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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했더니, 인생이 기적이었더라

인터뷰 | 자서전·여행기 출간 강두석·신은정 씨

2016.11.22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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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 자서전 집필 강두석 씨

강두석 씨가 11월 11일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자서전 출간 기념식을 갖고 있다. (사진=광진정보도서관)
강두석 씨가 11월 11일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자서전 출간 기념식을 갖고 있다. (사진=광진정보도서관)

‘침묵 속에 영원히 사장돼버릴지도 모를 내 인생의 족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세월의 길섶에 머물렀던 나의 발자취가 만경창파의 노도를 헤쳐가는 후손들의 앞길에 귀감이 될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필연코 후손들의 의지와 신념 앞에 굴복되고 정의와 불타는 열정으로 찬란한 빛이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

책 속에서 가장 공들여 쓴 문장이 무어냐 하니 이같이 읊는다. 강두석(80) 씨는 지난 80년의 인생을 한권의 책에 담아 이달 초 자서전 <내 인생의 곡선>을 펴냈다. 지난 11월 11일엔 간이 인쇄한 책을 가지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며칠 뒤 본인쇄가 마무리되면 20권의 책을 가족들과 나눠 읽을 계획이다.

강 씨가 자서전을 쓴 것은 자녀들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며느리는 도서관에서 시니어를 위한 자서전 쓰기 교육을 한다며 소개했다. 올 4월부터 서울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시니어를위한 자서전 쓰기 교육을 받았다. 80년 인생을 200여 장의 종이에 담아내는 데는 반년이 걸렸다.

“필력이 부족한 건 물론이고 남 앞에 내보이기 부끄러운 인생이라 생각했죠.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자서전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게아니라 진솔하게 쓰면 된다는 것, 그리고 짧은 문장으로 쓰면 쉽다는 걸 배웠죠. 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살아오는 동안 찍은 귀중한 사진, 편지, 일기를 모조리 모았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게있으면 전부 메모했죠.”

책에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1남 3녀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를 안게 된 지금까지 그야말로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담겼다.

“어린 시절 집 앞에 솟은 양쪽 산을 간짓대로 이을 수 있을 만큼 깊은 산골에서 흙집을 짓고 살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군대도 카투사로 가고 한국전력에도 들어갔죠.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난하기로 세계에서 맨 앞에 섰어요.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별로 없던 시절에 공기업에 들어간 거예요. 1980년대에는 1년간 미국 23개 주를 돌면서 현지 인력을 가르쳤어요. 교육 자료가 담긴 라면 박스 43개를 배에 실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는 “기자님은 들어도 잘 모르시죠?”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자서전을 쓴 이유는 자녀와 손주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에겐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되리란 뜻에서다.

자서전은 강 씨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80년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쓴 책에는 유언장까지 담았지만 외려 남은 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내 책은 저명한 사람들의 자서전과는 달라요. 내가 잘못한 것들까지도 아주 세세하고 진솔하게 적어놨으니까요. 불효한 것, 자식들에게 못해준 것, 이 밖에 잘챙기지 못한 인간관계, 게을러서 이루지 못한 꿈들. 앞으로는 못다 이룬 것들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자서전을 쓰게 된 건 제 인생에서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여행 드로잉 책 출간 신은정 씨

신은정 씨는 생애 처음 홀로 떠난 동유럽의 모습을 직접 그려 책으로 엮었다.
신은정 씨는 생애 처음 홀로 떠난 동유럽의 모습을 직접 그려 책으로 엮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기게 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여행할 때가 아닐까. 그 수단은 렌즈와 셔터. 신은정(33) 씨는 동유럽 여행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러나 책에는 사진 대신 그림이 빼곡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신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여행 드로잉 북 <패키지 밖의 동유럽>은 올 4월 세상의 빛을 봤다.

“몇 년 전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여행했어요. 생애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은 꿈만 같았어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 돌아오니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여행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내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남겨놔야겠다 싶었죠.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려면 책으로 엮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책 속에는 패키지 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동유럽의 숨은 명소들이 수채화로 담겼다. 관광객들은 잘가지 않는 체코의 시골 마을 체스키크롬로프의 작은 공연장, 오스트리아의 호수도시 할슈타트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헝가리 마을에 밤기차가 지나가는 풍경 등.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은 그림 옆에 간단히 새겨 넣었다.

신 씨는 이왕 책을 내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서점에 실제로 납품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신청해 진짜 책의 모습을 갖췄다. 취미로 다니고 있는 여행 드로잉 수업에서 지난해 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신 씨는 일부 마음이 맞는 수강생들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을 엮어 연말 책자로 만들었다. 그때 책의 원고를 편집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배웠다. 덕분에 자신만의 책을 만들며 내용물을 채우는 건 물론 그 형태까지 직접 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기 전 종이 재질, 책의 크기, 가격 등을 결정했다. 문제는 몇 부를 찍을 것인가. 가족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책 출간에 힘을 보태준 사람들에게도 돌리려면 200부가 적당하다 싶었다. 신 씨는 책 제작을 시작하며 창작자를 위한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시안을 올리고 모금을 했다. 목표액이 모이면 그 돈으로 책을 인쇄하고, 기부자들에게는 직접 그린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줄 것을 약속했다. 올 2월부터 한 달간 진행된 모금에는 목표액 50만 원을 크게 웃도는 92만 원이 모였다.

신 씨는 인쇄를 하고도 남은 모금액은 책을 홍보하는 데 사용했다. 스쿠터로 전국 동네 책방을 돌며 책을 납품한 것. 동네 책방에는 1년에도 100여 종의 독립잡지를 포함해 개인 출판물이 쏟아진다. 신 씨의 책은 그 가운데서도 주목을 받아 올해만 벌써 2쇄를 더 찍어냈다. 신 씨는 자신의 책을 만드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삶의 외연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취미라고 말했다.

“직접 해보면 자가 출판이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책을 냈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다들 대단하게 생각해주니 으쓱하고 뿌듯하죠. 저처럼 정식 출판물로 등록하지 않고도 책을 홍보할 수있는 독립서점이나 플리마켓도 많아졌어요. 저는 책을 만들면서 펀딩도 해보고, 또 다른 여행도 하고, 독자들에게 줄 엽서도 만들고, 취미가 다양해졌어요.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하고 책을 낼 생각입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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