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시행 이후 ‘대한민국에 깊게 뿌리내린 부패를 척결할 법률’이라는 찬사와 ‘시행기준이 모호하고 인간적인 정마저 사라지게 만든다’는 지적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청탁금지법은 역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패에 노출돼 있고, 그것에 익숙해져 왔는지를 새삼 느끼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껏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감사의 의미로 주고받던 선물들조차 신경쓰이는 요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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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반부패·청렴 콘텐츠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된 서울 명보아트홀. |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청렴이라는 두 단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2월 8일, 서울 명보아트홀에서 진행된 ‘2016 반부패·청렴 콘텐츠 공모전 시상식’이 바로 그곳. 국민권익위원회 기자단으로 2년 여를 활동하며 청렴에 대해 많은 것을 익힐 수 있었던 필자였지만, 이곳에서 만난 청탁금지법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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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놓인 ‘청렴’ 이라는 단어가 더욱 눈에 띄는 요즘이다. |
이번 공모전은 다른 공모전과는 다른 참신한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1차 수기 공모를 진행해 다른 콘텐츠 제작의 소스를 마련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1차에서 접수된 수기들 중 우수사례를 선정해 2차 웹툰, UCC, 극대본, 문화공연으로 재창작해 콘텐츠의 질을 올렸다. 3차 독후감 역시 해당 사연들을 읽고 작성하도록 해 더욱 많은이들에게 청렴의식이 전파되도록 안배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오프닝 공연에 이어 국민권익위원회 김범일 청렴연수원장의 공모전 경과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23일부터 11월 11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2016 반부패·청렴 콘텐츠 공모전은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겪은 청렴 경험에 대한 수기, 독후감, 콘텐츠(영상·웹툰·극대본), 문화공연 등 6개 분야 총 1,493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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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는 학생 수상자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
이 작품들 중 해당 분야 교수 등 전문가의 객관적이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기 23편, 웹툰 12편,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영상 11편, 극대본 12편, 독후감 38편, 문화공연 분야 8편 등 총 10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범일 청렴연수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이 접수돼 청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향후 선정된 수상작을 별도의 수상작품집으로 발간하여 각급 공공기관에 배부하고,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홈페이지(www.acrc.go.kr/edu)와 공모전 홈페이지(www.integritycontents.kr)에 게시하여 앞으로의 청렴교육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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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대상 - 구설영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 |
이어 이번 2016 반부패·청렴 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한 청렴 콘텐츠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번째 순서로는 수기를 읽고 작성한 독후감 부문의 대상인 구설영 씨의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을 전문 성우의 낭독과 다양한 사진, 자막으로 구성한 영상으로 재창작해 감상할 수 있었다.
사슬에 묶인 코끼리처럼 과거의 부패에 대한 경험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표현 한점이 인상깊었다. 또한 한 젊은이가 100만 원을 뇌물로 제시했다가 경찰이 이를 거절하자, 당연한 듯 100만 원을 더 제시했다는 사례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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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스케이프 팀의 ‘웰컴 투 청렴아일랜드’ |
두번째 순서는 1부의 마지막 순서이자 하이라이트인 연극 부문 대상 수상작 이스케이프 팀의 ‘웰컴 투 청렴아일랜드’였다. 실제 공모전 수상작들을 많은 국민들 앞에서 시연한다는 것도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다. 연극은 수기 부문 최우수작인 김관주 씨의 ‘청렴보신탕’을 공연으로 재창조 한 작품이었는데, 보길도에서 펼쳐지는 당숙과 주인공의 갈등을 유쾌하면서도 알차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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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갈등은 당숙이 구렁이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
간단하게 줄거리를 살펴보면, 방학을 맞이해 고향인 보길도에 내려온 주인공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자연환경 안내원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홀로 지내는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는 당숙이 있는데, 당숙은 늘 주인공에게 ‘사람은 유도리있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며 주인공의 부모님이 너무 청렴해 ‘대쪽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의 집에서 구렁이(멸종위기생물 1급)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당숙과의 마찰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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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이 구렁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돈을 건넨다. |
당숙은 건강이 좋지않다며 구렁이를 보신용으로 잡아 먹으려하고, 자연환경 안내원인 주인공은 이를 말리며 다툼이 일어난다. 기어이 당숙은 주인공에게 ‘용돈’이라며 돈을 건네고 주인공은 완고한 당숙의 태도에 못이겨 돈을 받고 만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양심과 지금껏 봐왔던 부모님의 청렴함에 당숙에게 돈을 돌려주고 진심어린 편지로 공직자로서 원칙을 지켜야하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이에 당숙은 깊게 반성하여 구렁이를 놓아주고 다시금 주인공과 화해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30분의 짧은 연극이었지만 공직자로서 청렴을 관철하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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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윤지현의 ‘청렴은 가장 멋진 유산’ |
연극공연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 되고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전시된 웹툰 수상작들을 감상했다. 대상 수상작 윤지현 씨의 ‘청렴은 가장 멋진 유산’은 남편을 여의고 힘들게 직장을 구해 일하던 한 아내가 ‘윗사람에게 선물을 건네는 동료'에게 직위를 빼았겼음에도 청렴했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고 결국 꾸준함과 청렴함을 인정받아 회사의 위기에서도 살아남고, 청렴의 소중함을 깨닫게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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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나뮤배 팀의 뮤지컬 ‘최고의 처세술’ |
이어 시작된 2부에서는 문화공연 우수상 수상작인 나뮤배 팀의 뮤지컬 ‘최고의 처세술’이 진행됐다. 배우들의 멋진 노래와 1인 다역이 이어지며 보다 즐겁고 감동적인 공연이 진행됐다.
힘들게 얻은 직장이 편법이라는 이름 하에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이 사장에게 직언을 했다가 해고당하고, 새로 면접까지 간 직장에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에 망설이다 ‘청렴이 중요하다’라는 답변을 한 후 극적으로 취업에 성공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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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노래로 멋진 뮤지컬이 완성됐다. |
세상을 살다보면 처세가 중요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모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그렇다보니 나뮤배 팀의 뮤지컬 내용이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청탁금지법의 체계적인 시행과 국민들의 관심 및 노력이 더해진다면 언젠가는 뮤지컬의 내용처럼 청렴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당연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시상이 진행됐다. 국민권익위원회 성영훈 위원장은 “전시와 공연을 보며 큰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청탁금지법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청렴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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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일반인, 학생, 군인 다양한 수상자가 눈길을 끌었다. |
분야별 시상식에서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일반인, 군인,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국민들이 상을 받았다. UCC 부문 수상자인 고윤한 씨는 “평소에는 청렴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청렴이라는 단어도 낯설었는데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 청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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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더욱 청렴해지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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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을 통해 청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청렴지수는 아직은 평균 이하 수준이라고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청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 모두가 청렴함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청백리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작은 부정부터 멀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현장을 누비는 열정 가득한 정책기자입니다.
다양한 정부부처 기자단 경험과 장관상 5회 수상의 경험을 살려
더욱 생생하고 정확한 정책기사를 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