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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알프스 못지않은 장관에 ‘헉~’

[‘2012 통일미래 리더캠프’ 탐방기 ①] 중국 도문대교~백두산

2012.07.26 정책기자 구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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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날씨라면 백두산 천지를 볼 확률이 99퍼센트라고 할수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기 위해 새벽 일찍 버스에 올라탄 학생들은 가이드가 전해준 희소식에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백 번 오르면 두 번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됐다는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차세대 통일 리더들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찾았다. ‘2012통일미래리더캠프’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8일까지 2차에 걸쳐 개최되었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주최한 이번 캠프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한 지원자들의 에세이와 스마트폰 영상물 시놉시스를 선별해 총 200명을 선발했다.

평소 대북문제에 관심이 많던 기자는 북한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이번 캠프에 동참했다. ‘동아시아 세력균형 타파를 위한 통일 한국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천지를 오르는 길은 알프스 못지 않은 장관이다.
천지를 오르는 길은 알프스 못지 않은 장관이다.

이번 캠프에는 전공을 불문하고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선발되었다. 정치외교, 경제, 경영, 법학, 중어중문학 등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통일’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따라 모인 것. 이들은 각기 북한인권, 동북공정, 개성공단 등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한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선발된 학생들은 6박 7일간 북·중 접경지역을 탐방하며 차세대 통일 리더로서 통일의식을 고취시켰다.

☞ 7월 12일 - 통일교육원(1일차)

12일, 첫 날 일정은 서울 수유동의 통일교육원에서 시작됐다. 캠프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통일교육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통일생각 발대식·통일항아리 토크쇼에 참석하는 것으로 통일미래리더캠프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인기 개그맨 최효종의 사회로 진행된 통일항아리 토크쇼에서는 류우익 장관이 직접 구운 통일항아리를 공개하고 장관과 함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통일미래리더캠프 참가자들에게 중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통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뜻 깊은 행사였다.

☞ 7월 13일 - 중국 도착 (2일차)

우리는 파주에 위치한 영상수련원에서 숙박을 한 뒤,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의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흐린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중국을 처음 방문한 기자는 연길공항의 음산한 분위기와 허름한 시설에 많이 놀랐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공항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모든 일정은 버스를 타고 진행됐다. 보통 중국의 땅을 수탉 모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탐방할 연길부터 대련까지는 겨우 닭의 주둥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캠프 일정 동안 하루 평균 4~5시간 정도 버스를 탔으니 그만큼 중국 땅이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의미이다.

중국 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문대교
중국 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문대교’

☞ 7월 13일 - 도문대교 (2일차)

연길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도문대교. 도문대교는 중국의 도문시와 북한의 함경북도 남경시를 잇는 다리로 북한과 왕래가 가능한 곳이다. 기자가 머물렀던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몇 대의 대형트럭이 오가는 걸 보면 북·중간의 교역이 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도문’은 여러 갈래 물줄기가 합쳐진다는 뜻의 만주어로 일제시대 때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국경 쪽에는 관광객들이 북적거려 활기를 띄었지만 북한 쪽은 다리 근처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국경 바로 앞에 보이는 도시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큰 건물들이 있었지만 전력난 때문인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전혀 활기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잘 보이는 지역만 깨끗하게 꾸며놓고, 실제 주민들은 더 깊숙한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추정된다.
 
분홍색 선이 다리 한 가운데 있는 경계선이다.
분홍색 선이 다리 한 가운데 있는 경계선이다.

다리의 중간에는 국경의 경계를 표시하는 선이 그어져있다. 관광객들은 그 가운데까지만 갈 수 있는데, 선을 살짝 넘어도 괜찮다. 그러나 선을 너무 많이 넘을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눈으로 직접 보니 다리에 선 하나 그어져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 선 하나를 넘지 못하고 발만 살짝살짝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분단의 현실이 우리의 깊은 곳까지 내재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문교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 땅이 불과 몇 백 미터 앞에 있는데도 선 하나를 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도문대교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반면에 북송된 주민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할 때 가장 많이 넘어가는 지역 중 하나가 도문대교이다.

참가자들을 인솔했던 통일부 관계자는 실제로 이 지역에서 탈북자들이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자마자 군인들이 탈북자들의 손바닥에 꼬챙이를 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사진의 가운데에 보이는 것은 중국 쪽 다리의 전망대이고,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 7월 13일 - 대성중학교 (2일차)

한반도와 인접해있는 중국의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만주벌판을 누비던 우리 조상들의 주 무대이면서 동시에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의 근간이 되는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참가 학생들은 독립투사들의 혼이 서려있는 이 지역을 탐방함으로써 과거에 하나로 똘똘 뭉쳐 일제에 대항했던 한반도의 독립운동 역사를 통해 통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적힌 시비

우리가 가장 먼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간 곳은 대성중학교이다. 일제시대 때 중국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했던 대성중학교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윤동주 시인은 당시 용정 내에 있던 은진중학을 다녔다. 후에 용정에 있던 6개의 중학교(은진, 광명, 명신여자, 영신, 대성, 동흥)가 통합돼 대성중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용정중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도 용정중학교에는 조선족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민족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학교 곳곳에도 한글이 많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옛 대성중학교 터에 세워진 건물은 지금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앞에는 역시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웅장하게 세워져있다.

역사박물관 내부에서는 윤동주 시인뿐 아니라 용정의 민족운동과 용정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용정의 민족사학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족을 교육해 항일운동의 인재를 양성한 항일운동의 전진기지였다. 윤동주 시인의 친구이자 민족운동가인 문익환 목사, 장준하 선생도 통합된 대성중학교 출신이다.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 대성중학교 터에 세워진 건물로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만주의 민족교육에 있어서 대성중학교와 함께 신흥무관학교도 빼놓을 수 없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에 신민회 회원이었던 이회영, 이시영 6형제가 사비를 털어 설립한 학교로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했다. 당시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던 만주에 대성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와 같은 민족학교가 설립되고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의 군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 7월 13일 - 일송정 (2일차)

우리는 일송정까지 트래킹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송정은 유명한 가곡 ‘선구자’의 가사에 나오는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이다. 중국 룽징시의 서쪽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곳에 비암산이 있는데, 이 산 정상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모양이 정자 같다고 하여 일송정이라 부른다. 이렇게 멀리서도 찾아보기가 쉽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자주 모였다고 한다. 현재는 ‘일송정’이라고 쓰인 비석과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 7월 14일 - 무산시 (3일차)

중국 숭선에서 남평으로 건너가는 고갯길에선 북한의 무산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무산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철광석이 생산되는 곳으로 손꼽힌다. 그런 만큼 멀리서 봤을 때도 도시가 활력 있는 모습이었다. 무산과 중국 사이는 강폭이 좁아서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넘어가는 지역이다.

하지만 무산을 마주보는 중국 지역이 산지이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탈북에 성공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의 경우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배에 타고만 있으면 탈북 혹은 월북이 되지 않지만 육지에 상륙할 경우에는 탈북이나 월북이 된다.

이렇게 차 안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렇게 차 안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만약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몰수당하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

반대로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았던 60, 70년대에는 중국인들이 무산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조선족 가이드의 어린 시절에는 북한 아이들의 스케이트가 월등히 좋아 두만강에서 북한 아이들과 스케이트 시합을 하면 이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무산의 생활수준이 높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양질의 철광석들이 중국으로 헐값에 거래된다.

이곳에는 항상 중국 공안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된다. 만약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몰수당하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창문 사이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이드들이 중국 공안 몰래 요령껏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했지만 참가 학생들은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산을 빠져나가는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남의 땅도 아닌 우리 땅을 사진 찍는데 중국 공안이 제지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다들 남의 나라 눈치를 봐야 하는 조국의 분단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7월 15일 - 백두산 (4일차)

드디어 백두산에 오른다. 높이 2750미터의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이라 하여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다. 통일미래리더캠프 참가자들은 북한과 마주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오르면서 민족과 통일의 숭고함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중국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북파, 남파, 서파의 세 가지가 있다. 우리는 서파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먼저, 모든 관광객들은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셔틀버스 승차장에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그만큼 많은 셔틀버스가 분주하게 오갔다. 서파로 가면 셔틀버스를 약 한 시간 정도 타고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높은 지대까지 올라가면 나무가 없는 가파른 산길에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마치 알프스의 모습과 같은 장관이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셔틀버스의 종착지는 천지로 오르는 계단이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계단을 따라 천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계단의 수는 1,200개 정도인데 넉넉하게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천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산지대라 평지에서 걷는 것보다 더 빨리 지치므로 적절히 쉬면서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애국가를 부르는 행위나 일체의 깃발을 드는 것이 금지된다. 심지어 천지에서부터 흐르는 조그만 계곡의 물을 담아서도 안 된다. 기자도 조원들을 인솔하기 위해 ‘11’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었다가 빼앗겼다.

백두산 천지는 안개가 많아서 백 번 가면 두 번 정도 천지를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맑은 날씨를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통일미래리더캠프 1차 팀도 안개 때문에 천지를 보지 못했는데 2차 팀은 운이 좋게도 아주 맑은 날씨에서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는데 여러 줄이 한 줄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중국 관광객들의 몸싸움으로 우리 학생들이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 큰 소리로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몸싸움과 새치기가 난무하는 것을 보니 아직 대국으로서 중국의 시민의식은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셔틀버스를 탄 참가 학생들도 중국 관광객들의 무질서에 혀를 내둘렀다.

정책기자 구희상(대학생) mejunat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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