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를 발굴하고 과거의 모습에 맞게 다시 복원하며, 유물의 역사적, 예술사적 배경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무척 관심 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마침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보존처리 현장공개행사 ‘생생보존처리데이’에 지난달 24일 정책기자단으로 참석하게 됐다. 문화재가 보존처리되는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내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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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센터에 들어서니 건물 복도나 벽 곳곳에 센터에서 보존처리한 문화재 사진들이나 작업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금동관모가 보존처리되기 전후 모습을 보니 ‘캬~’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평소에 보던 문화재들 중 이곳을 거쳐간 것들이 참 많았을 텐데, 문화재보존처리 현장공개행사 생생보존처리데이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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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보존처리된 금동관모(위), 경천사 10층석탑(아래 왼쪽)과 울진 봉평 신라비(아래 오른쪽). |
문화재보존센터는 1969년 보존과학반에서 시작해 2009년 신설된 곳으로 문화재 조사, 연구, 상태점검, 보전처리, 복원 등을 하는 곳이다.
문화재는 재질에 따라 금속, 도자기, 석재, 벽화 또는 지류, 회화, 직물, 목재로 분류되며, 보존처리과정은 처리 전 조사 및 분석, 세척, 안정화 강화 처리, 손상부분 접합, 결실부분 복원, 색맞춤, 보관상자 제작, 기록관리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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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방문 전 센터에서 보존처리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는 정책기자단. |
현장 방문 전 센터에서 간략하게 소개를 받고 본소로 이동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이 보존처리되는 현장을 보았다. 원래 센터에서 작업이 이뤄지는데 이 탑은 워낙 커서 따로 작업한다고 한다.
창고처럼 뻥 뚫린 넓은 공간에 석탑이 해체돼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석탑이 놓여있는 나무판에는 해당 부분에 대한 정보들이 붙어있다. 마치 조립식 장난감처럼 해체된 모습을 보니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다. 1085년에 만들어진 탑이 벌거벗겨진 채 놓여있는 것 같았다. 전체 부재는 33개, 작은 건 몇 백kg부터 큰 덩어리는 3천kg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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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보존처리 현장. |
통일신라 말, 강원도 원주에 법천사지가 창건되고 탑은 이후 1085년에 만들어졌다. 고려시대 국가에서 최고의 승려에게 내리는 ‘왕사(王師)’,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984~1067)의 사리탑이다. 경천사 10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이 탑 역시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일본인이 탑을 사서 서울 명동에 있는 개인병원에 옮겼단다. 다시 매매되어 일본으로 팔려나가 어느 남작의 묘에도 있었고, 다시 돌아왔지만 원래 있었던 법천사지에 자리하지 못하고 1990년까지 무려 9번이나 떠돌았다.
한국전쟁 때 폭탄을 맞아 상부가 파손되고 이 때 한 번 수리복원 됐다가 1981년에 해체 이전된다. 그리고는 1990년 경복궁에 있다가 국립고궁박물관 뒤뜰로 또 옮겨지는 등 수난의 역사를 가진 탑이다. 올해 3월 전면 해체돼 보존처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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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석(위, 왼쪽), 하층기단 갑석(위 오른쪽), 옥개석(아래 왼쪽). |
탑신석에는 동그란 구멍이 있다. 이곳에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해체하면서 열어보니 사리는 이미 없어졌다고 한다. 중요한 것들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버린 셈이다. 문화재가 이리저리 밀반출되면서 떠돌고 있을 때 없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개석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산산조각 났던 부분이다. 옥개석을 자세히 보니 부서진 부분을 시멘트로 발라놨다. 보수할 당시에는 기술이 없었던 걸까, 의식이 없었던 걸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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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갈라지고 훼손이 심한 옥개석 부분. |
센터에서 보존처리할 때는 똑같은 재질의 암석을 찾아 그 모양 그대로 접착할 예정이다. 지저분해진 오염들은 제거하고 희미해진 문양들도 복원하고, 구조적으로 힘을 받을 수 있도록 복원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2019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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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클리닝 시연 장면. |
한쪽에서 레이저 클리닝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대리석 같은 암석에 오염물질이 있을 때 제거하는 방법으로 어떤 오염이냐에 따라 레이저 기구도 다르게 사용한다.
이 기계는 마치 피부과에서 점 빼는 원리랑 다를 바 없다는! 드드드 소리와 함께 레이저가 나오고 레이저가 지난 곳은 깨끗하게 오염물질이 제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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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유물과 회화가 보존처리되는 과정과 3D스캐너 장비 시연 모습. |
본소를 나와 센터 곳곳을 둘러봤다. 처음으로 간 곳은 금속실로 매장문화재인 위 금속 신발에는 사람 뒤꿈치 뼈까지 붙어있었단다. 더 이상 부식되지 않도록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다.
회화가 보존처리되는 것도 보았다. 벽화 중에서 뜯어서 올 수 있는 것들도 여기서 처리된다. 육안으로 보면 원 그림만 보이지만 적외선 램프와 카메라를 이용해 비춰보니 뒤에 숨어있던 밑그림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3D스캐닝 작업도 지켜보았다. 예전에는 이 도구로 야외문화재 등을 기록해왔고, 장비가 많이 보급된 요즘은 사진만으로도 3D데이터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여기서 본 스캐너로는 주로 소형 유물을 찍고 있다. 보존처리 전후 상태를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데, 앞에 있는 유물에 스캐너를 스치면 수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형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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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처리 중인 문헌과 일월오악도(위), 중요민족문화재 218호 정온 가의 유품들(아래) |
마지막으로 지류직물실에 들렀다. 정책기자단이 방문했을 때는 문헌을 보존처리하고 있었다. 바로 일월오악도! 창덕궁 인정전에서 봤던 그림이다. 여기서 이걸 보다니! 신기한 건 일월오악도 뒷편에 글씨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는 사실. 과거시험지란다. 일종의 이면지 재활용이다.
중요민족문화재 218호 정온 가의 유품인 풍차도 보존처리 중이었다. 머리에 쓰는 모자인데 남바위가 그냥 모자라면, 풍차는 볼까지 내려온단다.
자로 길이를 재고 하나하나 실을 붙이는 등 섬세한 작업들이 진행 중이었다. 문화재에 대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이런 작업을 하려면 성격도 맞아야 할 것 같다. 손길 하나하나에 깃든 차분함이 대단해 보였다.
생생보존처리데이에 방문하면서 문화재 보존처리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좋았지만, 문화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돼 더 좋았던 하루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현정 train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