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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버카충’ 모르는 당신은 구세대?
“아직. 문상 있으니까 그걸로 할 생각이야. 잠깐만, 나 버카충 못했어.”
“버스정류장 앞에 패마 있으니까 거기에서 해.”
위의 대화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면 경우는 두 가지이다. 인터넷, 텔레비전 등의 대중 매체를 좋아하지 않거나 주변에 십대, 이십대 청소년이 없거나.
| 최근 활개를 치고 있는 줄임말 사용은 개인이 아닌 대중을 향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
온라인에서 기승을 부리던 줄임말 사용이 최근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위의 대화에서 ‘문상’은 문화상품권, ‘버카충’은 버스카드 충전, ‘패마’는 편의점 ‘패밀리마트’의 줄임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구상’은 구두상품권, ‘드립’은 애드립의 줄임말이며, 빠바(빠리바게뜨), 미도(미스터도넛), 세일(세븐일레븐) 등 각종 유명 브랜드 또한 두 글자로 줄여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줄임말 사용은 말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소서(자기소개서)’, ‘고터(고속터미널)’ 등 몇몇 줄임말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이미 일상화돼있다.
국립국어원의 김세중 공공언어지원단장은 “줄임말은 의사표시를 할 때 드는 노력을 줄이려는 욕구와 또래 집단끼리 통하는 언어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됐다”며 “최근 문자메시지와 인터넷게시판 등 예전에는 없던 의사소통 방식이 사람들의 언어를 줄여서 간편하게 사용하려는 욕구를 증대시킨 것”이라며 줄임말 현상의 원인을 진단했다.
문제는 이런 줄임말 사용이 개인간의 대화 차원을 넘어 대중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에 등장하는 기사들은 줄임말을 아예 대놓고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또 주요 일간지들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청백전(청년백수전성시대)’등의 줄임말을 시사용어로 버젓이 사용하기도 한다.
‘무도(무한도전)’, ‘우결(우리 결혼했어요)’, ‘남격(남자의 자격)’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을 줄여 부르는 일도 빈번하다. 특히, 최근에는 각 프로그램의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의 줄임말을 공모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사회가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용어까지 무리하게 줄여 쓰다보니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도 의미가 통하지 않아 애를 먹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현상이 과거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났다면, 최근에는 오프라인까지 경계를 침범해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김세중 단장은 “줄임말은 예전부터 지속돼 왔던 행위이고 이러한 욕구 자체를 두고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대중을 향해서 하는 말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 단장은 “줄임말을 사용하면 안 되는 때와 장소에서까지 쓰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의사소통 장애, 위화감 조성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특히 잡지나 방송 매체에서 이러한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을 자체적으로 자제할 필요가 있고, 방송통신 심의위원회 등의 권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의지”라고 덧붙였다.
|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는 각종 ‘줄임말’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
이 같은 줄임말 사용은 의사소통의 방해는 물론 아름다운 우리 말 문화마저 파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에 ‘줄임말 , 은어사전’이 등장했을 정도이다. 이 은어사전에는 간지, 의느님 등 주로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각중 줄임말과 은어들이 수록돼 있다.
은어사전을 다운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대학생 강다현(여·25세)씨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다운 받았는데 열어보니깜짝 놀랐다”며 “이십대로서 나름 줄임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단어들이 많아 놀랐다. 계속 추가되는 단어들을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강 씨는 “이제 ‘까도남’, ‘차도녀’ 같은 줄임말들은 오히려 귀엽게 들리는 수준”이라며 “줄임말이 각 지역마다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있어 이러다가는 정말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줄임말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은실(여·37)씨는 “학교에 다녀온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못 알아듣는 말이 너무 많아 줄임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면서 “요즘은 초등학교 중학년만 돼도 또래들끼리 줄임말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씨는 이어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줄임말이 이미 생활로 자리잡은 것 같다”며 “이 현상이 더욱 고착화되기 전에 바른 우리말을 가르쳐야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괜한 강요로 아이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틈틈이 줄임말을 공부하며 아이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의 의사소통에 대한 노력을 줄이려는 것에서 비롯된 줄임말. 최근에는 그 간편함이 오히려 무기가 되어 돌아와, 세대 간 의사소통에 장벽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할 때이다.
정책기자 강윤지(대학생) hi_ang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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