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아, 오늘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날씨 좀 알려줄래?” 회사원 김민성(가명) 씨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초롱이를 찾았다. 초롱이의 말대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우산을 챙긴 김 씨는 출근길에 다시 초롱이를 불렀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어울리는 노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팝송 한 곡이 흘러나왔다. 김 씨는 운전대를 잡기 전에 초롱이에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물었다. 초롱이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알려줬다. 김 씨는 초롱이 덕분에 궂은 날씨에도 회사에 지각하지 않고 출근할 수 있었다.
그의 하루를 책임지는 초롱이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 스피커다. 한손에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스마트 스피커에는 인공지능 비서인 ‘초롱이’가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초롱이’를 개발한 업체는 바로 마인즈랩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이 세계 AI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AI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미는 한국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마인즈랩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각각의 모니터에는 AI와 관련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AI개발부터 AI튜터까지 직원 50여 명은 각자 맡은 역할은 달랐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직원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2014년 설립된 마인즈랩은 처음에는 통계 분석에 사용될 수 없는 비정형 텍스트를 정형화해 기업 마케팅에 활용했다. 비정형 텍스트란 동영상, 사진, SNS에 적혀 있는 텍스트 등 분석에 활용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말한다. 마인즈랩은 이를 체계화해서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업에 컨설팅 및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후 마인즈랩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음성인식실의 ‘음성인식 스피치 투 텍스트(speech to text)’ 기술을 이전받으며 음성언어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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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즈랩 부사장 박성준 씨. (사진=C영상미디어) |
‘AI튜터’라는 새로운 직업
마인즈랩이 개발한 음성인식 서버는 고객과 상담사의 통화 내용을 텍스트로 전환한 후 저장한다. 데이터가 쌓이면 AI는 패턴화된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요구에 맞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박성준 부사장은 “AI는 상담사가 상담할 때 효율적으로 고객을 상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누적된 상담 자료로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고객 정보를 활용해 맞춤식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이제는 AI가 상담보조를 넘어 직접 고객을 상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AI가 부족한 상담사 인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6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5년 안에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한 박성준 부사장의 말이다.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AI와 관련된 일자리가 새롭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마인즈랩 역시 AI를 학습하는 조련사 역할을 하는 ‘AI튜터’를 지난해 10명 채용했다. AI는 그 자체만 보면 잠재성을 가졌지만 아직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지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게 박 부사장의 설명이다. 마인즈랩은 국내 AI기업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재 육성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또 다른 AI전문기업인 서울 서초구의 ‘코난테크놀로지’는 발화문, 회의록 등 대규모 비정형 텍스트에 대한 편향 분석사업과 특정 질의어에 대해 정의하는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질의 의도를 분석해 적합한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자동 QA 시스템을 최근 대형 통신사나 금융권에 선보이기도 했다. 코난테크놀로지 민경희 차장은 “최근 인공지능 환경은 데이터 증가와 딥러닝 구현을 위한 알고리즘 성능 향상 등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며 “이런 변화들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난테크놀로지 역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해 제품의 품질을 개선해나가고 있는 업체다. 코난테크놀로지는 푸드테크와 협업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챗봇(chatbot) 주문 서비스도 선보인다. 이 서비스가 실현되면 사용자는 편리하게 메신저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결제, 배달 상황 등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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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테크놀러지가 개발한 ‘코난봇’. 얄리(주)가 개발한 사물통신 음성 대화로봇인 ‘얄리팬더’(아래). |
생활 속에 파고든 AI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얄리(주)’는 인간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돕는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는 지능대화 전문기업이다. 얄리는 음성으로 말하면 이를 감지해 텍스트로 변환하고, 이 텍스트를 분석해서 사람의 의도를 알아내 적절한 답변을 해주는 ‘자연어 기반 대화 기술’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가상친구와 대화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말로 대화하는 스마트 인형 등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갈수록 증가하는 1인 가구에 적합한 제품인 것이다. 얄리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없던 인공지능 친구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양방향 음성대화가 가능한 대화완구 ‘도깨비 깨망이’는 해외 수출길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얄리는 어린이 교육을 위한 음성대화 로봇도 출시했다. 어린이의 학습행위를 실시간 탐지해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제공한다. 음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응답과 행동으로 반응해 아동과 교감하는 것이 특징이다. 얄리 이주경 과장의 말이다. “현재 화자의 대화 의도를 자동으로 추론하고, 대화 시 자동 학습 기능에 따라 연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대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언어교육, 노인용 말벗 등 다양한 분야로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외국어 구사에 서툴러 해외여행이나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었던 사람들도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서울 서초구의 ‘시스트란인터내셔널’은 세계 최초로 인공신경망에 기반을 둔 기계학습인 딥러닝을 이용한 번역 엔진을 내놓았다. 번역해야 할 문장과 번역이 완료된 문장을 하나의 쌍으로 두고 가장 적합한 표현이나 번역 결과물을 딥러닝을 통해 찾아내는 방식이다. 기존 통계 기반 기계번역은 ‘구’ 단위로 번역했다면, 인공신경망 기계번역은 ‘문장’ 단위로도 번역한다. 문장을 입력하면 기존에 입력된 데이터에서 필요한 단어들을 끌어올리고 최적화된 가중치를 찾아 필요한 단어를 배열해 번역문을 제공한다.
앞으로는 일일이 외국어를 문자로 입력해 번역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휴대전화 카메라 버튼만 누르면 된다. 외국어가 적힌 간판이나 메뉴판 등을 사진으로 찍으면 자동으로 텍스트를 구분해 번역해주는 제품도 출시됐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AI 100 연구진’이 펴낸 <인공지능과 2030년의 삶(Artificial Intelligence and Life in 2030)>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이 거의 모든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하게 된다고 한다. 향후 여러 산업의 결합을 아우르는 변화의 주체가 바로 AI인 것이다. 실생활에서 AI가 홍수처럼 밀어닥칠 날도 머지않았다. 이 순간에도 한국의 여러 기업이 4차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