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중-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영주 부석사를 얘기한다. 신라시대 고승 의상대사의 부석사 창건설화도 귀가 솔깃해지지만 가을이 무르익어갈 무렵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만나는 달콤쌉싸름한 가을의 향기는 내내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 대학이라는 좁은문을 통과하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달려온 아줌마 4인방은 가을 여행주간을 맞아 청량리에서 영주행 새마을호를 타고 부석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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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앞 은행나무 길. |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을 휘감아 돌아가던 기차가 어느덧 풍기역에 도착한다. 영주여객 27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부석사를 향해 달려간다. 종점에서 내려 부석사 매표소를 돌아서면 환상의 은행나무 길이 반갑게 손짓한다.
부석사 앞 은행나무는 10월의 끝자락과 겨울이 찾아오기 전 11월 첫주까지 가지마다 노란전구를 켜고 사람을 반긴다. 세상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그 누구라도 이 길을 걸으면 따뜻한 위로를 전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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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매표소에서 사천왕상이 있는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길. |
아침 일찍 서둘러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도착한 먼 길의 피곤함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 풍경을 오래오래 천천히 꼭꼭 씹어 마음속에 담아놓아야 한다. “와우~” 감탄사 말고는 더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노랗게 불밝힌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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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 들어서자 봉황산을 배경으로 범종각이 보인다. |
도심의 단풍보다 곱고 깨끗하게 물든 단풍 뒤로 보이는 사찰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안양루가 나를듯이 모습을 보이고 안양루 아래 작은 문을 통과하면 의젓하고 듬직한 무량수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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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의 모습. |
고려시대 건물로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건물이다. 봉황산 기슭을 닦아 아미타 부처를 모시고 앉은 무량수전은 안정적이고 아름답다. 요란한 단청도 없이 세월을 품고 있는 모습에 따스한 미소가 보인다.
살짝 올라간 추녀의 곡선과 배흘림 기둥이 주는 안정감. 수많은 사람들의 절실한 발걸음이 넘나들었을 문지방까지도 정겹기 그지 없다. 무엇하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간결한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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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소백산의 능선들. |
무량수전을 등지고 서니 눈앞에는 첩첩산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눈 맞추고 있었을법한 풍경. 2016년 가을 그 풍경속에 ‘나’라는 점을 하나 찍어 완성시켜 본다. 속세의 미움도 원망도 모두 품어 안은 이 순간, 내게도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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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의 왼쪽 언덕에 앉아 있는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풍경. |
해가 쨍한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좋지만, 부석사는 이렇게 단풍이 물들고 떨어질 즈음, 늦가을의 쌀쌀하고 흐린날도 좋다. 시원한 눈맛, 포근한 마음, 향기로운 계절의 냄새까지 깊숙이 들어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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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앞에서 할머니들이 팔고 있는 사과 ‘홍옥’이다. |
부석면에서부터 부석사 일주문앞까지 온통 사과밭이다. 봄에는 하얀 사과꽃이 만발하고 가을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다. 아삭~ 하고 깨물면 입안 가득 퍼지던 새콤달콤하던 맛이 기억나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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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의 은행나무. |
가을은 가을은 빨간색 단풍나무 보세요~
아니아니 가을은 노란색 은행나무 보세요~
아니아니 가을은 파란색 높은 하늘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무슨색~ 빨강 노랑 파랑색~
부석사의 은행나무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면서 엄마들이 흥얼거리던 노래다. 사십년 전 불렀을 그 노래를 부르며 서로 흐뭇하게 웃었다.
세월을 거슬러 돌아간 것일까~
아니아니 부석사의 아름다운 풍경이 엄마들의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서일 게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행복한 가을여행을 마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충전이 되었으니 다시 씩씩한 대한민국 아줌마로 돌아간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황원숙 sinsa196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