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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터키 정상, 젊은시절 ‘행상’ 공통점

[G20 닮은꼴 정상들] ①한국 이명박 대통령-터키 에르도안 총리

어려운 가정환경 딛고 자수성가…서울시장-이스탄불 시장 지내

2010.11.08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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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서울 G20정상회의의 막이 올랐다. 아시아 국가에서 처음 열리는 서울G20 회의는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환율문제 등에 대해 가장 비중있는 인사(주요국 정상)가 모여 지구촌 금융위기를 해결할 결정적인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될 서울G20정상회의에 참가하는 19개국 정상(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교장관 대리 참석)은 어떤 사람들일까? 알고 보니 서로 공통점을 갖춘 정상과 국가들이 다수 보인다. 인물별, 국가별로 비슷한 점을 갖춘 정상들을 짝지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대한민국과 터키는 공통점이 많은 혈맹(血盟)이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반도 국가라는 점이 그렇고, 근대 이전까지 세계적 문화를 꽃피웠던 동북아와 유라시아의 문화강국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양국 정상의 이력도 비슷하다.
터키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렸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터키는 브라질에, 우리나라는 독일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3, 4위전에서 만난 두 나라는 승패를 떠나 혈맹의 우정을 돈독히 나눴다.

샐러리맨 신화, 이명박 대통령(68세)

이명박 대통령에게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샐러리맨 신화’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대기업 사장, 서울시장, 대통령에 오른 그의 이력에 대한 별칭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그는 경북 포항의 죽도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녀야 했고, 고교 졸업 후에도 달동네 노동자로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얻어 공부한 끝에 대학(고려대)에 합격했다. 그는 고대 상대 학생회장 시절 ‘한ㆍ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ㆍ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시위 이력으로 취직이 안 되자, 그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청와대와 담판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청년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인 1977년 36세에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 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와 이라크 화력발전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태국 고속도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끝까지 금고를 지켰던 사건과 1980년 국보위에 대항해 현대차를 지킨 일화도 회자된다.

사업가에서 1992년 14대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가로 변신한 그는 재선 의원을 거쳐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시장 재임시절 누구나 불가능하다던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성공시켰고, 우리나라 최초로 공공정책을 세계로 수출했다.

행정에 경영을 도입한 이명박 리더십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청계천 복원사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됐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최고시행자상을 받았다.
특히 ‘TIME’은 2007년 10월 그를 ‘올해의 환경영웅’으로 선정, 서울시장으로서 그의 업적을 인정했다. 서울시장의 업적을 바탕으로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됐고, 2008년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후 닥친 세계적 금융위기를 선도적으로 극복하고, G20정상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으며, 2010년 G20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중동의 ‘영웅’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56세)

터미 에르도안 총리
에르도안 총리
 터키 최초의 이슬람 정당 출신 국가원수로 국내 개혁과 중동 평화에 앞장서며 중동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러나 에르도안 총리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그는 이스탄불의 빈민가 출신으로 책값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의 거리에서 참깨 빵과 레모네이드를 팔아야 했다. 서민적인 친화력을 바탕으로 개헌을 성사시킨 에르도안 지도력은 이러한 이력이 바탕이 돼 가능했다는 평가다.

가난했지만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이스탄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영국에 유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1년 고향 카이세리에서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돼 시의 3대 과제였던 물부족, 공기오염, 교통지옥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국적 정치인이 됐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1년 이슬람교를 기본으로 하는 정의개발당(AKB)을 창당한 뒤 이듬해 총선에서 국회 550석 중 363석을 획득해 터키 건국 이래 최초로 이슬람계 정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2003년 총리 취임 이후에는 이슬람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던 적극적 투자유치 정책을 펼쳐 경제총리로 두각을 나타냈다.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경제로 재현하겠다’는 그의 꿈은 지난 6년 간 연평균 7.3%의 경제성장률 달성, IMF 빚 235억 달러에서 70억 달러로 차감, 20%대였던 실업률도 10% 선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로 나타났다.

세계 외교가에서도 에르도안의 주가는 높다. 그는 최근 미국 주도의 이란 제재에 반대하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등과 ‘이란의 농축 우라늄 해외반출 합의’를 이끌었다. 미국의 권위에 맞서면서도 미국과 껄끄럽지 않게 이란 문제를 해결해 노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에르도안의 터키를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는 지도자다. 다보스 포럼에서 에르도안 총리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가자지구 침공에 대해 “당신은 사람 죽이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쏘아붙이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의 가자행 구호선 공격에 대해서도 그는 “살인하지 말라”며 이스라엘을 질타했다.

◆ 터키는 어떤 나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가로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등 다양한 문명이 등장했던 동서양 문화의 교차점이다. 전체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지만 이슬람권 중 유일하게 ‘세속주의’를 택해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히잡을 두르지 않은 여성을 볼 수 있다.

1923년 무스타샤 케말 아타투르크가 터키공화국을 세우면서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했고, 정치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 형태이며, 현재 에르도안 총리의 정의개발당이 다수당으로 친서방, 시장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는 8590달러이며, 자동차와 기계, 철강, 의류 등을 주로 수출한다. 우리나라의 수출대상국 32위, 수입대상국 51위로 현대차와 LG전자의 생산기지가 있다. 우리나라와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진행 중이며, UAE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원전수주 협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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