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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공무원, 밤엔 ‘맥가이버’

[생활 속 작은 영웅] 부산구치소 보일러 공업주사보 김동주 주무관

2016.11.09 정책기자 홍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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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의 습격으로 부모님이 살해당한 뒤 고독하게 고담시를 지켜온 ‘배트맨’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착한 사람을 돕고 악한 사람을 골려주던 ‘아멜리에’를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복마전은 현실에서도 펼쳐지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일’하는 배트맨이나 아멜리에 같은 사람들의 쉼 없는 노력 덕분에 그래도 세상은 지탱되는 게 아닐까?

물론 배트맨처럼 실체 분명한 악을 구축한다든가 아멜리에처럼 일부러 숨어서 은밀하게 타인을 돕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그리고 사심 없이 타인을 돕던 분들의 선행을 발굴해 시상하는 자리가 있다. 바로,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의 ‘생활 속 작은 영웅’ 시상식이다.

‘생활 속 작은 영웅’ 수상자들.
‘생활 속 작은 영웅’ 수상자들.

어느덧 3회째를 맞는 ‘생활 속 작은 영웅’ 시상식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S타워에서 열렸다. 올해의 작은 영웅은 정부기관과 시민단체의 추천이나 자천으로 응모한 108명의 후보자 중 2차례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44명이 선정됐다.

△서초 교대역에서 흉기를 들고 위협하던 범인을 손을 다치면서까지 제압한 용감한 시민 다섯 명(변재성, 송현명, 이동철, 오주희, 조경환) △17년 동안 지팡이 4천여 개를 만들어 노인들에게 제공해 온 설재천 씨 △본인은 지하 월세방에 살면서도 12년 동안 급여 2억8천만 원을 기부해 독거노인을 돕는 정영찬 씨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년소녀 가장 장학금 기부와 독거노인 생일상 차려드리기 등의 나눔을 실천해 온 최필금 씨 △공업주사보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엔 주민들의 보일러와 전기설비를 살피던 김동주 씨가 올해의 작은영웅들이다.

시상식이 끝난 뒤 수상자 중 한분인 김동주 주무관으로부터 생생한 봉사이야기를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퇴근 후 맥가이버로 변신하는 김동주 주무관.
퇴근 후 맥가이버로 변신하는 김동주 주무관.

Q. 부산구치소에서 보일러를 관리하는 공업주무관으로 근무하신다 들었습니다. 퇴근 후엔 ‘맥가이버’로 변신해 인근 주민들을 돕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맥가이버라뇨. 듣기 부끄럽습니다.(웃음)

개인적인 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주변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받은 만큼은 되돌려 드리자’는 마음으로 성당 지인들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알음알음 건네 듣고 돕던 중 정말 딱한 사정에 놓인 분을 알게 됐습니다.

90년대 초니까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네요. 남편과 사별한지 얼마 안 된 아주머니가 두 아들과 보일러 없이 한파를 나고 있었어요.

직접 방문해 보니, 무허가 건물이라 전기설비는 거의 안 돼 있었고 연탄보일러는 가스중독이 두려워 켤 엄두를 못내 전기장판에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연가를 내서 전기설비에서 전기보일러, 부엌 싱크대 설치까지 일주일에 걸쳐 작업을 했습니다. 첫 보일러 설치 봉사였는데 겨울작업이라 더 힘들긴 했지만 보람이 컸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체계적으로 냉난방시설을 설치하는 ‘보냉가설 봉사단’에도 가입해 꾸준히 활동하게 됐고요.

동네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김동주 주무관.
동네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김동주 주무관.

Q. 사비를 들이는 건 기본이고 휴가까지 내서 봉사하시는데 정말 겸손하신 것 같아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이 있나요.

A. IMF금융위기 직후였는데, 사업실패로 가장이 자살해 시아버지를 모시고 딸과 셋이 사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전기가 끊겨 딸아이가 초를 켜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곧바로 한전에 연락해 지원방법을 묻고 밀린 일 년 치 전기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계량기 같은 전기설비 공사는 위험해서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 일을 계기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봉사활동으로 만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은 무척 많은데 처음 보일러 공사를 했던 집의 두 아들과는 아직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멘토 역할을 할 정도로 각별합니다. 사춘기 때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훌륭하게 잘 성장해 교사와 사회복지사가 됐어요. 이럴 때 가장 보람있고 뿌듯하죠.

김동주 주무관의 손길이 닿으면 고장난 가전기기에 새 생명이 돋는다.
김동주 주무관의 손길이 닿으면 고장난 가전기기에 새 생명이 돋는다.

Q. 봉사를 위해 자격증까지 취득하시다니, 열정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보일러 외에도 장판이나 도배, 싱크대, 물탱크, 가전제품 같은 생활 속 각종 설비에 손볼 곳이 많더라구요. 자격증은 그때그때 필요한 걸 따다보니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아직도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 많고 취득해야 할 자격증도 많은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진 꾸준히 공부하면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힘들긴 해도, 작업을 마치고 나면 보람이 더 큽니다. 서로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 열심히 돕고 싶네요.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지만 이들이 ‘영웅’적일 수 있던 건 실천하기 쉽지 않은 ‘순수하게 타인을 위하는 봉사’를 행해서다.

김동주 주무관과 인터뷰를 하면서 문득 미미 레더의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가 떠올랐다. 영화에서처럼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세 명의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면, 선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봉사 행위보다 무언가를 받았을 때 보답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인간관계의 신뢰도를 높이고 사회를 밝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생활 속 작은영웅’의 시상인원이 해매다 조금씩 늘고 있다는데 다음 해엔 얼마나 더 풍성한 미담으로 어떤 작은 영웅들이 발굴될지 궁금해진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김동주 주무관 덕에 직접 도움을 얻은 이웃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의 마음에도 온기가 전해졌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홍영의 nyrdagur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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