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그 안에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인간승리. 에움길을 돌아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선 그 감동만은 영원할 것입니다. 정책브리핑은 9일 개막하는 패럴림픽에서 우리에게 불가능은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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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컬링에 ‘영미’ 있다면 휠체어컬링엔 ‘오성’ 이 있다. 선수 다섯 명의 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오성 어벤저스’로 불러달라”는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10일 첫 경기에 임한다. 왼쪽부터 이도하, 서순석, 방민자, 정승원, 차재관 선수. 뒤는 최종길 대한장애인컬링협회장(사진=대한장애인컬링협회) |
2010년 3월21일 오전(한국시각),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밴쿠버 패럴림픽센터에서 열린 2010 밴쿠버동계패럴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한국은 예선에서 졌던 강호 미국을 상대로 준결승에서 7-5로 설욕하고 결승에 올랐고, 곧바로 열린 결승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와 마지막 8엔드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 7-8로 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김학성, 조양현, 김명진, 박길우, 강미숙 등 하반신 장애인 5명이 일궈낸 기적이었다. 전용 컬링장이 2곳은 모두 대여가 안돼 수영장에 물을 얼려 훈련했던 설움을 이겨내고, 바지 속 오줌주머니가 터져 빙판 위에 쏟아졌던 창피한 기억까지 날려버린 쾌거였다.
비록 우리나라의 동계패럴림픽 출전 사상 첫 금메달을 아쉽게 1점 차로 놓쳤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틀어 겨울올림픽 단체종목에서 따낸 첫 메달이었다. 또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패럴림픽에서 한상민(39)이 알파인 좌식스키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딴 데 이어 우리나라의 동계패럴림픽 출전 사상 두 번째 메달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이번엔 안방 평창이 무대다. 이번에는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 세컨 차재관(46·이상 서울시청), 서드 정승원(60·경기도연맹), 후보 겸 세컨 이동하(45·경남연맹)가 나선다. 현재 한국 휠체어컬링은 세계랭킹 4위다. 2016년 키사칼리오오픈 은메달에 이어 지난해 7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최강 캐나다를 누르고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유력한 메달 후보다.
휠체어컬링 대표팀 주장 서순석은 지난 2일 서울시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 선수단 출정식에서 “여자컬링 대표팀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서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팀킴’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오성(五姓)’이 있다. 선수 다섯 명의 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오성 어벤저스’로 불러달라”는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종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팀을 국가대표로 내보냈으나 이번 대회에는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를 선발하면서 대표 5명이 나섰다.
‘오성’은 모두 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입은 중도 장애인이다. 그 중엔 이번 평창패럴림픽 한국선수단 최고령 선수인 정승원 선수와 ‘홍일점’ 방민자 선수가 눈에 띈다. 정승원 선수는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연소 출전자인 장애인 스노보드의 박수혁(18) 선수와 무려 42살 차이다.
정 선수는 컬링에서 세번째 투구를 하는 서드를 맡고 있다. 20여 년 전 산업재해로 하반신마비 장애를 입은 그는 론볼로 재활하다가 훨체어컬링으로 전향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US오픈, 캐나다오픈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경험을 쌓았고, 지난해 6월 패럴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정 선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패럴림픽 시상대 위에서 애국가를 듣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며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방민자 선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1993년, 여름휴가를 갔다가 차량 전복사고로 하반신마비 장애를 입었다. 31살의 한창 젊은 나이였던 그는 장애인이 됐다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고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도 헤어졌고, 10년 동안 칩거했다. 그는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다”고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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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컬링 대표팀 방민자 선수. 휠체어 컬링은 반드시 팀에 1명 이상의 여성선수가 포함돼야 한다. |
그러던 그는 동생의 권유로 장애인복지관에 나가면서 세상과 다시 만났다. 취미로 십자수, 수공예, 론볼 등을 접했다. 그 중에서도 잔디에 공을 굴려 표적 가까이 보내는 경기인 론볼에 마음이 꽂혔다. 그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숨이 차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운동에 흥미를 붙인 그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컬링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14년 만에 꿈에 그리던 패럴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여자컬링 대표팀에서 ‘국민 영미’가 맡았던 리드 역할을 바로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홍일점’ 방민자 선수가 맡는다. 휠체어 컬링은 반드시 팀에 1명 이상의 여성선수가 포함돼야 하는 등 비장애인 컬링과 몇가지 다른 규칙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빗자루질을 하는 스위퍼가 없다. 휠체어를 탄 선수들의 이동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대신 투구하는 선수 뒤에는 동료가 휠체어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준다. 휠체어를 고정시켜 스톤의 방향에 정확도를 높인다. 휠체어 컬링 선수들이 다루는 스톤은 스톤의 무게는 20㎏에 이른다. 이것을 딜리버리 스틱이나 손으로 밀어 과녁 중심에 가까이 투구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는 12개 팀이 참가해 예선 풀리그를 거쳐 4강부터 토너먼트로 승부를 가린다. 예선 11경기에서 적어도 7승4패 이상을 거둬야 4강행이 가능하다. 백종철 대표팀 감독은 “1차 목표는 4강 진출”이라며 “준결승에 올라가면 예선 1-4위, 2-3위가 결승 진출을 다투기 때문에 홈 관중의 응원이 중요하다. 반드시 결승에 올라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휠체어컬링은 10일(오후 2시35분) 미국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15일(오후 2시35분)까지 하루 평균 2경기씩 예선 11경기를 치른 뒤 16일 준결승(오후 3시35분), 17일 결승전(오후 2시35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