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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푸는 우리유산]민속명절 세시풍속으로 변한 차례(茶禮)
차례는 일반적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 및 조상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차사(茶祀)라고도 부른다. 즉 정초, 하지, 동지, 매월 초하루 및 보름날에 행하는 참례(參禮),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추석, 중구 등의 속절(俗節)에 약밥, 쑥떡, 국수, 송편 등의 시절음식을 올리는 절사(節祀), 입춘 청명 등에 새로 나온 과일이나 생선 등을 올리는 천신례 등이 이에 속한다. 차례의 대상도 사당에 모셔진 불천위(不遷位)는 물론 기제 범위에 해당하는 4대 조상까지이다.
차례는 글자에서 보듯 원래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한다. 신라의 충담사에서 매년 중삼(重三, 3월 3일)과 중구(重九, 9월 9일)에 차를 끓여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나 경령전에서 설, 단오, 추석, 중구에 차를 올렸으며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도 ‘종의선사의 제사에 차와 과일을 올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진찬(進饌) 등의 연희에 차를 올리고,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는데 차와 술로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일찍부터 제사와 잔치 등에 차를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차는 7세기 전반인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으나 차가 신라에서 널리 보급된 것은 흥덕왕 3년(828) 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라 가져다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과 호남 지방이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었는데 이 지방의 기후 및 입지조건이 차나무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일부 승려 및 화랑도들이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사복이 원효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설화, 8세기의 보천과 효명 두 왕자가 오대산에서 수도할 때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 경덕왕 때 승려 충담이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삼화령의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 등은 이 시대 승려 사회에 차를 마시는 것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 승려나 화랑들이 차를 마신 것은 이들이 당대의 선량(善良)인데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의 효능이 이들의 수행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차를 마시는 풍속이 더욱 넓게 퍼졌으며 차는 주과(酒果)와 더불어 고려 궁중의 주요한 음식물 중의 하나였다. 궁중에서는 연등회‧팔관회 등의 국가적인 대제전이나 왕자‧왕비 등의 책봉의식에는 진다의식이 행해졌다. 고려시대에는 부처님께 바치는 ‘차공양’을 으뜸으로 쳤기 때문에 조상에게도 가장 귀한 차를 바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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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의 「장조평고사도」, 차를 끓이고 다식을 가져오는 모습에서 조선 후기에는 차문화가 많이 보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의 쇠퇴와 더불어 차는 퇴조한다.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차를 마시는 풍속이 쇠퇴하고 차에 대한 이해가 적어져 명나라의 장수 양호가 선조에게 “귀국에서는 왜 차를 마시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우리나라 습속에는 본래 차를 마시지 않는다” 고 대답할 정도였다.
물론 차도는 사원을 중심으로 그 명맥이 이어졌고 19세기에 차가 다시 성행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1960년대 이후 새로이 차도가 일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차 대신에 술이나 물, 숭늉을 올려>
오늘날 설과 추석 등에 지내는 차례의 어원은 여말선초 중국의 『주자가례』를 수용하면서 명명된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 이래 제례 및 특별한 잔치 등에 차를 올리는 예가 있었지만 사대부들이 『주자가례』의 제례를 수용하면서 그 절차 가운데 차를 올리는 예의 의미를 강조하여 차례라고 함축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주자가례』의 사시제(四時祭) 및 삭망의(朔望儀)를 보면, 절차 가운데 헌다(獻茶), 점다(點茶) 등으로 차를 올린다. 사시제의 경우 식사를 하도록 문을 닫는 합문(闔門) 이후에 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 바치는 절차가 있으며 정지삭망의와 속절의 및 고사의에는 주인과 주부가 술과 차를 올린 이후에 재배하며 다시 모든 참사자들이 사신(辭神) 대배하는 절차가 있다. 특히 보름에 행하는 망참의에는 술을 쓰지 않고 차만 쓰기 때문에 전적으로 사당에서 차를 올리는 예를 행한다.
이에 조선에서 『주자가례』를 따라 사당 또는 영당(影堂)에서 차를 올리면서 행하는 예를 차례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문건(1495~1567)의 『묵재일기』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정월대보름에 안봉사 영전(影殿)에 모셔진 조상의 영정 앞에서 차례를 지냈다. 떡‧국수‧포‧적‧과일 이외에 시절음식인 약밥을 진설하여 분향 강신하고, 이어 대추차와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었다. 독축 후 재배하고 물러났으며 잠시 후에 사신 재배하고 물러났다.’
권문해(1534~1591)의 『초간일기』에도 매월 초하루나 보름 등에 사당에서 차례를 지낸 기록이 보이는데 이때 새벽에 단지 국수와 떡을 차려놓고 술 한잔을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차례라 하여 항상 차를 가지고 예를 행한 것은 아니다. 율곡 이이(1536~1584)의 『격몽요결』에는 사시제에 진다(進茶) 절차에 숙수(熟水, 숭융)로써 대신한다고 했고 보름날에는 술을 쓰지 않기 때문에 차만 마신다고 했으나 오늘날에는 차를 쓰는 예가 없다고 했다.
한편 이익은 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마도 다식은 송나라의 대소용단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차는 원래 끓는 물에 달이는 것인데, 가례에는 점다를 썼다. 즉, 찻가루를 먼저 잔 속에 넣고 더운 물을 붓고 휘저었던 것으로 지금 제사 때 다식을 쓰는 것은 실로 점다에서 온 것이지만 물건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이재(1680~1746)의 『사례편람』에도 차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풍속에는 차를 쓰지 않기 때문에 진다(進茶), 점다(點茶) 등의 문장을 제외하며, 만약 따로 제물이 있으면 각 신위의 술잔과 잔 받침 사이에 수저와 접시를 놓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은 기제 및 차례 등에 『주자가례』대로 진다(進茶)에 차를 쓰기도 했으나, 대부분 우리나라의 풍속상 술이나 숭늉, 물로서 차를 대신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오면 기제 및 묘제가 사시제보다 중요시되고, 차례가 사시제를 대신해서 사당에서 설과 추석, 동지, 단오 등에 행해짐에 따라 차례상도 기제상에 준하여 차리되 밥과 국 대신에 시절음식을 올렸다. 이런 예를 보면 차는 조선시대에 많이 보급되지 않았지만 제사 때 음식을 차리는 풍속이 계속 이어졌으므로 차례라는 이름은 바뀌지 않은 채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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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의 차밭, 차례는 일반적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 및 조상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글자에서 보듯이 원래 차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근래에 차는 차례뿐만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사진 장명섭). |
홍석모(1781~1857)는 『동국세시기』에서 서울 풍속으로 정월 초하루에 사당에 배알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기록했다. 최영년(1856~1935)의 『해동죽지』에도 절사(節祀)를 차례라 했으며 설에 행하는 차례를 떡국차례라고 했다.
곽종석(1846~1919)의 『육례홀기』에는 차례가 육례(六禮) 속에 포함될 정도로 제례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육례홀기』의 차례 절차를 보면, 종조(설), 추석, 동지, 단오 등에 주인 이하 사당에 나가 분향재배하고서 참신하며, 각 신위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여 재배했다가 잠시 후에 모두 재배하고서 사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 차 또는 숭늉을 올리며 차를 올리는 예는 없다.
박문호(1846~1918)의 『시례집의』에는 차례라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차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삭참의에는 주인 이하 각 신위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 다음 독축하고 독축 후에 재배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모두 재배하고 사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밥이 있으면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린다는 진다의 차를 올리는 의미를 부가하고 있다. 이처럼 차례라든지, 차를 올리는 진다의 의미를 살리고 있지만 실제로 차 대신에 술이나 숭늉을 올리는 것이 보편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의례준칙」에 의해 단지 조, 부 2대에만 한하여 기일에 지내는 기제와 1년에 한 번 지내는 묘제만 제례로 통일되었다. 이때 차례의 절차는 신주 또는 지방을 봉안하고 강신(降神), 진찬(進饌), 단헌(單獻), 사신(辭神), 철찬(撤饌)을 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1969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준칙」도 ‘의례준칙’에 의해 2대를 봉사하는 기제와 함께 차례는 그 대상과 장소와 참례자의 범위를 기제에 준하되, 양력 1월 1일 아침에 떡국으로 밥을 대신할 수 있게 한 연시제(年始祭)와 추석에 떡(송편)으로 지내는 절사(節祀)로 통일되었다. 1999년에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에 의해 설(음력 1월1일)과 추석(음력 8월15일)이 명절차례로 정해졌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현재 차례 관행은 설과 추석에 성묘와 함께 행해지고 있으나, 지역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정월대보름, 단오, 중구, 동지 등에 약밥과 팥죽 등의 시절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옛날처럼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 등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이 항상 집에 계신 듯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집안의 일상사를 고하는 마음자세로 차례를 지냄으로써 조상에 대한 은덕을 되새겨보는 것이라고 최순권 박사는 설명했다.
원래 사당을 모시는 가정이 거의 사라지면서 차례는 민속명절인 설날, 한식, 추석날에 지내는 세시풍속(세시의례, 일상생활에서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민속)으로 자리잡아가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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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교하면 파평윤씨의 떡국 차례(최순권 사진). |
그런데 사당이 없어졌으니까 차례가 모두 없어질 성 싶은데 설날, 한식, 추석의 차례가 그대로 행해지는 데는 상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다른 명절과 달리 설날은 새해 인사로 어른께 세배를 드려야 하는데 돌아가신 조상에게 어찌 세배를 드리지 않는가 하는 효 정신에 바탕을 둔다. 한식은 언 땅이 녹으면서 초목의 생장이 시작되는 계절로 겨울 동안 눈사태나 없었는지 언 땅이 녹으면서 산소가 상하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등 산소를 제대로 간수하기 위한 반드시 필요한 행사로 볼 수 있다.
추석은 장마도 지나고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이다. 추수를 하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장마에 산사태는 안 일어났는지, 많이 자란 나뭇가지나 뿌리가 산소를 침범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면서 벌초도 하고 예를 올리는 날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조상들에 대한 예를 이렇게 거국적으로 올리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알려진다. 중국도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으나 한국처럼 국가적이지는 않다. 장경애는 어떤 나라의 조상들보다 우리의 조상들이 덕이 많은 것인지 우리가 그 어떤 후손보다 조상의 덕을 많이 입고 사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모두 다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대화되면서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이즈음 차례는 다하지 못한 효와 정신적인 의식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로 자리 잡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차례와 절사>
우리나라 명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석과 정월이다.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서 한가위 또는 중추(中秋)라고 한다. 추석은 가장 보름달이 밝은 가을 저녁이라는 의미이며, 중추는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추석은 사당에 망참(望參)을 하는 날에 해당하며 '망참'의 '망'은 보름을 뜻한다. 추석은 절기상 대체로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는 철인만큼 햇곡식과 햇과일을 조상에게 먼저 드리는 천신(薦新)의 날이기도 하다. 이에 명절이자 추수감사의 의미로 사당에서는 차례를 묘소에서는 절사(節祀) 또는 성묘를 했다.
그러므로 차례상의 경우 햅쌀로 밥을 지어 국과 함께 올리고, 떡 대신에 송편을 올리기도 하며, 쌀가루에 햇콩‧밥‧대추 등을 넣고 찐 떡을 놓기도 하며 밥과 국 대신에 송편만을 올려놓기도 한다. 추석이 너무 빨라 곡식이 수확되지 않으면 한줌의 벼를 베어 밥 대신에 놓기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추석보다는 중구(음력 9월9일)에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송편을 먹으면 소나무처럼 건강해지는 끈기가 생기며, 절개와 정조가 강해진다고 여겨왔던 우리다. 송편은 흰떡에 솔의 정기를 침투시킨 것으로, 정월초하루 유두, 추석날 제 나이 숫자만큼 송편을 먹어 솔의 정기를 체질화 시켰다.
특히 솔잎으로 빚은 송주와 솔잎차도 소나무에서 얻는 효과가 적지 않은 것들이다. 송편은 지방마다 빚는 법과 소가 다르다
차례상에 차려진 음식에 따라 차례 절차도 조금씩 다른데, 밥과 국을 올려놓을 경우에는 헌작 후에 숭늉을 올리는 진다(進茶) 절차가 있으며, 밥과 국 대신에 송편만을 올려놓을 경우에는 진다의 절차가 생략되어, 헌작 후 잠시 있다가(일반적으로 국궁을 함) 바로 사신재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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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하회마을 풍천류씨의 중구(重九, 9월 9일) 차례. |
추석에는 한식과 더불어 절사(節祀)를 지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묘제를 중시하여 고려 때부터 속절(俗節, 설‧한식‧단오‧추석)에 묘제를 지냈으므로 고관대작 소위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명절마다 차례와 함께 묘제를 지냈다.
추석의 경우 대부분 8월의 시제와 겹쳐서 사당에서의 시제보다는 묘소의 절사를 지냈다. 율곡 이이는 ‘우리나라 풍속에는 4명일에 모두 묘제를 지낸다. 단 묘제를 사시에 지내지, 가묘의 사시제와 차별이 없어서 미안한 듯하다. 만약 중용의 도를 구한다면, 한식과 추석에는 『주자가례』의 묘제에 따라 제사 음식을 갖추어 축문을 읽고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설과 단오에는 간략하게 제사음식을 마련하여 단지 단헌만 하고 축문을 읽지 않으며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4대 명일 중에서 추석과 한식을 으뜸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요즈음에는 명절이 설과 추석으로 제한되어 절사는 성묘로 대체되어 거의 지내지 않는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절사라 하여 묘제를 지내며, 묘소보다는 재실이나 사당에서 묘제를 지내기도 한다.
한편 제사나 차례를 올릴 때 진설하는 방식도 지역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제수 역시 고인의 생전의 기호나 형편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하고 독특한 것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과채탕적(果采湯炙)을 마련하고 조율시이(棗栗柿梨)등의 순서로 과일을 놓아 가는 것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원래 차례 상차림을 제수를 놓는 위치와 수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과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을 따르고 있는데 과거 조상들은 차례 상차림 속에서도 자신들이 생각한 일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서동인은 설명했다.
생선을 놓을 때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에 놓는다. 또 땅에 뿌리를 두고 얻어진 음식은 음(陰)을 상징하므로 종류의 수를 짝수로 맞추었고 그 이외의 음식은 하늘에서 얻어진 것으로 간주하여 양(陽)의 수인 홀수로 맞췄다. 과일의 위아래를 깎아 놓는데 그 이유는 잘 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드실 수 있도록 정성으로 다듬어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과일로는 오색(五色) 또는 삼색(三色)을 쓰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간소한 제사라 할지라도 삼색과실(三色果實)을 필수적으로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대추와 밤과 감 이렇게 세 가지는 반드시 쓰는 것으로 상식화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박상건의 글에서 인용한다.
첫째로 대추(棗)를 쓰는 의미는 대추는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서야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이 불어와도 그냥 꽃으로 피었다가 꽃으로 지는 법은 없다. 꽃 하나가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서야 떨어진다.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많이 낳고서 가는 것을 덕목으로 여겼다. 그래서 제사상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이는 것은 자손의 번창함을 상징하고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집안에 후손이 끊어지면 그 집안이 망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막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릴 때 시부모가 대추 한 움큼을 새 며느리 치마폭에 던져주는 것도 ‘아들 딸 구별 말고’ 대추 열듯이 많이 낳아 자손을 번창토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로 밤을 올리는 것은 하나의 밤알이 땅속에 들어가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서 줄기와 가지를 이루고 잎이 나서 하나의 밤나무가 될 때까지는 여느 식물과 다를 바 없지만 보통식물의 경우는 한 알의 씨앗이 썩어서 나무를 길러내면 그 최초의 씨앗은 썩어서 사라져 버리지만 밤만은 땅속에 들어갔던 최초의 씨 밤이 아무리 큰 밤나무가 되어도 절대로 썩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 때문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건 간에 최초의 씨 밤은 그 나무 밑에 생밤인 채로 오래오래 그냥 달려 있으므로 선조들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하기 위해 밤을 반드시 올려놓았다. 자손이 몇 십, 몇 백대로 내려가더라도 조상들이 언제나 나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상을 모시는 위패는 반드시 밤나무로 깎는 이유도 바로 밤나무가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한다 그런데 감 씨를 심으면 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품종, 탐스러운 열매의 감 씨를 심어도 감나무가 아닌 고욤나무가 나온다. 고욤은 생김새는 감을 닮았지만 도토리만큼 작고 떫어서 다람쥐 등이나 먹지 사람들이 먹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나무는 감 씨를 심어 고욤나무가 나와 3-4년쯤 되었을 때 그 줄기를 대각선으로 째고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거기에 넣고 접을 붙인다. 그것이 완전히 접합되면 다음부터 감이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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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 차례상에서 밤, 대추, 감을 반드시 올리는데 감은 사람은 가르침을 받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사진 j2h502). |
감이 뜻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에는 생가지를 째서 접을 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참고 견디며 가르침을 받고 배워 즉 선조들의 예지를 이어 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에 밀양 박씨 문중에서는 이들 과일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대추는 씨가 하나인 과일인데 열매에 비해 그 씨가 큰 것이 특징으로 왕을 상징한다. 밤은 한 송이에 씨알이 세 톨이니 3정승을, 배는 씨가 6개로 6판서를, 감은 씨가 8개이니 8방백(관찰사)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왕은 항상 지엄하고 존경의 대상이었는데 그런 왕을 상징하는 과일을 진설했다는 설명은 믿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여하튼 우리 조상들은 제물 하나를 차릴 때에도 자손에 대한 가르침을 염두에 두었다. 조상의 산소 주위에 유실수를 심은 것도 후손들이 과일도 따먹고 조상님의 산소도 돌보라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매년마다 닥치는 명절을 고리타분한 전통이라고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의 선조들이 남겨준 의미를 명절에서나마 되새겨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는 지적이다.
<차례시의 주의할 점>
차례는 아무래도 격식을 차리는 행사라고 볼 수 있으므로 여러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하루 전부터 집 안팎을 청소하고 목욕재계하는 마음의 준비로부터 시작한다.
제기를 보면 보통 사용하는 그릇과 다른데 이는 예전의 조상들이 상을 쓰기 이전에 사용하던 굽이 있는 그릇을 그대로 써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학자에 따라 조상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에서 평상시 쓰는 그릇과 구분하기 위해 굽을 높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향은 나무진이나 나뭇조각, 나뭇잎 등으로 만드는데 향나무가 주로 쓰인다. 향은 부정을 깨끗이 하는 정화기능과 신성을 상징하는데 처음 인도에서 향이 사용된 것은 상징적 의미보다 실질적 의미가 더 강했다. 열대 지방인 인도의 기후 상 악취를 제거하고 해충들의 근접을 막기 위해 향을 피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환경을 정결하게 하는 향 피우기로 신성을 띠게 된 것이다.
갈수록 현대화되는 세상에서 옛날 전통을 굳이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으나 조상들이 지켜 온 전통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유산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특히 음식을 만들거나 한복을 입을 때 주의할 사항이 적지 않은데 www.jinyoung.co.kr의 글에서 인용한다.
우선 음식 만들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고 설명된다.
① 고춧가루, 마늘 양념은 하지 않는다.
② 국물 있는 음식(탕, 면, 식혜)은 건지만 쓴다.
③ '치' 자가 들어간 생선(꽁치, 갈치, 삼치), 비늘 있는 생선(잉어)은 쓰지 않는다.
④ 붉은 팥은 안 쓰고 흰 고물로 쓴다.
⑤ 복숭아는 쓰지 않는다.
한복 입을 때 주의할 점도 많이 있는데 기억해두면 참고가 될 사항이다.
① 속옷은 반드시 갖춰 입는다.
한복의 맵시는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을 때 살아난다. 저고리 안에 입는 속저고리인 속적삼은 옷의 맵시를 살려주는 한편, 땀의 흡수도 돕는다. 치마는 과거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등 예닐곱 가지의 속옷을 입어야 했으나 요즘은 속바지와 속치마만으로도 족하다.
② 치마는 겉자락이 왼쪽으로 오도록 입는다.
치마는 입어서 뒤의 겉자락이 왼쪽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한다. 치마끈은 뒷 쪽에서 엇갈려 앞으로 오게 한 후, 중앙에서 묶어주면 저고리가 들뜨기 쉬우므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매듭을 잡아준다.
③ 저고리는 약간 앞으로 숙여 입는다.
저고리는 입었을 때 깃고대와 어깨솔기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앞으로 약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게 입어주고 이때 속적삼과 치마의 허리선이 저고리 밑으로 나오지 않도록 한다.
④ 외출 시에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입는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착용해야 한다. 두루마기는 삼국시대부터 의례용으로 착용하던 포가 조선 말기 외출용 정장으로 완성된 것으로 마고자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⑤ 버선을 신어야 진정한 한복의 태가 난다.
긴치마 밑으로 살짝 보이는 하얀 버선코의 아름다움은 우리 옷만이 가지는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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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상 차릴 때 일반적인 진설 방법. |
<차의 특성>
원래 차례의 의미가 차를 뜻하므로 차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한다.
차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커피보다는 타닌과 카페인이 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다. 차의 타닌은 녹차의 경우 카테킨(catechin)‧플라보놀(flavonlo)‧로이코안토시안(leucoanthocyan)‧페놀카본산(phenol carbonic acid) 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주종은 카테킨 유도체이다. 차 잎 속의 타닌의 7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홍차는 발효과정 중 산화효소에 의해 카테킨의 대부분이 에아후라빈(카테킨의 2배체에 상당하는 등색의 색소)나 데아르비진(중합도가 높은 적색 내지 갈색 색소)으로 변화한다. 홍차 중에는 테아후라빈이 0.5~1.4퍼센트, 테아르비진은 8~16퍼센트 함유되어 있다. 아미노산은 10여 종류가 함유되어 있는데 전체의 60퍼센트가 데아닌(글루타민산의 에틸아마이드로서 품질이 좋은 지미와 감미를 갖고 있다)이다.
차가 건강식품으로 크게 각광을 받는 것은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킴으로 심장병과 고혈압의 치료에 좋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즉 차는 적당하게 마시면 신경계통을 자극하여 정신을 고무하는 것은 물론 혈액의 수송을 촉진하고 근육 및 신경의 작용을 왕성하게 한다. 또한 자양을 도와서 근육을 건강하게 하고 동맥관의 기능을 양호하게 한다는 학자들의 발표이다.
다시 말하면 녹차는 플라본 계통의 성분이 들어 있어서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장용을 함으로써 동맥경화증이나 뇌졸중을 방지한다. 특히 녹차가 강심작용과 이뇨작용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체내의 노폐물을 깨끗하게 몸 밖으로 배설해주는 작용이 있어 신경통이나 류머치즘 등의 통증을 완화해 준다는 보고가 있다.
차의 중요한 효능 중에 하나는 타닌성분으로 인한 살균효과이다. 타닌은 단백질을 응축시키는 성질이 있어서 그로 인해 전체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추정되는 세균류에 타닌이 들어가면 세포가 응축하여 원형질분리를 일으켜서 사멸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차의 성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타민C는 홍차의 경우 발효과정에서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녹차의 경우 뜨거운 물에 부어도 파괴되지 않도록 차 잎을 증제할 때 비타민C를 파괴시키는 산화효소를 사멸시킨다.
카페인은 녹차에 많이 들어 있어 타닌의 떫은 맛과 함께 쓴맛을 나타내는데 각성작용이 있어서 신경을 약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머리를 맑게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녹차 속에 사포닌이 약 3퍼센트 정도 함유되어 있는데 사포닌이 항암작용을 한다는 것은 인삼의 특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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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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