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저고리를 곱게 입고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절하는 법을 배운다. 1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장구가락 익히기에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도 진지한 배움을 이어간다. 오늘 처음 배운 이들의 휘모리장단이 꽤나 힘차고 흥겹다.
일본에서 한국통으로 유명한 중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가 일본인 관광객들과 함께 안동에서 한국의 전통문화탐방의 시간을 가졌다. 3박4일간(9월25일~27일) 안동예절학교, 선비문화수련원, 도산서원 등에서 전통문화 체험에 나섰다.
구로다 씨는 여행 기획에 직접 참여하며 1년에 한 번씩 한국의 전통문화체험 전도자로 나선다. ‘구로다 후쿠미와 함께하는 안동여행’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이번 여행에는 일본인 관광객 20여 명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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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가 일본인 관광객들과 함께 안동에서 한국의 전통문화탐방의 시간을 가졌다. 3박4일간 안동예절학교, 선비문화수련원, 도산서원 등에서 전통문화 체험에 나섰다. |
한국의 전통문화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강습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장구를 가르쳐준 강사에게는 시범을 청했다. 강사는 시범 요청은 처음이라며 흥겨운 장구가락을 선사했다.
강습이 끝나고 한복을 곱게 개키는 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매우 정갈하게 느껴졌다. 여수, 부여 등을 비롯해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했다는 아사이 사이코 씨는 서툴지만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 예절, 인사를 배우고 싶어서 왔다. 전통음악이 듣기 즐겁고 장구는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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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인터뷰에 응해준 시라이 토요코(왼쪽) 아사이 사이코(오른쪽) 씨, (사진 아래) 모리츠카 나츠키 씨 모녀.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국적, 나이를 떠나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
시라이 토요코 씨는 “한지 만드는 체험 등 쉽게 할 수 없는 체험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 이번 여행에 참여했다. 장구를 배울 때에는 선생님의 카리스마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체험이 매우 즐겁다.”고 여행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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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수련원에서 유교문화와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관광객들이 천 원짜리에 그려진 이황 선생의 초상화를 꺼내보고 있다. |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에서는 16대손인 85세의 이근필 씨가 손님들을 맞아주었다. 이 씨는 28년 전 사별하고 자녀들은 모두 출가하여 홀로 고택을 지키고 있었다. 청력을 잃었다는 그는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도 정성스럽게 종택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한 장씩 손수 적은 ‘의재정아’(義在正我, 의리는 나를 바르게 하는 데 있다) 글귀를 전달했다. 종택에서 관광객들은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80대 어르신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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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 종택을 방문하여 16대 종손인 이근필 씨를 만났다. 이근필 씨는 관광객 모두에게 손수 적은 글귀를 전달했다. |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20대였던 스무 살의 모리츠카 나츠키 씨는 “중학교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며 한국문화에 매우 관심이 있었다. 특히 한국 사극을 보며 양반가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서 어머니께 먼저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며 여행에 참가한 계기를 설명했다.
도산서원으로 이동해서는 이황 선생의 ‘연꽃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의 말씀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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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도산서원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의관을 정제하고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제를 올렸다. |
전교당에서 의관을 정제하고 사당인 상덕사로 자리를 옮겨 이황 선생에게 제를 올렸다. 신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스승으로서 이황 선생께 제를 올린다는 제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관광객 모두 시종일관 조용하고 진지한 자세로 제를 올렸다.
둘째 날 일정에 올해 환갑인 배우 구로다 씨와 동행하며 든 생각은 한마디로 ‘멋있다’였다. 그는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관광객들에게 서원, 향교 등에 대한 빼곡한 지식을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구로다 씨를 비롯해 이 여행객들이 전해준 감동은 무엇보다 타국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그들의 진지한 태도와 자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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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구로다 후쿠미 씨와 가지런히 공수하고 있는 관광객들. 구로다 씨는 일본 내 한국통으로 유명하며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한국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았으며 경기도, 대구 등 관광홍보대사를 비롯 2013 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
구로다 씨는 능숙한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는 “30년을 오가며 생각한 것이 어떻게 한두 마디로 되겠냐?”며 직접 필자의 손을 이끌고 버스에서 내려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서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행을 생각했고 이웃나라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 여겼다. 진짜 한국의 문화가 남아있는 곳은 지방이기에 오래전부터 한국지방문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바른 길이라 생각한다.”며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을 기획했는데 혹시 관광객들이 문화를 배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120퍼센트의 성과였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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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에서 제를 올리고 난 후 기념촬영을 가졌다. 이번 여행은 구로다 후쿠미 씨와 안동시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안동시는 지난 4월 일본 언론사 및 여행사를 대상으로 한 ‘안동관광 서포터즈’ 발대식을 가진 이후 안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안동여행에 함께하며 일본 여행객들의 한국문화 사랑과 정갈하면서도 진지한 그들의 태도에 감사하면서도 또한 부끄러워졌다. 한국인인 필자가 한국문화를 이들보다 과연 더 사랑했는가 하는 것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 타문화를 이토록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는가 하는 점에서 그랬다.
헤어지면서 한국문화를 사랑해줘 감사하단 인사를 이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영 부족한 마음이었다. 스스로 한국문화를 더 소중하게 아끼고 타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을 때 감사 인사 이상의 해갈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날이 어둑해가며 길어져가는 그림자만큼 생각도 길어지는 이별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