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우 손예진 주연의 영화 ‘덕혜옹주’가 55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 덕에 역사 속 실존인물인 덕혜옹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하고 매일같이 고국 땅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덕혜옹주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비극적이지만 안타까운 일제침략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욱 사람들의 애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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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결혼식 사진. |
그런데 이 덕혜옹주가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끝자락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덕혜옹주는 50세가 넘어서야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고국으로 귀국했지만 실어증과 노환으로 치료를 받다가, 1989년에 창덕궁 수강재에서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 고종이 안치된 홍릉 곁에 묻혔다.
원래 덕혜옹주의 묘는 사적 훼손 방지와 문화재 가치 보존을 위해 비공개되고 있지만, 가을 여행주간을 맞이해 11월 30일까지만 특별히 개방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직접 찾아가봤다. 이번 가을 여행주간에 개방되는 미개방 여행지 39곳 중 1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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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명성황후가 함께 합장되어 있는 홍릉. |
덕혜옹주의 묘를 만나기 위해 지난 주말 남양주 홍유릉을 찾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은 사전 제 207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이다. 또 유릉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이다.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침략 야욕이 첨예하게 대립된 시기에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하여 치열한 생을 살아간, 조선의 마지막이자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 명성황후, 순종 등 고난 많았던 대한제국의 비운의 황제와 그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인 셈이다. 입구부터 덕혜옹주의 묘를 임시개방한다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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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잘 안내되어 있어 플래카드를 따라 걸으면 된다. |
덕혜옹주의 묘는 홍유릉 입구에서 뒷산 방면으로 산책로를 따라 2㎞ 들어선 옆에 자리하고 있다. 가는 길에는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꽤 괜찮은 가을여행지라 느껴졌다. 가는 도중 원래 근처에 살아 홍유릉은 자주 방문해 봤지만 특별히 이번 기간에 개방된 덕혜옹주묘와 의친왕 묘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는 남양주 주민도 만나볼 수 있었다. 특별히 가는 길에 마련된 사진전을 통해 덕혜옹주의 출생과 삶,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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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삶을 상세히 알려주는 사진전을 관람하며 따라가보자. |
설명에 따르면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60이 되던 해에 귀인 양씨에게서 얻은 딸로 고종이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 때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로 봉해졌고, 1925년에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신경쇠약의 증세가 보이기 시작되어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의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일방적으로 덕혜옹주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일본 여자와 재혼했으며 딸 마사에는 편지를 남기고 실종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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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의 사랑을 받았지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던 덕혜옹주의 돌사진. |
안타까운 덕혜옹주의 삶을 기리며 걷자 얼마 안가 길옆으로 덕혜옹주의 묘가 보였다. 원래는 비공개라 울타리 너머에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어른 키 높이 정도의 철조망이 둘러져 있어 철조망 너머로 묘역의 일부만 확인 가능했던 곳이 활짝 열려있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덕혜옹주의 묘는 조그맣고 초라해 살아생전의 아픔을 짐작케했다. 묘 앞 비석에는 ‘대한 덕혜옹주지묘’라고 써 있었다.
오랫동안 타국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50세가 넘어서야 고국에 돌아오고 삶이 다 한 이후에나마 아버지인 고종의 묘 근처에 묻혀있는 덕혜옹주를 보며 우리 역사 속 한자락을 꺼내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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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본 덕혜옹주의 묘. |
일부 각색이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역사 속 인물을 꺼내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그에 따라 관심이 이어져 근처에 있는 역사적 현장을 발견해 보는 일은 뜻깊은 일일 것이다.
평소 개방하지 않는 덕혜옹주 묘를 임시개방해 가까이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이 가을, 홍유릉에 잠들어 있는 덕혜옹주의 묘를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진아 jina85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