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원삼 씨 들어오건 갖다 두고 오라죠."
필순은 자기를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보내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눈치에 실망한 것이다.
아무나 가져가면 어떨꾸. 아주 그 김에 인사라두 때구 오면 좋지 않아?
실상은 덕기가 필순을 좀 만났으면 하는 눈치기에 가라고 한 것이나 그댓말을 당자에게 하기는 싫었다.
*그댓말: 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
염상섭의 장편 소설 ≪삼대≫는 서울말의 보고로, 1930년대의 서울 방언과 생활 풍속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울의 만석꾼 조씨(趙氏) 일가 3대가 일제 식민 통치하에 몰락해 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소설 속에서, 서울 방언은 그 감칠맛 나는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울말도 방언이라고?
서울말은 표준어가 아니냐고요? 서울 방언은 대대로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말합니다. 즉, 서울 방언이 대한민국 표준어의 지역적 바탕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으나, 서울말이 곧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되는 표준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서울 방언은 특히 음운에서 표준어와 차이를 보입니다.
1. 오가 어로 바뀌는 비원순 모음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 높다?다, 보리버리, -보다-버덤
2. ㅎ이 ㅅ으로 바뀌는 ㅎ 구개음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 흉내숭내, 향긋하다상귿허다, 형제성제
3. 이중 모음을 단모음으로 바꾸어 발음하는 단모음화 현상도 나타납니다.
예: 계집애기집애, 별벨, 옛날엣날, 과자가자
4. 서울 방언에서는 에이, 어이, 어으, 오우 등과 같이 저모음이 발음하기 쉬운 고모음으로 바뀌어 발음되는 고모음화 현상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각박한 서울 생활에 더욱 생산적인 음운 형태를 선택해 나가며 변화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예: 그렇지그?지, 주로주루, 세고시:구
5. 첫음절을 된소리로 강하게 발음하는 어두 경음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 가루까루, 사람싸람, 조그맣다쪼그맣다
이 밖에 서울 방언에는 음성 모음화, 이 모음 순행 동화, 원순 모음화, 경구개음화, 연구개음화, 전설모음화,
음운 축약, 음운 첨가 등 다양한 음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방언의 문법도 표준어와 흥미로운 차이가 있습니다.
1. 조사에 다양한 변종이 있습니다. 주격 조사로 이가, 에가 등이 존재하고, 목적격 조사로 얼, 일 등이 쓰이며, 관형격 조사로는 에, 으, 이 등이 쓰이기도 합니다.
예: 이 정ː씨 땍에가 원 후허세요.
저녁덜얼 먹어요.
즈이 집사람이 그랬어요.
2. 특이한 연결 어미들이 쓰입니다.
예: 일요일이먼 꼭 와서/잘못허문 밥이 타요.
그거 주사 맞으믄 하루는 앓어이 대.
나갈랴구 그런 차에 그렇게 됐어.
그걸 갈비탕 먹드키(먹듯이) 먹어요.
가리쳐 줬으믄 좋겄는데.
3. 독특한 접속사가 사용됩니다.
예: 긍까(그러니까) 겁이 나 가지구.
그이까 부모네들이 감쳐 놓구 주지.
요기두 내자동 그르구(그리고) 요기서는 체부동이 있구
그른데 그때는 열네 살, 열세 살이믄 다 혼인했에요.
서울 방언의 어휘는 매력이 넘칩니다.
서울 방언의 어휘에서 보이는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숭눙, 메느리, 온체 등과 같이 이중 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또 버찌를 뽀ː지로, 치마를 초마로, 어머니를 어무니로 발음하는 원순 모음화 현상도 보입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을 일번으로, 입구를 입거로 발음하는 비원순 모음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살강을 설강으로, 빨강을 빨겅으로, 같다를 겉다로 발음하는 것은 음성 모음을 많이 사용하는 서울 방언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서울 방언도 다른 지역 방언처럼 서울 토박이가 사용하는 방언입니다. 언어학적으로 토박이는 3대 이상이 한곳에서 거주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데, 변화의 양상이 극심한 서울에서 이와 같은 토박이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울 방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문학 작품 속에서나마 종종 등장하던 서울 방언의 모습도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울 방언은 표준어 정립과 국어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방언입니다. 올바른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만큼 서울 방언에도 애정과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