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영역
[사진으로 보는 광복 60년 ⑬] '한강의 기적' 이룬 경제개발
1960~197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라인강의 기적’ 못지않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1961년 82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79년 1636달러로 20배 불어났으며 연평균 성장률은 9.3%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났고, 예상을 뛰어넘는 경제성장률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62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5.16 혁명세력은 “경제개발이 당면한 핵심과제이자 국가통치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경제개발의 키워드는 단연 ‘수출’과 ‘중공업육성’으로 모아졌다. 이 시기 베트남 파병에서 얻은 달러와 한일협정을 통해 들여온 일본의 자본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중요한 밑천이 된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목표는 자립경제 기반마련이었다. 이 기간 산업발전의 바탕이 되는 고속도로와 항구건설 등 기간산업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이어 1967년부터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부터는 대외 지향적 공업화에 목표를 두면서 수출이 크게 강조된다.
이에 따라 수출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등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는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다. 80년대에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3년이나 앞당긴 수치이다. 특히 1970년대 중화학공업은 경제를 이끈 효자산업이었다. 창원, 거제, 구미, 포항 등지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미국 일본에서 중고설비가 대량 들어왔다.
이처럼 빠른 경제성장은 국가주도 경제개발계획의 성과였지만 여기에는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값진 노동과 절약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값싼 노동력은 경제성장의 커다란 발판이었으나 이로 인해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했던 것이 사실이다.
1970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22살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외침은 당시 피폐했던 노동자들의 삶을 잘 말해준다.
낮은 임금, 농촌과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 이로 인한 극심한 소득격차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고도성장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성장이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
| 1962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는 전력, 석탄, 정유, 종합제철, 시멘트 등 기간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
![]() |
| 경제개발을 위해 다른 산업의 바탕이 되는 도로와 항구건설은 시급한 과제였다. |
![]() |
![]() |
| 빠른 경제성장의 1등 공신은 양질의 값싼 노동력이었다. |
글:박미영(mypark@news.go.kr)
사진정리:장명섭(jms1101@allim.go.kr)
사진편집:이정운(woddnsl@news.go.kr)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