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누군가 당신에게 ‘이 날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젓거나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칠 것 같은 11월 17일은 제2의 현충일이라고 불리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정과 일제강점기 때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순국선열(殉國先烈)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순국선열은 국가보훈처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로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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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순국선열의 날에 맞춰 진행된 사전행사 모습.(출처=국가보훈처) |
정의를 살펴보면 약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자 중에서 국가로부터 표장을 받은 자’로 이해하면 쉽다. 대표적으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인 이회영 선생 등이 있다. 그렇다면 왜 순국선열의 날은 11월 17일이 됐을까?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자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된 날이다. 외교권을 빼앗겨 을사조약 이후 외국에서 대한제국이라는 국가가 사라져버렸다.
이에 임시정부는 1939년 11월 21일,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를 개최했는데, 지청천 장군 등이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殉國先烈共同記念日)’로 제안했다. 을사조약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 날은 1997년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정부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필자는 보훈처 기자로 활동하며 올해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추모식 현장을 누볐다. 3·1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탑골공원에서 3·1독립운동 희생선열 추념식을 시작으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일(1932년 4월 29일)에 맞춰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취재를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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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국민들.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탐방으로 장안과 낙양, 한단 등을 다니며 중국에 묻혀있는 윤세주, 진광화 열사의 묘소를 돌아보기도 했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터와 조선의용군이 활동했던 지역을 돌아다니며, 항일무장투쟁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최근에는 강우규 의사 의거 기념식과 이봉창 의사 추모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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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에 진행된 이봉창 의사 추념식. |
추모식과 기념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3·1운동 기념식에서 다 같이 만세삼창을 했을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취재를 할 때는 서울 양재 시민의 숲 인근에 이런 기념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부끄러웠다.
국외독립사적지 탐방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사적지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사실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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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단에 위치한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 |
이렇듯 많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필자가 취재하러 갈 때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고, 필자 또래의 청년들이 거의 없어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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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 의거 97주년 기념식후 찍은 단체사진. 청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국가보훈처는 올해 ‘보훈은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 호국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슬로건으로 호국보훈의 달에 많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웅들을 알렸다.
위 슬로건에서 보다시피 보훈은 살아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조국의 광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순국한 모든 순국선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거룩한 희생을 한 순국선열들에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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