선수들이 진심과 전력을 다해 야구를 한다는 증거이다. 한용덕 리더십이 이렇게 바꾸었다.
한용덕 리더십의 특징은 원칙이다. 베테랑들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한화의 대들보 김태균의 기용방식이었다. 김태균이 개막 초반 손목에 사구를 맞고 재활을 거쳐 복귀할 시점에 “김태균은 교타자이다. 6번이나 7번 타순에 들어가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부동의 4번 타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김태균에 대한 색다른 평가였다. 김태균의 장타가 적다는 아쉬움을 에둘러 표시한 것인데 실제로 복귀하자 6번 타순에 기용했다. 새로운 4번 타자 호잉의 존재도 있었지만, 간판타자라도 냉정하게 기량을 판단해 기용하겠다는 의지였다.
또 한 명의 간판선수 정근우는 2루 실책이 잦아지자 과감하게 2군으로 강등조치 했다. 정근우는 복귀하자 공수에서 힘차게 팀을 공격을 이끌고 있다. 베테랑들에게 예외 없는 이런 기용 방식은 다른 선수들까지 자극하며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투수 출신답게 투수 운용도 마찬가지이다. 철저하게 경기와 이닝을 계산해 혹사를 막는다. 소방수 정우람은 1이닝만 던지도록 방침을 정했다. 개막 이후 6월 3일까지 1이닝을 넘긴 경기는 단 두 차례 있었다. 그것도 1¨÷이닝(아웃카운트 4개)뿐이었다. 이틀 연속 등판은 6번 있었지만 사흘 연속 등판은 없었다.
소방수의 과도한 이닝은 필연적으로 시즌 중반 이후 뒷문 부실로 이어진다. 정우람은 감독의 철저한 보호책에 힘입어 평균자책점 1.13과 20세이브의 KBO 최강 소방수로 활약하고 있다. 세이브 기회를 날린 경우는 단 한 번이었다.
젊은 선수들은 과감하게 기용해 성과를 올리는 등 성적과 리빌딩까지 동시에 성공시키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젊은 투수들을 선발로 나서면 긴 이닝을 소화하도록 했다. 부진하면 바로 교체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젊은 김민우는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복귀하자 꾸준히 5이닝 이상을 소화하도록 배려했고 선발투수로 자리잡았다.
한용덕 감독의 새로운 리더십은 어느새 ‘가을 한화’를 꿈꾸고 있다. (사진=OSEN) |
이런 방법을 통해 나란히 1점 대 방어율을 자랑하는 언더핸드 투수 서균, 우완 투수 박상원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좌완 김범수도 감독의 지원 아래 필승 계투진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야수에서는 고졸 신인 내야수 정은원을 발탁했다.
매서운 타격에 수비와 주루솜씨까지 과시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유격수와 2루수로 기존 주전들을 위협하는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젊은 선수들에게 감독의 신뢰는 성장의 물줄기이다. 못하더라도 감독이 믿어주면 자신감이 생긴다. 반대로 조금만 못해도 빼면 급해지고 눈치를 보는 일이 잦다. 일방적인 스파르타식 교육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한 감독은 이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공격 스타일은 화끈하다. 희생번트를 최소화하고 대신 뛰는 야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희생번트는 불과 10개뿐이다. 리그 최소 번트이다. 타자들이 타석에서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승부를 하도록 했다. 자율적으로 생각해야 타자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반대로 한화는 가장 많은 도루를 시도하는 팀이다. 25개의 도루실패가 있었지만 38개의 도루를 성공해 리그 3위에 랭크 되어 있다. 뛰는 야구는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한화 주자들이 자주 뛴다는 의식을 하게 되면 투수들의 볼배합이 달라지고 수비수들도 한 발짝 베이스 쪽으로 더 움직인다. 투수들은 빨리 던지려다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만큼 상대에 빈틈이 생기고 공격에서 장점이 많아진다. 팀 타율은 8위인데도 한용덕의 능동적인 공격 야구가 성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한화 야구를 역동적으로 바꾼 배경에는 한용덕 감독의 경력에도 있다. 그는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였다. 1987년 연습생으로 빙그레에 입단해 역경을 이겨내고 간판투수로 발돋음하는 인생 역전을 이루었다. 그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퇴 후에는 코치와 감독대행, 프런트 직원(단장보좌)까지 일하면서 한화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다.
한화의 지독했던 실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한화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또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화에게 최적화된, 그리고 준비된 감독이었다. 김인식 김응룡 김성근까지 명장들이 모두 실패하고 떠난 자리에 돌아와 한화의 변혁을 힘차게 이끌고 있다. (성적은 6월 3일 현재)
◆ 이선호 OSEN 야구전문기자
20년 넘게 야구기자로 살고 있다. 어릴 때 야구가 좋아 무작정 광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무등야구장을 찾았다. 1994년 ‘광주일보’ 입사 후 프로야구 담당기자를 자원했고 ‘스포츠투데이’를 거쳐 지금의 ‘OSEN’에서도 야구밥을 먹고 있다. 예측을 거부하는 야구의 무궁무진한 변수가 좋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온갖 사건들은 곧 우리들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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