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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버 팝부터 아방가르드 팝까지 횡단한 ‘30세기 사나이’

[장르의 개척자들] 스캇 워커(Scott Walker)

2024.07.29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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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워커를 개척자로 치켜세웠던 분야들이 더러 존재했다. 

챔버 팝(*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을 적극 활용해낸 팝)과 아이돌 팝, 그리고 익스페리멘탈 팝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는 다양한데, 그만큼 스캇 워커가 이 산업에서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획기적인 싱어 송라이터이자 은둔의 아웃사이더였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영역들을 개척해온 스캇 워커는 여러차례 자신을 재창조했다. 

스캇 워커는 젊은 힙스터들부터 진지한 음악학도, 그리고 향수에 젖은 60대 노년층에 이르는 광범위한 팬덤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스터리로 남겨졌다. 

감정적인 목소리를 지닌 1960년대 팝 아이콘으로 시작해 21세기 아방가르드 음악가로 경력을 마감한 그의 삶은 적극적인 음악적 도전과는 별개로 비밀스럽게 유지됐다.

스캇 워커(사진=4AD, Photo by Jamie Hawkesworth)
스캇 워커(사진=4AD, Photo by Jamie Hawkesworth)

미국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에서 노엘 스캇 엔젤이라는 이름으로 1943년에 태어난 스캇 워커는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팝 아이돌로 성장한다. 

캘리포니아에서 3인조 그룹 워커 브라더스를 결성했고 영국으로 넘어가 필 스펙터 사운드에 영향받은 레코드를 만들면서 영국에서 흥행몰이를 하게 된다. 참고로 워커 브라더스 멤버들은 서로 형제도 아니었고, 인기를 끌었던 영국 출신도 아니었으며, 아무도 ‘워커’라는 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1965년 ‘Make It Easy On Yourself’, 그리고 1966년 ‘The Sun Ain’t Gonna Shine Anymore’로 영국에서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워커 브라더스는 크게 성공한다. 10대들의 가슴을 뛰게끔 하는 곡을 만들었지만 이들의 노래는 청춘의 불안과는 상관이 없었는데 보다 성숙하며 깊이가 있었고 또한 실존적이었다. 

한때는 워커 브라더스의 팬클럽이 비틀즈의 공식 팬클럽보다 더 많은 회원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것이 비틀즈 보다 실제 팬 층이 더 두터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팝스타로서 이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지를 증명하는 예시임에는 분명했다. 

워커 브라더스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스캇 워커는 워커 브라더스를 해체하고 오히려 한발짝 물러나 실험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스캇 워커는 언제나 사적인 사람이었고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렇게 1967년에 솔로 데뷔 앨범을 내놓았지만 이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 워커 브라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의 밝은 팝 멜로디와 호쾌한 가창의 노래가 아닌, 사뮈엘 베케트, 자크 브렐, 그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진지한 결과물로써 도출됐다.

유럽 스타일에 도취되어 있던 바로크 팝 앨범 <Scott 3>와 <Scott 4>에서 그는 점점 더 도전적인 스타일로 옮겨갔고 이는 앨범 판매의 감소로 연결된다. 시네마틱한 구성을 지닌 앨범은 어두운 가사와 결합된 서사적인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종종 민감한 주제를 바탕으로 곡을 전개해냈다.

이후에는 MOR 풍의 앨범들도 몇 장 만들기도 했는데 결국 1970년대 중반 워커 브라더스를 재결성하면서 싱글 ‘No Regrets’를 10위 권에 올려놓는다. 앨범 <Nite Flights>로 워커 브라더스는 정말로 결말을 짓게 된다.

이후 스캇 워커는 더욱 급진적인 형태로 방향을 전환해버린다. 1984년에 공개한 <Climate of Hunter>에서는 에반 파커 같은 즉흥 색소폰 연주자까지 데려오면서 보다 혼란스러운 앨범으로 완성시켜냈는데 영국의 가디언 지는 “앤디 윌리엄스가 슈톡하우젠의 방식으로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평하기도 했다. 

스캇 워커의 솔로 작들의 경우 판매는 저조했지만 많은 현대 음악가들이 이를 참조하기 시작했으며, 컬트적인 추종자들 또한 확보하게 된다.

스캇 워커는 영국에서 은둔자로 지내며 철학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공부했으며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번의 연기 끝에 1995년도에 발표한 <Tilt>를 통해 그는 확실히 암울하고 신비로우면서 또한 난해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추상적인 불협화음, 미니멀하고 신경질적인 만듦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특유의 우울증과 화려한 연극성으로 무장한 앨범은 마치 레너드 코헨이 라스 베가스 한가운데에서 신경쇠약에 걸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은 소리처럼 들렸다. 

11년 후 공개된 <The Drift>, 그리고 2012년에 발표한 <Bish Bosch>가 <Tilt>와 묶여서 스캇 워커의 후기 3부작으로 불렸고 이를 통해 그는 본격적으로 모더니스트 작곡가로 분류됐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구체 음악, 생고기를 때려서 만든 불안한 음향 효과 등이 악몽처럼 전개됐다. 

가사의 경우 홀로코스트와 9/11, 무솔리니와 아돌프 아이히만 등 정치적인 내용들을 다뤄냈으며 음악에 시각적 이미지를 이식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스캇 워커의 작업물은 마치 사운드 아트로 완성된 조각품 같았다. 2014년에는 드론 메탈 밴드 ‘썬(sunno))))’과의 합작 <Soused>를 공개하면서 또 한 번 심연의 세계관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2018년까지 작업을 이어 나갔던 스캇 워커는 2019년 3월 런던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BBC는 “록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 같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며 그를 기렸다. 

알려진 대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를 추종해온 것으로도 유명한데, ‘베를린 3부작’에 영향받아 완성한 데이빗 보위는 스캇 워커의 다큐멘터리 <Scott Walker: 30 Century Man>을 직접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펄프의 경우 <We Love Life> 앨범 일부를 스캇 워커에게 프로듀스 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 바로 스캇 워커라 언급했고, 디바인 코미디의 경우 자신의 앨범 <Promenade>를 직접 스캇 워커에게 전달했다. 

악틱 몽키즈의 알렉스 터너의 사이드 프로젝트 라스트 섀도우 퍼펫츠는 알려진 대로 바로크 팝 시기 스캇 워커의 영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너무 예시가 많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팝과 록, 아이돌과 예술가, 클래식과 실험 음악이 만나는 지점에 스캇 워커가 우뚝 서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위협적인 감각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그가 주조해낸 창의적이며 날카로운 소리들은 영국 음악의 최전선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실존적이며 지적인 이 예술가는 엄청난 수의 작업물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각 앨범들은 모두 필수적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시기마다 스캇 워커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별개의 분야들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은 초기의 팝과 후기의 아방가르드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성질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가 만든 다양한 음악들은 결국 모두 후기 아방가르드 사운드로 귀결됐고, 말하자면 그의 실험적인 음악 제작 방식을 이야기할 때 초기 팝 음악 제작 시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스캇 워커는 장 뤽 고다르와 데이빗 린치가 현대 영화에서 한 일을 팝 음악에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히스테릭한 방식으로 신과 악마의 부재, 선과 악의 부재를 이야기하다가 오로지 존재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각 시기마다 현재의 추세에 발맞추지 않으면서도 몇 광년이나 앞서 있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30세기 인간’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3차원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 결국 우리 중에 스캇 워커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추천 음반

◆ Scott 4 (1969 / Philips, Fontana)

라디오헤드가 좋아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앨범으로 기존 그의 작업물들 보다 오케스트라 편곡이 덜하고 대신 리듬 섹션에 중점을 둔 포크에 영감 받은 작품이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제목에서 가져온 ‘The Seventh Seal’은 마치 스파게티 웨스턴 시기 엔니오 모리코네의 사운드에 닿아 있다.

◆ Soused (2014 / 4AD) 

스캇 워커, 썬 양쪽 팬들 모두 이 합작이 성사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캇 워커는 보통 침묵으로 채웠던 부분을 썬의 드론으로 채워내면서 전례가 없는 드론 오페라를 창조해냈다. 이는 영화음악 작업을 제외한 스캇 워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 됐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 On the Pulse >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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