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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모르핀’ 버리고 ‘근본 해결’ 추구…미래진행형

[실록 경제정책] ⑥ 한국형 성장모델을 찾아라

“개방과 양극화 해소, 선진한국 가는 양 날개”

2008.02.01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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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미-이라크 전쟁, 신용불량자와 카드채 사태…. 돌아보면 먹구름 뿐이었다. 2003년 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신중한 경기조절 등으로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레 건너갔다.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결별하는 대신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고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본질적 문제 접근을 통한 제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혁신경제와 공정한 시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등 적극적 개방정책, 금융허브 추진을 비롯한 금융산업 선진화정책, 지속적인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남북경협 등 오늘보다 내일을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한 손에는 성장잠재력 확충, 다른 손에는 사회안전망 확대’. 참여정부는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투자를 확대했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전략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고질병이 된 ‘저성장 속 양극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럼에도 민생의 어려움은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우리 경제의 낡은 유산과 싸우며 새로운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의 이러한 비전과 고투가 한국경제의 터닝포인트로 기록될지 여부는 역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정브리핑은 재정경제부·한국금융연구원·한국조세연구원 등과 함께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탄생 배경과 전개과정, 정책효과와 의미 등을 실록 형태로 정리한 ‘실록 경제정책’을 기획, 연재한다. 전·현직 정책 담당자들의 증언과 각종 정부기록물, 학계 연구보고서 등을 밑그림으로 삼아 ‘읽는 재미’와 함께 경제정책의 원리와 방향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하려 한다. 연재 내용은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할 예정이다. <편집자>


① 카드사태와 금융시장 안정: “문 닫을까요, 외국에 팔까요, 당신이 살 거요?”
② 신용불량자 뇌관 해체: 신불자 딜레마, 딜레마…“원칙이 이기더라”
③ 공정한 시장질서의 원칙과 현실: “투자와 출자, 그거 정말 구분이 됩니까?”
④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 냄비 정책서 뚝배기 경제로…“어느 쪽이 건강한 겁니까”
⑤ 전략적 재정운영: “계산서 내놓았다가 박살나게 맞고 물러갑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현재 참여정부와 시간적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참여정부 안에서 모순된 정책이 공존했다는 점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참여정부 기간 중 논란이 됐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이런 모순을 상징한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06년 3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과의 인터넷대화’에서 양극화 해소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동시에 추진하는 바람에 보수·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협공을 받는다며 노 대통령이 즉석에서 지어낸 말이다. 겉보기에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밀어붙여야 하는 참여정부의 고민을 압축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념보다 현실을, 정치논리보다 근본적 문제해결을 중시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고, 정치논리보다 근본적 문제해결을 중시했던 참여정부의 태도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참여정부는 개혁적 정책을 실천에 옮긴 정부였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이념 과잉으로 경제를 후퇴시켰다고 몰아붙였다.

참여정부를 어떤 관점에서 평가하든 이들은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참여정부가 ‘IMF개혁 10년차 정부’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거시 경제지표를 보자면 참여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역대 정부에 뒤지지 않는다. 수출의 경우 원·달러 환율하락, 고유가, 북핵위기 등 온갖 대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5년 내내 ‘두 자리수 수출 증가’라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두 자리수 수출 증가에도 속 시원하지 않은 체감경기, 왜?

다만 예전같으면 수출증가가 내수 확대로 이어질 법도 한데 참여정부 때는 체감경기와 직결된 내수가 끝내 살아나지 않았다. 내수가 따라붙지 않은 탓에 5년 내내 경제성장률이 속시원하게 5%를 넘지 못했고, 일자리 창출도 연간 30만명을 밑돌았다.

참여정부 기간동안 수출이 매년 두자리수씩 늘어나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끝내 내수는 살아나지 않았다. 수출이 잘 되면 내수도 살아나는 경제의 연관성이 약화됐기 때문이었다. 참여정부는 한국경제 시스템의 구조변동이라는 근본적 문제와 대결해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시중 자금은 넘쳐나는데도 기업들이 좀처럼 설비투자에 나서지 않는 투자부진 현상이 참여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부진은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총투자율은 1993~97년 연평균 36.3%였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은 뒤 1998~2002년 연평균 25.9%로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총투자율이 10%포인트 이상 떨어질 정도로 한국경제의 투자시스템에 근본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어깨 두드리며 투자를 독려하던 과거 관행을 답습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한국경제의 구조변동에 대응할 근본 처방이 필요했다.

IMF개혁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변동이라는 역사적 문제

이는 궁극적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해체된 한국형 발전국가모델인 이른바 ‘박정희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한국형 성장모델을 구축해야 함을 의미했다. 박정희 모델의 해체와 함께 ‘수출확대 → 투자·고용 증가 → 소비증가’로 이어지던 한국경제의 선순환 고리도 약화되면서 참여정부는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새로운 난제와 씨름해야 했다.

따라서 몇 가지 거시경제지표를 조합한 성적표로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참여정부가 치러야 했던 시험이 IMF개혁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변동이라는 역사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을 얼마나 높였는지가 중요한 포인트

결국 이러한 도전과제들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 자세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했는지 여부가 평가 잣대가 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시각에서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예컨대 참여정부 5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을 따지기보다 얼마나 잠재성장률을 높였는지가 더욱 중요한 평가포인트가 돼야 한다.

■ IMF개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IMF 외환위기 이후 4대 부문 개혁이 한국경제의 지상명령으로 떨어졌다. 중심축은 금융, 기업 개혁이었다. 그리고 금융, 기업 개혁은 숫자와의 싸움이었다. 금융개혁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기업개혁은 부채비율 200%를 각각 금과옥조로 삼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개혁의 결과, 국내은행의 BIS비율은 1997년 말 7.0%에서 2007년 6월 현재 12.99%로 높아졌다. 부실채권 비율은 6.0%에서 0.78%로 낮아졌다.


기업은 과거 무리한 차입경영 관행과 결별했다. 1997년 434.6%에 달하던 부채비율이 2006년 말 105.3%로 떨어졌다.


보수경영 확산되면서 투자 위축

수치상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unexpected result)가 나타났다. 금융부문의 경우 수익성과 건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은행들이 가계대출 등 안전한 소매금융에만 주력하느라 정작 중요한 기업금융을 외면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또 문어발 경영을 막고, 계열내 위기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각종 기업 지배구조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한편 시장을 통한 기업 감시를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M&A)를 허용한 결과 경영권 보호를 위한 보수경영이 확산되면서 투자가 위축되는 문제가 불거졌다.

IMF외환위기 이후 10년간의 개혁으로 한국경제는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이전 개발시대 성장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모델을 마련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와 부딪히게 됐다.

1차 목표 달성했지만 저투자-저성장, 고용부진·양극화 맞닥뜨려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과거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정부-기업-금융의 삼각동맹이 IMF 외환위기 이후 해체됐다는 점이다. 이른바 ‘박정희 모델’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정부가 금융을 통제하면서 기업을 지원하고, 기업은 사실상 정부가 주인인 금융기관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초과 고용 등을 통해 정부 정책을 돕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기관은 기업에 자금공급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기업 역시 보수경영이 확산되면서 투자에 몸을 사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간의 개혁을 통해 ‘외환위기 탈출’이라는 1차적 목표는 달성했지만 저투자-저성장과 이에 따른 고용부진과 양극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맞닥뜨린 것이다.

■ 박정희 모델의 해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전

과거 개발연대를 이끌며 비교적 잘 나가던 ‘박정희 모델’이 해체되면서 ‘수출확대 → 투자·고용 증가 → 소비증가’로 이어지던 선순환 고리도 약화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5년 간 수출은 매년 두 자리씩 증가했지만 경제성장률은 5%를 넘지 못했다. 1990~2000년 수출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경우 예외없이 9%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잘 나가는 수출산업과 그렇지 못한 산업 양극화

수출이 늘어난 만큼 내수가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 조선, 철강 등 5대 수출주력상품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잘 나가는 수출산업과 그렇지 못한 산업으로 양극화가 진행된 탓이 크다. 또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높고, 고용창출효과가 낮은 정보기술(IT)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된 것도 수출-내수간 연관관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수출-내수간 연관성 약화라는 요인 외에 민간 소비는 대규모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등 가계부실로 인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성장잠재력과 깊이 관련된 기업 설비투자의 부진에는 ‘수익모델 부재’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왜 투자를 하지않을까…글로벌 기술변화와 수요변화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말이다. “한국경제가 과거처럼 선진국을 모방하던 단계에서는 그냥 따라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부 품목이 최첨단을 달리는 데다 기업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수익모델을 찾기 힘들다. 출자총액제한제도라든가, 수도권 규제 등이 투자의 발목을 잡았다고 일부에서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부는 하이닉스 반도체, LG필립스 LCD 등 미래 첨단산업의 수도권 공장 증설과 투자를 모두 허용했다. 또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위축됐다는 실증자료는 보지 못했다.”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유동성 자금이 넘치면서 세계적으로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올랐다. 전세계 기업들이 돈이 넘치는데 왜 투자를 안 할까. 기술변화와 수요변화를 따라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는 순간 첨단 기술이 나타난다. 예컨대 현대제철이 7조원짜리 고로를 짓는 와중에 포스코가 생산비 뚝 떨어뜨린 신공법 내놓는다. 파주에 LG필립스LCD공장 세우는 동안 다른 형태의 첨단 TV가 등장한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회임기간이 긴 산업에 어떻게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겠나.”

소득불평등 그나마 진정된 것 소득재분배정책 효과

과거 박정희 모델에서는 ‘수출확대 → 투자·고용 증가 → 소비증가’의 선순환이 비교적 잘 작동했다. 덕분에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분배가 향상되는 큰 틀의 선순환이 가능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박정희 모델의 해체와 함께 경제 시스템간 연관고리가 약화됐다. 경제성장에 따른 일자리 창출효과가 예전만 못한 데다 노동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증가로 분배구조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소득불평등(소득 5분위 배율, 지니계수)이 참여정부 들어 그나마 진정된 것은 소득이전과 조세감면 등 정부의 소득재분배정책 효과 덕분이다. 소득불평등도는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할 경우 점점 악화되고 있지만 소득재분배정책효과가 가미된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정체, 혹은 개선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새로운 경제시스템, ‘한국형 성장모델’은?

이처럼 참여정부는 IMF 개혁 10년의 결과로 과거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박정희 모델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전과제들과 직면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 기간 불거진 투자부진, 양극화 등 악성 난제들을 모두 참여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적 레토릭으로는 유효할 수 있지만, 한국경제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는 타당하지 않다. 참여정부의 고유한 정책 컬러가 아니더라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발전단계에서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IMF 개혁 10년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도전과제들을 해결하고, 장기적 성장능력을 확보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찾아야 하는 역사적 위치에 자리했었다. 박정희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시스템, ‘한국형 성장모델’의 단초는 2005년을 전후해 ‘동반성장전략’으로 구체화됐다.

■ 저성장 속 양극화

IMF개혁은 영미식 시장경제모델을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삼았다. 성장동력 회복을 위한 시장 효율성 제고가 지상목표가 됐다. 기업경영에서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됐다. 고용·노사관계의 유연화, 정부규제 완화, 시장개방 등이 강조됐다. 그러나 영미식 개혁은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두드러졌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전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참여정부 들어 선진국 경제모델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늘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네덜란드·스웨덴…선진국 경제모델 논의 봇물

예컨대 2003년 7월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네덜란드는 영미식 자유주의와 유럽 전통의 복지주의를 조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네덜란드식 모델은 당장 구체적인 정책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참여정부가 노동정책을 대화와 타협의 큰 틀 속에서 이끌어간다는 방향 제시”라며 네덜란드식 노사정 타협모델에 관심을 보였다.

또 2005년 당시 권오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권 대사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스웨덴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참모들에게 읽어보도록 권유했다.

새 국정목표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참여정부가 처음부터 영미식 모델의 극복이라는 일관된 방향을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 출범 첫해인 2003년의 경우 연초부터 북핵위기, 미-이라크전 발발, 카드채 대란, 신불자사태 등으로 경제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됐다. 겨우 위기를 수습한 뒤 그해 말 내놓은 국정목표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었다.

1995년 이후 10년 넘게 ‘마(魔)의 1만 달러’ 벽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목표설정은 절실했다. 하지만 과거 성장일변도 정책의 답습이라는 점에서 한국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다소 안이했다는 평가도 있다.

‘저성장 속 양극화’를 겨눈 제대로 된 칼

그러나 2005년 연두 기자회견은 참여정부가 서서히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진짜 적을 향해 제대로 칼을 겨누면서 본연의 컬러에 충실한 정책을 담금질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앞서 2004년 8월 30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지금 우리 경제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로 나뉜 양극화 문제”라며 “이런 양극화 문제는 단기적, 즉흥적 처방보다 구조적,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심화되고 있는 문제의식의 일단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1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연두기자회견에서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반성장-선진경제 비전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내내 경제 걱정만 한 기억밖에는 없다”

2005년 1월 1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대부분을 경제 문제에 할애했다. 회견 첫머리에서 “지난 한 해, 좋은 일 그리고 궂은 일이 참 많았지만, 내내 경제 걱정만 한 기억밖에는 없다”고 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놓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경기는 시기와 속도가 문제일 뿐 반드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경기회복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바로 산업간, 또는 기업간, 또는 근로자 상호간의 양극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극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소득격차가 커지는 것은 물론, 성장잠재력과 사회통합의 기반마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양극화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는 동반성장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장하면 저절로 일자리 늘어나던 낭만적 시절 끝났다

이날 노 대통령이 제시한 ‘선진경제’라는 말은 ‘동반성장정책’과 짝패를 이뤘다. “가장 중요한 서민복지는 역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반성장전략은 과거 ‘경제성장’에 있었던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일자리 창출’에 두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저절로 일자리가 늘어나던 낭만적 시절은 끝났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선진경제 비전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선진경제를 위해 “금융,회계, 법률, 디자인, 컨설틸, 연구개발과 같은 지식서비스업의 집중 육성”과 “자유무역협정(FTA)의 적극 추진 등 개방형 통상국가 전략”을 제시했다.

동반성장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지금까지 본 최고의 보고서”

이러한 동반성장-선진경제 구상은 2006년초 국민경제자문회의가 펴낸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보고서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의 보고서”라고 격찬했던 이 보고서는 동반성장전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향 등을 망라했다.

보고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산업간, 수출-내수간, 산출-고용간, 성장-분배간 연계가 약화된 만큼 경제성장의 중심축을 과거 수출 위주에서 내수기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에는 산출과 성장이 강조됐지만 이제는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정책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맞춰 동반성장전략은 성장잠재력 확충과 사회안전망 확대를 양대 축으로 삼았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는 신기술산업, 부품소재산업, 지식서비스산업 등을 육성하고, 대외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또 경쟁탈락자,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마련돼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 동반성장전략이란 무엇인가

칼끝은 ‘저성장 속 양극화’를 제대로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요리할지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도 고심을 거듭했다.

2006년 1월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은 “양극화가 10년 뒤 개선될 것이냐고 했을 때 지금 제도로는 낙관하기 힘들다. 빨리 성장해야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얘기도 있고, 양극화가 해결돼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 “이대로 가면 앞으로 10년 뒤엔 어찌될 것이냐” “정부에서도 내 궁금증을 풀 정책을 내놓는 일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10년 뒤엔 어찌될 것이냐”

대통령의 고민은 ‘성장이냐, 복지냐’는 식의 양자택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과거 ‘선(先 )성장, 후(後) 분배’만으로는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한국경제의 구조병을 치유할 수 없는 만큼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치밀한 국가전략을 짜야한다고 봤다.

그러려면 과거처럼 경제정책은 성장을 위한 것이고, 사회(복지)정책은 분배를 위한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모두 성장과 분배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복지 지출은 낭비나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성장은 분배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했다. 그래서 동반성장전략은 동태적인 시각에서 양극화의 부작용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종합적인 국가전략으로 등장했다.

‘개별 경제주체의 대응역량·필요한 공적 지원 강화가 핵심’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7년말 펴낸 ‘선진한국을 위한 정책방향과 과제’ 보고서에서 “‘시장경쟁단계’에서는 국제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실현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고 혁신동기를 극대화하되, ‘경쟁 후 또는 경쟁 전 단계’에서는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개별 경제주체의 대응역량을 강화하고 필요한 공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 바로 이 전략의 요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본부장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우리 사회에는 복지정책에 대한 뿌리깊은 거부감과 저항이 있다. 그래서 동반성장전략에는 ‘복지도 결국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방어논리가 숨어 있다. 정부측에서 여러차례 복지지출이 늘면 경제성장도 잘 된다는 실증연구를 요구한 적이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문제는 사회(복지)정책의 목표를 성장으로 잡았을 경우 오히려 사회통합 등 사회정책 본래의 독립적 목표가 사라져 결국 사회정책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여정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2006년 1월 18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노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이날 행사는 참여정부다웠다. 행사 장소로 백범기념관을 선택한 것이 그랬다. 보통 한 해의 국정운영방향을 밝히는 연두 기자회견이 주로 청와대에서 열린 것을 감안하면 이날의 선택은 상징적이었다. 또 연설 중간중간 직접 표와 그래프를 펼쳐놓고 경제상황과 사회양극화 등을 설명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과학적 통계와 데이터를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이 묻어났다.

과학적 통계와 데이터를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

연두 기자회견의 키워드는 ‘근본적 해결책’이었다. 노 대통령은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대화·타협의 문화가 이뤄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월 18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신년 연설에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한국사회의 도전과제에 대비하자는 미래구상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대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2030년까지 장기재정계획을 세워보면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더라도 재정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범 초기 경제위기를 극복한 뒤 ‘저성장 속 양극화’라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대결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던 참여정부가 드디어 그동안 무르익은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서 2005년 10월 초부터 청와대는 ‘사회·경제정책 패키지안’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김병준 정책실장 주도로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구축, 미래성장동력 등 10여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며 준비작업을 벌여왔다.

같은해 10월 30일 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노 대통령은 멀로니 캐나다 총리를 언급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여론이 부정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반대가 있는 경우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1988년 169석을 차지했지만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가 1993년 총선에서 겨우 2석만을 건진 사상 최악의 참패를 겪었던 멀로니 캐나다 총리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고민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었다.

화두는 던졌지만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근대 정치학의 초석으로 평가되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국가리더의 조건으로 재능(virtu), 행운(fortuna), 시대정신(necessita)을 꼽았다. 노 대통령은 타고난 논쟁가로서 국가의제를 선점하는 탁월한 ‘재능’을 십분 살렸다. 양극화와 미래과제 해결이라는 당면한 ‘시대정신’을 국민적 화두로 던졌다. 그러나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2006년 1월 26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의 원인은 현 정권이 지난 3년동안 만들어 놓은 경제불황 때문이다.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 중에 과연 어느 길이 선진 한국으로 가는 올바른 길인지 국민 앞에 당당히 밝히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노 대통령의 미래 제안은 증발하고 온나라가 증세론에 초점을 맞춰 시끌벅적했다.

■ 달(미래)을 가리켰는데, 모두 손가락(세금)만 쳐다봐

정치권은 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법인세 2%포인트 인하 감세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2005년 하반기에도 감세안을 들고 나왔다. 감세정책은 세금인하라는 인센티브를 주면 개인과 기업이 더욱 열심히 일해 경제가 살아나 오히려 조세수입이 늘어난다는 아이디어에 기반한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감세정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아이디어(세율과 조세수입간에는 역 U자 곡선의 관계가 있다는 래퍼곡선이론)가 국회의원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와 재정적자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감세의 혜택이 일부 고소득층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조세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문제점이 있다.

“세금 더 내라는 말 아니고 ‘한번 생각해 보자, 연구해 보자’는 것”

2006년 3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도 세금이 화제로 올랐다. 노 대통령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세금 얘기 나오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하루아침에 어려워지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시끄럽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엔 더 미룰 수가 없었다. 경제의 추세를 보니 올해는 숨쉬기가 나을 것 같아 얘기를 꺼냈는데, 그 이야기가 ‘세금 올리자는 말이냐’로 됐다. 그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답을 할 수 없다. 전략적으로도 세금 더 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 세금 더 내라는 말은 아니고 ‘한번 생각해 보자,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과거처럼 성장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방식이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한국형 성장모델을 찾는 것이 한국경제의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구룡마을과 그 너머로 보이는 타워팰리스 모습. <사진=연합뉴스>

달(미래를 위한 선택)을 가리켰는데, 모두 손가락(세금)만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이 제안했던 미래구상은 그해 8월 말 발표된 ‘비전 2030’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기획예산처는 ‘비전 2030’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세금으로 조달할 경우 1100조원이지만 이를 국채 발행 등으로 조달하면 이자부담 등이 추가돼 1600조원으로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장기 국가비전, ‘비전 2030’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설명이다. “비전 2030은 성장잠재력 확충과 사회안전망 확대를 두 축으로 하는 동반성장전략에 따른 것이다. 복지지출의 경우 경제성장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도록 장기계획을 짰다. 예컨대 경제성장률 5%에 물가상승률 2%를 가정해 예산증가율을 명목 경제성장률 7% 범위 안에서 짰다. 그리고 이러한 예산증가 범위 안에서 복지지출을 매년 9%로 잡았다.

이처럼 복지지출이 성장률과 예산증가율 범위 안에서 균형을 이룬다면 우리의 복지수준이 2015년 미국과 일본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비전 2030의 계획이었다.”

‘비전 2030’은 한 세대 뒤 우리나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제도혁신과 재정투자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으레 내놓곤 했던 장기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장기 국가비전이다. 세금논쟁에 묻혀 버리고 말기에는 아쉬움이 심대한 것이다.

2007년 10월 12일, 부산 서명초등학교에서 열린 ‘방과후학교 모범현장 방문 및 성과보고회’. 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말 곰곰이 깊이 생각하는 복지전략을 한번 우리가 함께 세워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세금 올리자는 이야기를 아무도 안 한데 대해서 저는 심각한 유감을 갖고, 저도 못 올리고, 올려보지도 못하고 돈이 이만큼 필요할 것입니다라고 계산서 내놓았다가 박살나게 또 때려맞고 물러갑니다.”

■ 두들겨 맞더라도 국가 장래 위해 할 일은 한다

두들겨 맞더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서라면 할 일은 한다는 게 참여정부의 일관된 태도였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미FTA는 참여정부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진보진영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크게 밑지는 장사였다. 더 큰 문제는 2005년부터 심혈을 기울여온 양극화 해소와 충돌할 여지가 많다는 점이었다.

2006년 3월 ‘국민과의 인터넷대화’에서도 이 점이 논란이 됐다. 한쪽에서는 양극화를 해소한다며 복지지출 늘려놓고, 다른 쪽에서는 한미FTA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양날개…‘좌파 신자유주의 정부’ 나쁜 게 아니다”

“세계화와 양극화 해소는 선진한국으로 가는 양 날개다.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방을 안 할 수 없는 게 우리 경제의 체질이다. 또 국민복지를 위해 함께 가야 한다. 제일 황당하게 느끼는 것이 참여정부에 ‘당신 신자유주의 정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당신 좌파 정부지’라고 물어본다. 좌파, 우파 정책을 가릴 게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필요한 일을 하고 서로 모순된 것을 조화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다. 나쁜 게 아니다.

이론의 틀 안에 현실을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현실을 해결하는 열쇠로서 좌파 이론이든, 우파 이론이든 써먹을 수 있는대로 써먹자는 것이다.”

참여정부 최대 히트어 중 하나로 기억될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이렇게 나왔다. 이후 노 대통령이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하면서 논란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처한 정치적 상황, 정책간 모순, 이에 대한 참여정부의 실용적 태도 등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말이다.

한미FTA, 뜬금없는 정책? 예고된 일?

세계화가 과연 양극화의 원인인가. 이에 대해서는 IT중심의 기술진보, 중국의 부상 등 다양한 양극화 요인들과 비교하면서 보다 엄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정 정치적 입장에서 봤을 때 한미FTA는 뜬금없는 정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포스트 박정희모델’의 대안으로 삼았던 동반성장전략이 성장잠재력 확충과 사회안전망 확보를 양대축으로 삼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FTA는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성장잠재력 확충 노력 결실 맺는 증거들

2008년 1월 한국금융연구원(KIF)은 ‘참여정부 주요정책의 성장잠재력 기여도 분석’ 보고서를 냈다. 일반균형연산(CGE)모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한미FTA와 한-EU FTA 체결로 인한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제고 효과가 향후 10년간 연평균 0.76%포인트(자본축적 및 생산성 향상 감안)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금융허브구축 등 금융산업 선진화(연평균 0.29%포인트) △R&D 투자확대(0.6%포인트) △지역균형발전정책(0.2%포인트) △남북경협 확대(0.03%포인트) 등 각종 정책이 효과를 볼 경우 잠재성장률이 6%초반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참여정부 초기보다 1.5%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인위적 경기부양보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에 집중한 참여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르핀 대신 ‘뿌리를 뽑자’…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

이러한 결과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보여준다. 한 해의 경제성장률 수치보다 중장기 성장잠재력에 더 많은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켰다는 점이다. 당장의 국민적 지지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경제의 미래,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잦은 모르핀 처방으로 금단현상을 겪는 환자에게 다시 모르핀 주사를 놓는 것은 손쉬운 처방이지만 장기적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과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단기적으로 약발이 좋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급 과잉상태인 영세자영업자, 한계기업 등의 구조조정이 지연돼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의 체질이 약화된다. 이것이 역대 정부의 이른바 ‘유능하고, 노련한’ 경제운영방법이었다.

반면 참여정부는 ‘뿌리를 뽑자’는 문제의식으로 본질에 대한 접근, 근본적인 해결책을 우선했다. 또 ‘멀리 보자’는 관점에서 단기 성과주의를 배격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당대의 성적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매번 업그레이드된 성적으로 재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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