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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정책뉴스' ⑨] 가부장제 상징 '호주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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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중생의 하소연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2008년부터는 가능하다. 2008년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민법으로 호주제가 완전 폐지되기 때문이다.
2005년 3월 2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방청석에서는 여성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통과된 것. 호주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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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방청석에서 여성계 인사들이 환호하고 있다. |
호주제 폐지를 위한 노력의 시작은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인 이태영 변호사(98년 작고)는 지난 53년 전국여성단체연합회의 이름으로 남녀평등가족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남존여비와 남계 혈통 중심의 가족제도가 당연시되던 당시 이 같은 법안이 받아들여질리 만무했다.
김병로 당시 대법원장은 개정안을 제출한 이 변호사에게 “1500만 여성이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법률 줄이나 배웠다고 휘젓고 다니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창설하고 가족법 개정운동을 주도하면서 58년, 62년, 77년, 89년 네 차례의 법 개정을 이끌어 냈다. 특히 89년의 법 개정으로 그동안 '상속' 개념이던 '호주'를 '승계'로 변경했으며, 장남도 호주상속을 포기하고 분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호주의 권리와 의무를 축소하는 내용으로 가족법이 개정됐다.
이처럼 호주제 폐지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호주제 폐지운동을 ‘빨갱이들의 운동’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친북용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한의사 고은광순씨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가족파괴’ 운동으로 인식하게 했다”며 "97년 여성계 지도자 170명이 호주제의 부계혈통주의에 도전하기 위해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나섰는데, 이를 두고 ‘페민년(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을 비하해 일컬은 말)’들이 잘난척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쯤으로 치부하는 남자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부장적 요소로 인한 성차별 등 호주제의 폐해가 계속되고 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하면서 시민사회·여성단체 등의 호주제 폐지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1999년과 2001년 유럽연합(UN) 인권규약 감시기구는 우리 정부에 호주제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또 2003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호주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가족간의 종적 관계, 부계 우선주의, 남계혈통 계승을 강제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 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호주제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호주제 폐지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고 지난 3월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인 호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인 가족문화가 민주적으로 개선되고 가정과 직장에서 남성우위의 사회적 풍토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도 호주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고은광순씨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들 보시기에 호주제 폐지를 이끈 우리들은 ‘나쁜년’들이겠지요. 대(代)를 잇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가족문화에서 여성은 대를 잇는 ‘도구’로 여겨져 왔습니다. 호주제 찬성론자들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기 때문에 ‘씨’가 중요하고, 고로 씨를 생산하는 남자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자 몸에도 반쪽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한줄기 혈통, 한줄기 가문, 대 잇기는 애당초 말도 안돼는 얘기입니다. 이제 그만 세상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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