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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鐵馬)를 통해 본 광복70년의 여정!

[광복70년, 70가지 나라사랑 이야기 (38)] 광복 후 순수 우리기술로 만든 ‘조선해방자호’

2015.08.24 정책기자 이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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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36년간의 험난했던 일제 탄압으로부터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해방은 우리 민족의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 왔다. 해방은 자유와 더불어 억눌렸던 암울함을 밖으로 표출하는 계기뿐만 아니라 진취적인 새로운 성장 동력을 필요로 했다.

말(馬)은 희망과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동물이다. 기차는  종종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가진 말(馬)에 비유되며  철마(鐵馬)라고 불린다. 기차는 대량의 물자와 인력을 빠른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근대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교통 수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45년 광복 후 우리 기술로 처음 만든 증기기관차, ‘조선해방자호’는 단순한 기차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억눌렸던 울분을 표출해준 철마였다.  

미국 브룩스사의 모가(Mogul Tank) 증기기관차로 우리나라의 첫 기차
미국 브룩스사의 모가(Mogul Tank)형 증기기관차로 우리나라의 첫 기차인 ‘모가1호’.(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조선해방자호는 1946년 5월 26일 서울~부산을 9시간 30분에 주파했다. KTX가 2시간 30분에 주파하는 요즘에 비하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무궁화 열차를 밤새 탔던 세대에겐 증기 열차가 이 시간대에 서울~부산을 달렸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조선해방자호는 식당차를 포함하여 총 9량을 증기기관차가 끄는 순수 국산 열차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총 정원은 512명이었다.  

1899년 첫 운행을 앞두고 있는 조선해방자호(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1899년 첫 운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첫 기차.(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순종황제의 연호를 딴
순종황제의 연호를 딴 ‘융희’호.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남북을 종단했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온 것은 1899년 9월 18일이었다.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 구간(경인선 철도) 33.8Km가 개통돼 시간당 20Km의 속도로 달렸다. 이 때 운행된 기차는 미국 브룩스사의 모가(Mogul Tank)형 증기기관차로 우리나라의 첫 기차였다.

우리나라는 민족 자본으로 철도를 건설하려 시도했지만 일본의 방해와 자금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광복을 맞을 때까지 일본은 철도를 독점 운영했다.1905년 경부선이 개통됐을 때, 경부선 열차이름을 순종의 연호인 ‘융희’로 붙였으나 한일합병 후 노조미, 히카리 등 현재 신칸센의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다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이 경부선에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조선해방자호’ 열차의 기적을 울리게 됐다.  

조선해방자호를 통해 철도를 주체적으로 운영했다는 긍지를 가지게 됐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조선해방자호를 통해 철도를 주체적으로 운영했다는 긍지를 가지게 됐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첫 운행을 앞두고 중요인사를 초대해서 성대한 전시회를 열 정도로 해방자호는 한국인들이 일제 강점기 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총집결해 만든 자부심의 기관차였던 것이다. 당시 언론(자유신문)은 일본 열차와 성능을 비교하면서 해방 후 열악한 산업 환경에서 이만한 성과를 이룬 자체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우리 민족에게도 밝은 미래가 올 것을 예견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조선해방자호가 초창기에는 초호화 특급열차로 운영돼 당시 서민들로부터는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해방자호는 이후 경부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간을 운행했다.

6.25 전쟁후에는 1955년에 제작된 통일호가 운행됐다. 이 당시만 해도 증기기관차와 디젤 기관차가 같이 운행됐다. 통일호 이후에 1967년 비둘기호가 운행됨과 동시에 증기기관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디젤기관차 시대가 열렸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하듯 열차의 이미지도 평화를 상징하게 됐다.

1969년 초에는 관광호라는 초특급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으며 1974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마을호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새마을호가 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최고급 기차였지만, ‘전국 1일 생활권’ 시대를 열었다.

1973년 중앙선 일부구간(청량리-제천) 전철화를 시작으로 1975년에는 국토 횡단 전철화가 이루어졌다. 한국 철도의 새마을, 무궁화, 통일, 비둘기호 체계는 1983년 무궁화호가 도입되면서 갖춰지게 됐다. 이후 2004년 4월 1일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이 개통됨으로써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다. KTX(korea Train express)는 최고 300Km/h의 속도로,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조선해방자호는 식당차를 포함하여 총 9량을 증기기관차가 끄는 순수 국산 열차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조선해방자호는 식당차를 포함하여 총 9량을 증기기관차가 끄는 순수 국산 열차였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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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로웠던 기차 내부의 모습(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호화로웠던 기차 내부의 모습.(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기차는  온 나라를 이어주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조선해방자호는 우리 기술로 처음 만든 증기기관차다. 기차는 온 나라를 이어주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출처=KBS 한국의 유산 견문록)


기차는 단순히 승객을 나르는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화물을 수송하는 산업 일꾼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광복, 전쟁까지 두루 겪은 우리나라에서 철도산업의 정착은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외세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는 식민지 착취와 대륙침략의 수단이 되어 시대의 아픔을 안고 달렸으나 그 다음에는 산업화의 주역이 되고 이제는 수송뿐 아니라 여행과 관광의 낭만을 더해주는 교통수단이 됐다.

해방 직후 남한의 총 철도거리가 2114km였던 반면 해방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약 3866km로 거의 두 배에 가깝게 증가했다.(코레일 제공. 2015년 7월 1일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국내 총생산은 통계 자료 분석이 가능했던 1953년 477억원에서 지난해 1천485조원으로 약 3만 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 기술로 시작한 조선해방자호가 이러한 경제 부흥의 시초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1899년 시작돼 이제 100년을 훌쩍 넘겨버린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또 다른 꿈, 통일 한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4일 미래를 여는 새로운 도약을 상징하는 ‘유라시아 특급 열차’가 부산에서 출발해 베를린에 이르는 대장정을 완료했다. 북한 구간을 통과할 수 없어 서울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열차가 달릴 수 없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의 오랜 염원 사업인 통일을 이루어 우리 손으로 만든 또 다른 조선해방자호가 부산에서 출발해 평양을 거쳐 유럽으로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코레일의 철도기념우표첩의
코레일의 철도기념우표첩의 ‘조선해방자호’ 모습.(출처=코레일 홈페이지)


최근 코레일은 우리나라의 철도와 우편 문화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세상을 이어주는 철도, 우표로 만나다’라는 주제로 조선해방자호를 포함하는 우편첩을 만들었다.(2015년 8월 발행). 한번쯤 우리나라 철도에 관심을 가져 볼만할 것 같다.


 

 

이난희
정책기자단|이난희nanhee3@gmail.com
물 흐르듯 세상과 소통하며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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