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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찾아 달리는 ‘인문열차’에 몸을 싣다

[국립중앙도서관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①] 순천 선암사

2015.03.19 정책기자 이정훈

매화가 필적에 매화를 즐길 줄 아는 게 인생을 멋스럽게 사는 게 아닐까요?”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의 짤막한 인사말이 매화를 보러가는 탐방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지난 14일 오전 754,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40여 명의 탐방객들과 함께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를 만나러 남도해양열차(S-트레인)에 올랐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코레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인문 열차, 삶을 달리다는 인문학자, 진화생물학자, 소설가, 유명 요리사가 독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가는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은 국립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인문학 열풍을 불러왔다. 그 열기가 이어져 새로 시작하는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는 쉬운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지향하며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가지고 낭만적인 기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행운의 주인공인 40명의 탐방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5,400명의 신청자 중 뽑힌 40명의 탐방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남도해양열차에는 가족석, 연인석은 물론 다례체험실까지 꾸며져 있다.
남도해양열차에는 가족석, 연인석은 물론 보성녹차를 맛볼 수 있는 다례체험실까지 꾸며져 있다.
 
덜컹거리는 기차소리가 긴장한 마음을 풀리게 한다. 처음 만난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방송을 통해 여행객들의 사연과 함께 들려주는 신청곡이 기차 여행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줬다. 지루해지자 옆 칸으로 옮겨 보성녹차를 맛보았다. 좌식으로 꾸며진 다례실에서는 다도 체험도 가능하다.

순천역에 내려 선암사로 향했다. 따뜻한 기온 덕에 입고 온 외투가 버겁게 느껴진다. 선암사는 백제성왕 5(527)에 창건된 고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고매(오래된 매화나무)를 보기 위해 한참을 걸어 올랐지만 지조 높은 매화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쉬움에 망울만 있는 매화꽃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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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강사 안대회 교수(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는 사연이 깃들여 있어야 가치있는 매화라며, 조선시대에는 추운 겨울에 나귀타고 매화를 보러 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망울만 있는 선암매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탐방객들
망울만 있는 선암매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탐방객들

 아들과의 기차여행이 좋았어요.”

8살 아들과 함께 참가한 정예선(37, 통역사) 씨는 어린 자녀와의 여행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빠른 것만 좋아했는데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니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낯선 이들과 한 자리에 모인 게 신기하다고도 했다. 안대회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매화를 진지하게 감상하는 어른들 옆에서 최연소 참가자인 8살 장동민 군은 절 마당을 뛰어다니며 나름의 재미를 찾고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때
, 고즈넉한 금둔사의 붉은 매화꽃 앞에서 사람들은 낮은 탄성을 질렀다. 남녘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납월홍매의 아름다움이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곳곳에 핀 매화꽃을 찾아다니며 스마트폰에 담느라 다들 분주하다. 사찰 벽에 걸린 시를 열심히 옮겨 적던 할머니께서 동행한 친구에게 시를 읊어준다. 느릿하면서도 어눌한 음성이 듣기 싫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엿들었다. 

금둔사 납월홍매
만개한 선암매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채워준 금둔사 납월홍매

보성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자마자 안대회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으로 지칠 법도 한데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매화 이야기를 경청했다.

꽃이 피면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가는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생명력, 지조, 순결을 상징하는 매화에 대한 애호는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후대로 갈수록 매화 사랑의 열기가 강해졌다. 퇴계 이황 선생은 매화를 형이라 부르고, 이옥은 자신의 저서인 ‘연경(烟經)’에서 자신의 가장 고결한 친구인 매화 앞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했다

금둔사 납월홍매
금둔사 납월홍매

매화를 선생이라 부른 조희룡은 매화를 대상으로 수많은 글과 그림을 남겼다. 1754년 경에는 매화를 감상하는 모임인 매사(梅社)’가 존재했다. 매화 탐닉 그룹이었던 이들은 매화가 피면 편지를 보내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나누고 함께 시를 짓고 읊었다. 매화광이었던 김홍도는 기이한 매화를 사기 위해 그림 값으로 받은 30냥 중 20냥으로 치르고 8냥으로 친구를 불러 모아 매화 감상 술자리를 열었다고 한다. 30냥은 지금으로 치면 3천만 원 정도라니 매화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빼앗겼던 와룡매(일본에서는 조선매라 부름)를 조만간 원래 있던 창덕궁 선정전에 다시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매화에 대해 알고나니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각자 배정받은 숙소로 갔다. 처음 만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잔다는 사실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그런 걱정도 잠시, 매화를 보러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금세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수연(46, 회사원) 씨는 매화를 보고 시름을 잊은 느낌이라며, 맞벌이 부부라 평소 대화가 없는데 남편과 함께 참여하니 얘깃거리가 생겨 좋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 지하에 있는 해수탕으로 갔다. 탕에 앉아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녹차를 끓여 하루 동안 우려낸 탕이라는 녹차탕에 앉아 전날의 피로를 풀었다. 입술 끝에 짠 맛이 느껴진다.

광양매화마을
광양매화마을
 
해장국을 든든히 먹고 광양 매화마을로 향했다. 어제가 축제 시작이라는데 입구를 꽉 메운 차량들로 길은 정체 상태이다. 순천에서는 귀하디 귀하신 몸이었던 매화가 길 양쪽에 가득이다. 전날 개관했다는 광양매화문화관을 둘러보니 매화 문양이 새겨진 공예품을 구경하는 건 물론 매화마을의 탄생과정을 비롯한 매화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매화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5년 됐다는 매실묘목을 7천 원에 팔고 있었다. 김홍도가 그림 값으로 받은 거금을 매화 사는 데 썼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산을 오르내리며 곳곳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시 한 수 읊조리고 가는 재미가 좋았다.

‘이 꽃 잎 들/ 김용택/ 천지간에 꽃 입니다/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 입니다/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중략)’

매실이 담긴 항아리들
매실이 담긴 항아리들
 
매화마을에는 10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있다. 모든 꽃이 만개한다면 이곳에서야말로 어제 강의에서 들었던 향설해(香雪海·향기로운 매화의 바다)’를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강사 옆에서 늘 질문이 많던 김효재(63, 정치토론가) 어르신께 그냥 여행과 이번 여행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인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인문학은 바로 가화만사성이라 말하는 국립중앙도서관 류정영 기획연수부장은 손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기관에서 앞장서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이끌어줘야 한다며, 주말로 시행날짜를 옮긴 것도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길 위의 인문학’이 중장년층 이상의 참여자가 많았던 것에 비해 이번 답사에는 모자, 부녀, 부부처럼 가족 단위는 물론 젊은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인문에 인생이 빠지면 안돼요.”

이번 탐방의 강사이자 인문열차 기획의원인 안대회 교수는 “학문 분야를 벗어나 삶에서 문화적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무얼까 고민했으며, 열차를 택한 이유는 교통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느림, 여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의도가 함께 있다.”고 말했다. 세대 격차도 편중되지 않도록 콘텐츠를 달리하고, 시기도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옥룡사지 터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옥룡사지. 지금은 빈 터만 남아있다.
 
천연기념물인 옥룡사지의 동백숲
벌소리가 싫지 않았던 옥룡사지의 동백숲길
 
신라 경문왕 4(864)에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라는 옥룡사지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빈터다.

왕건의 선친을 찾아가 집 자리도 정해주고 즉석에서 책을 지어주며 아이가 성장하기 전까지는 보여주지 말라했던 이가 바로 도선국사다. 이것이 풍수의 원류이며 고려 때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자생풍수의 시조이며 위대한 사상가인 도선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니 폐사지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천연기념물이라는 동백숲의 벌 소리도 싫지 않았다.

여수로 향했다
. 마지막 답사 전 점심으로 여수 10미 중 1미인 서대회와 민어매운탕을 맛봤다. 집 떠나 먹는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어느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게 없다. 답사여행인지 맛 집 기행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7만원의 참가비가 미안할 정도로 훌륭했던 음식들
7만 원의 참가비가 미안할 정도로 훌륭했던 음식들
   
여수 진남관은 1598(선조 31) 전라 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의 중심기지다. 이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충민사로 갔다. 지도자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서는 조선 사람이라면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거북선때문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전략 때문에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고, 호남을 지켰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는 설명 후 이어진 묵념에는 진심이 담겨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매화를 만나고 와서일까. 모두가 시인이 된 것 같다. 즉석 백일장 사행시 구절구절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벌써 다음 탐방이 기다려진다 

충민사에서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묵념을 올렸다.
충민사에서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묵념을 올렸다.
 
참가비는 1박2일 청소년(18세 이하) 5만 원, 일반인 7만 원, 당일은 청소년 2만 원, 일반인 3만 원.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l.kr/tour)에서 40명 선착순 접수.  

2차 탐방은 4월 18일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을 찾는 당일 프로그램이다.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생태원장이 강연한다. 3월 26일 오전 9시부터 인터넷 신청. 



이정훈
정책기자단|이정훈hunlee87@naver.com
정책기자 활동을 통해 열정적이고 호기심 많은 내가 가장 나답게 사는 법을 깨달았다. 사람 만나는 인터뷰로 인생을 배우는 것과 문화 관련 기사 쓰기를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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