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를 세 차례 샀다. 2001년 첫째가 태어난 후부터다. 선천적으로 편도가 약했던 아들은 자주 아팠다. 의사는 건조하지 않도록 습도를 잘 유지하라고 했다. 가습기 내부 청소가 번거로웠다. 관리가 허술했더니, 수증기가 잘 나오질 않았다. 게으른 탓이다. 초음파 가습기는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신중하게 고른 마지막 제품이다.
2003년 둘째가 태어났다. 멎지 않는 기침이 폐렴으로 이어져 두 차례 입원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1시간 넘게 가습기를 청소했다. 그 순간, 가습기 살균제를 알았다면 피해자 숫자에 딸이 포함됐을지 모른다. 게으른데다 정보에 밝지도 못했다. 딸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즈음인 2006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영유아들의 심각한 폐렴증상이 시작됐다.
 |
| 사진은 기사내용과는 무관 |
5년 후인 2011년, 급성 호흡부전 임산부 환자가 잇따라 사망했다. 역학조사가 실시됐고, 환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섬유화’로 진단받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 정부는 유해성이 입증된 해당 제품을 수거했다.
피해 환자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침과 호흡곤란이다. 안타까운 것은, 감기 증상을 버티다 호흡 곤란이 시작되면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폐로 힘겹게 숨 쉬는 경우라면 폐 이식을 하거나 평생 산소통을 착용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10명중 6명이 사망에 이른다. 기도 손상, 호흡곤란, 청색증 등의 증상은 순식간에 폐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중 40% 정도가 인공환기 요법 없이 호흡이 불가능하다.
현재 피해자들은 폐암 환자부터 가벼운 천식과 비염 등을 호소하는 경증환자까지 다양하다. 폐 이식을 기다리거나 산소통을 사용 중인 중증 폐질환 환자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에 따르면 장기간 사용한 사람보다 단기간이라도 집중적으로 쓴 사람에서 피해가 컸다고 한다.
1
 |
|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절차는 환경노출검사, 임상조직분야 검사를 거쳐 종합판정된다.(출처=환경부) |
질병관리본부와 아산병원 팀은 임상학적 증상, 영상판독 결과, 폐 조직 검사 등을 바탕으로 증상의 정도에 따라 환자를 1~4등급으로 나눴다. 등급에 따라 정부의 지원 여부 및 지원금 규모가 달라진다.
폐 섬유화가 진행된 1, 2등급은 폐가 종이처럼 뻣뻣하게 굳어져 호흡기능이 마비되면서 위독할 수 있다. 3, 4등급은 비염, 기관지염, 후두염, 인두염, 감기, 편도염, 천식, 급성호흡곤란증후군 등 폐 질환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환자다.
총 530명이 신청한 2차까지의 피해자 접수에서 221명이 1, 2등급 피해자로 판정됐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인정되는 경우, 검진과 치료를 위해 지출한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203명에게 37.5억 원을 지급했다. 추가로 신청한 752명에 대해 폐 기능 검사, 폐확산능력검사 등 전문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피해 조사·판정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사기관은 서울아산병원으로 한정했지만, 신속한 판정을 위해 아산병원 외 대형병원들을 추가 조사기관으로 지정하고, 내년 말까지 피해 신청자에 대한 조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1
 |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접수 후 전개 되는 진행 절차.(출처=환경부) |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접수 시 준비할 서류는 폐질환 인정신청서, 진료기록부,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공동의서, 신청인 신분증 사본이다.
서류를 준비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02-3800-575, relief@keiti.kr)에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접수할 수 있다. 신청서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피해자정부지원’ 사이트(www.keiti.re.kr)에서 내려받으면 된다.
사망한 경우는 사망진단서, 폐질환 입증을 위한 서류인 입퇴원 기록지, 퇴원요약지, 영상검사 기록, 조직슬라이드 원본, 조긱병리검사보고서 등 가능한 서류에 한해서 준비한다.
피해 신청 3단계에 걸친 조사절차는 이렇다. 사용제품, 기간, 사용량, 등의 환경노출조사와 폐기능 검사, 산소포화도 검사, X-ray, CT등 임상·영상·조직병리조사를 거친 후, 판정위원회와 환경보건위원회의 종합판정이 이뤄진다.
지난 4월 25일부터 시작된 4차 피해자 접수는 별도의 마감시한 없이 신청할 수 있다. 피해자 본인이 아니어도 가족이 신분증 사본 등의 필요한 서류를 갖추면 신청이 가능하다.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포함된 제품을 사용한 경우에도 피해가 인정되는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폐 이외의 장기, 비염, 천식 등의 증상에 대해서도 가습기 살균제와 인과관계가 확인되면 치료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어떠한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엄마의 꼼꼼함이 자식을 죽게했다는 죄책감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또 다른 절망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는 이제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늦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