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라고 하면 인기리에 종방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꽃세자 ‘이영’이 떠오른다. 드라마에서 왕세자는 꽃밭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고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로맨티시스트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선의 왕세자들이 사실은 요즘 청소년들만큼 공부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하나도 둘도 아닌 여섯 개나 되는 ‘예’를 모두 익혀야했기 때문이다. 2016 인문주간 인문도시 강연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 육예’에서 꽃세자도 피해갈 수 없었던 육예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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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세자들은 ‘육예’를 모두 익혔다.(사진=KBS) |
‘인문학, 미래의 희망을 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2016 인문주간이 막을 열었다. 10월 24일~10월 30일, 일주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인문학 관련 행사가 열린다. 대표 행사로는 ‘청춘인문학강좌’, ‘인문공감콘서트’, ‘세계인문포럼’ 등이 있다.
전국 31개 인문도시 및 4개 시민인문강좌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 각 프로그램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다. 인문공감 홈페이지(http://inmunlove.nrf.re.kr)에 접속하면 프로그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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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인문주간 ‘인문학, 미래의 희망을 담다’가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
인문주간 행사 중에는 재밌어 보이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인문도시 종로 : 600년의 전통에서 미래의 길을 찾다’ 프로그램 중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 육예!’ 강연과 공연 ‘태무’를 직접 관람해봤다.
이번 행사는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해 성균소극장 2관에서 진행됐다. 작은 소극장은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첫 순서는 하늘누리 청소년 무용단의 공연이었다. 춘향전을 현대식으로 재창조한 ‘시집가는 날’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다. 고전에 대해 잘 몰라도 앙증맞은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자니 춘향전의 내용이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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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누리 청소년 무용단은 춘향전을 현대식으로 재창조한 ‘시집가는 날’ 공연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
다음으로 ‘육예’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육예란 예절, 음악, 춤, 활쏘기, 말타기, 서예, 수학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세자는 이 여섯 가지를 두루 공부해야했다고 한다.
활쏘기, 말타기는 단지 기술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마하며 예를 배웠다. 특이한 것은 수학인데, 조선시대에도 방정식, 삼각함수인 사인, 코사인 등도 공부했다고 한다. 춤 중에는 ‘문무’와 ‘무무’가 있는데, 강연 중에 무예와 춤을 결합시킨 ‘무무’ 시범도 있었다. 참여자들도 앞에 나와 직접 검을 잡고 무무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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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김은빈(23), 김수빈(23) 씨가 무대에 나가 ‘무무’를 배워보고 있다. |
다음은 아름다운 전통 춤 공연 순서였다. 먼저 전통음악에 맞춰 ‘태무’, ‘장고춤’, ‘교방 부채춤’이 공연됐다. 독무임에도 불구하고 춤이 화려하고 신명났다. 춤과 음악 모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동작이 아름다워 시선을 떼지 못했던 무대였다.
이어서 현대와 전통이 조화된 공연이 있었다. ‘사랑 거즛 말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꽃구경’에 맞춘 춤이 등장했다. 익숙한 곡이 나오자 공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프로그램 진행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것을 생각나게 했다가, 부모님 생각에 눈물 짓게 하는 무대였다.”고 했는데, 공연을 보고난 느낌과 딱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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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춤의 신명나는 음악과 춤사위에 관객석이 들썩였다. |
‘한국사특강’이라는 왕실문화에 대해 배우는 전공 강의 과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서울여대 김은빈(23), 김수빈(23) 씨는 “제일 좋았던 공연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꽃구경’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퓨전 공연이라 쉽게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인문주간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좋은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특히 인문대 학생들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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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것을 생각나게 하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공연이었다. |
필자 역시 ‘육예’에 대해, 전통 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데도 ‘꽃구경’ 춤을 보는데 눈물이 덜컥 맺히는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접하면 무척이나 멀고 어려운 학문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인문주간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보니 인문학이란 아무나 와서 보고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6 인문주간의 주제는 세 가지로 제시돼 있지만, 모든 주제가 우리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그 한 번의 울림이 고단한 삶을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제가 쓰는 몇 줄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생각 몇 조각은 바꿨으면 합니다.
소중하지만 작아서 잊고 지냈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