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휴양지 미국 하와이에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독특한 음식이 있다. 이름부터 낯선 '미트전(Meat Jun)'이다. 하와이 로컬푸드로 자리 잡은 이 음식에는 100여 년 전 하와이로 건너간 한국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
미트전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3년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던 시기 수많은 한국인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가 되기 위해 하와이행 배에 몸을 실었다. 낯선 땅에서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던 이들에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자 팍팍한 이민 생활을 버티게 하는 위안이었다.
그들이 하와이에서 이어간 음식 가운데 하나가 전이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고기와 채소 등에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기름에 지져 먹었다. 그중 고기로 만든 전은 하와이의 음식문화와 만나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바로 미트전이다.
미트전은 우리나라 육전과 닮았다. 조리 과정 자체도 비슷하다. 얇게 썬 소고기를 양념에 재운 뒤 밀가루와 달걀물을 차례로 입혀 팬에 부친다. 다만 양념은 조금 다르다. 소금, 후추로 담백하게 간을 하는 육전과 달리 미트전은 간장, 설탕, 마늘 등을 넣어 상대적으로 달콤하면서도 짭짤하다.
크기도 다르다. 미트전은 육전보다 크고 두툼한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먹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한두 점의 육전을 반찬이나 안주로 즐기는 우리와 달리 하와이에서는 큼지막한 크기의 미트전을 밥, 샐러드 등과 함께 한 끼 식사로 즐긴다.
노동자의 한 끼에서 하와이의 로컬푸드로
오늘날 미트전을 이해하려면 하와이의 '플레이트 런치'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플레이트 런치는 밥과 고기, 채소와 반찬 등을 한 접시에 담아내는 하와이 특유의 식사 방식이다. 여러 이민자 집단의 음식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노동자들이 간편하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사로 자리 잡았다.
미트전은 플레이트 런치와 궁합이 좋았다. 한 접시에 밥과 채소, 피클이나 마카로니 샐러드 등을 담고 그 위에 큼지막한 미트전을 올리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그렇게 미트전은 하와이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전의 조리법이 하와이의 식재료와 입맛, 식문화와 만나 한국에는 없는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난 셈이다.
한인 식당에서 출발한 음식?
미트전의 탄생 과정은 명확하지 않다. 하와이의 한 유명 한인 식당에서는 미트전이 한인 식당에서 출발한 음식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이민자 조상들이 하와이에서 육전을 만들어 팔았고 그것이 세대를 거치며 오늘날의 미트전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기록이라기보다 한인사회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과 가족사에 가깝다. 따라서 특정 식당을 미트전의 최초로 단정하기보다는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한국의 전이 현지 식문화와 만나 자연스럽게 변주되면서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와이를 넘어 미국 본토로
미트전은 이제 하와이를 넘어 미국 본토까지 진출했다.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의 한 레스토랑은 미트전을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과 하와이의 음식문화를 결합한 '코리안-하와이안 소울푸드'를 표방하는 이 레스토랑은 미트전을 자신들의 독특한 메뉴로 판매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한 언론에도 현지 한인 식당이 미트전을 메뉴로 선보였다는 뉴스가 실렸다. 한국에서 하와이로 이민 간 미트전이 이제 미국 본토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향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을지 모를 음식이 자식에게 손주에게 이어진다. 그러는 사이 음식의 국적도 바뀐다. 이제 미트전은 한국을 떠나온 이민자의 음식이 아니라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고향의 맛이 됐다.
한 접시의 미트전에는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그리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낸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다.
채상우 먹는 게 좋아 미식을 좇는 일간지 기자. '헤럴드경제'에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