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피아노 레슨은 직업이 됐다. 23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꿈에서도 학생들과 만난다. 피아노 강사에서 드론 강사가 된 박영(44) 씨는 “돌아보면 여기까지 온게 신기하다”고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지난 삶이 한 편의 소설 같다. 박 씨는 이제 가르치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낯선 분야라도, 천방지축 학생이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간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그의 인생 후반전을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요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23년째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 틈틈이 성교육, 환경교육 강사로도 활동했어요. 이번엔 드론 강사입니다. 지금껏 보수가 적거나 나이가 많다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애써왔어요. 지금도 전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드론 수업은 교실이 아닌 층고가 높은 체육관에서 이뤄진다. 박 씨는 45분 내내 학생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드론 조종법을 지도했다. 드론 조종법을 익힌 후 자신만만하게 스로틀(Throttle, 오른쪽으로 위 아래 이동)을 확 올리는 남학생에게는 “그러면 드론이 갑자기 위로 솟구쳐버린다”고 주의를 줬고, 조종법을 암기했지만 막상 드론이 뜨면 머리가 멍해지는 여학생에겐 “여러 번 실수하며 날려봐야 익숙해진다”고 위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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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강사에서 드론 강사로 변신한 박영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도록 즐겁게 활동할 수 있다”며 “도전하는 자세로 멋지게 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피아노 레슨, 23년간 학생들 가르쳐
성교육, 환경교육 이어 드론 강사 활동 “어느 분야든 도전”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우연히 시작했다. 열아홉 살 때 교회에서 피아노 치는 사람을 봤는데, 멋져 보였다. 그때까지 피아노를 쳐본 적 없었지만 2년 만에 바이엘을떼고 체르니 40번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운영하는 피아노학원에서 강사를 급하게 구한다고 해 아르바이트로 레슨을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에게 코드를 알려줬는데 금방 익히더라고요. 학생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으니까 말도 잘 통했어요. 얼마 후엔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개인 레슨까지 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제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다는 걸요.”
박 씨가 스물한 살이었던 1995년, 본격적으로 피아노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자신도 배워야 했다. 남들처럼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할 여유는 없었다. 피아노 강사나 대학 평생교육원 교수에게 레슨을 받았다. 클래식과 실용음악은 반주법이 달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배우지만 박 씨는 두 가지 모두 익혔다. 심지어 배운 적없는 코드법이나 단일 악보를 변형한 연주법도 종일 연구해 학생을 가르쳤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플루트, 리듬악기도 틈틈이 익혔다. 강사로 활동하는 동안 레슨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절 치열하게 저를 단련해온 덕분에 저만의 레슨법이나 학생 다루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지금껏 23년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때 훈련한 덕분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계에서 피아노 레슨은 쉽지 않았다. 복병은 또 있었다. 30대 후반부터 번번이 강사 채용이 불발됐다. 원장들은 나이 많은 강사를 아랫사람으로 두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박 씨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도 성교육, 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한 이유다.
박 씨는 디자인 강사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내일배움카드 제도를 활용해 웹디자인을 배웠다. 그러나 상담사는 “40대 중년 여성이 일러스트나 플래시를 배워 취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 나이에는 조리나사 요양보호사, 마트 직원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면 이런 현실에 주저앉을 법한데 박 씨는 반대였다. 설령 나이가 들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스스로를 구겨넣고 싶지 않았다.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지금껏 경제적 수입을 우선순위로 삼았어요. 나이 마흔쯤 되니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란 걸 알게 됐어요. 더 이상 물질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어요. 그게 오래 즐겁게 일하는 방법인 걸 깨달았거든요.”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박 씨는 두 가지 요건을 설정했다. 첫째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23년간 해온 데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회사에 소속된 정규사원보다는 프리랜서나 파트타이머가 적합했다.
박 씨는 길을 찾아 나섰다. 올여름 수원 시내를 지나가다 우연히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팔달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드론교육지도사를 양성한다는 내용이었다. 2개월간 과정을 이수한 후 자격증을취득했다. 드론 강사 1기생이 된 박 씨는 올해 8월부터 서울 전농중과 휘경여중에서 드론 조종법을가르치고 있다. 수업은 오후 1시쯤 시작하지만 아침 일찍 움직인다. 경기 오산시 집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동대문구까지 오려면 오전 9시 30분에는 현관문을 나서야 한다. 오고가는 데 5시간 넘게 걸리고, 보수도 많지 않지만 학교로 향하는 박 씨의 발걸음은 가볍다. 가족들은 박 씨에게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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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서울 전농동에 위치한 전농중학교 체육관에서 드론 수업을 하는 박영 씨와 학생들. 박 씨는 드론 강사 1기생이다. |
물질 중요하지만 자신이 즐거운 일 해야 인생이 행복
“할 수 있을까”보다는 “한번 해보자” 마인드가 중요
그의 인생엔 항상 학생들이 있었다. 피아노 레슨을 할 땐 초등학생들을 만났고, 성교육을 할땐 거뭇거뭇 수염이 난 남고생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환경교육 강사 땐 유치원생들과 놀이수업을 했다. 지금은 중학생들과 드론을 날린다.
그는 “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진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그렇게 해서 얻은 일자리라면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망이 밝은 일자리, 보수가 많은 일자리만 찾으려고 안 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가 건넨 명함엔 소속 회사도, 화려한 수상 이력도 없었다. 그저 드론 강사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박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저예요.” 마흔넷. 그의 인생 후반전엔 하늘을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드론처럼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