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기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노골적이다. 세뱃돈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있었다. 십몇 년을 살아온 나름의 경험인 게다. 저러는 게 맞나 싶지만,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2017년, 본격적인 새해가 코앞이다. 정식으로 고향을 찾아 새해인사를 나누는 음력설 말이다. 그 귀한 설 연휴가 올해는 1월 안에 있어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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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다.(출처=공감포토) |
설 즈음이면, 역시 세뱃돈이 화두다. 은행에선 신권과 세뱃돈 전용 봉투가 등장하고, 어른들은 신권을 구하느라 분주하다. 포털에선 ‘세뱃돈 많이 받는 법’이나 ‘세뱃돈 뺏기지 않는 방법’, ‘나이를 입력하고 표정을 비추면 세뱃돈을 얼마 받을지 예측해주는 앱’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세뱃돈을 줄 어른들도 생각이 많아진다. 주긴 줘야 하는데 얼마를 줘야 하는지 고민일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중학생, 혹은 대학생이 됐다면 얼마를 줘야 하는지,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줘야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더불어, 세다 지칠 정도로 조카가 많다면, 적지 않은 출혈이 예상된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직장인들은 세뱃돈으로 평균 17만1,000원을 계획하고 있다. 대상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부터 대학생까지로 초등학생 만 원, 중고등학생 3만 원,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은 5만 원 이상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혼에 연령대가 높을수록 경우 예상 지출액도 올라갔다.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5,000원 단위로 2, 3만 원어치만 해도 많아 보이고,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명절 전에 문화상품권 매출이 급증하기도 한다.
세뱃돈을 기대하는 초등학생 생각은 달랐다. 2,500명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63%가 희망 세뱃돈 액수로 5만 원 이상이라 답했다. 3만~4만 원도 11%나 됐으니, 3만 원 이상을 노리는 아이들이 10명 중에 7명이란 소리다. 이쯤 되면 분명해진다. 신권 3만 원보다 구겨진 5만 원을 더 좋아할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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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은, 잡귀를 쫓고 부를 부른다는 붉은색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주는 중국의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
세뱃돈의 유래를 거슬러 오르면 중국이다. 붉은색이 잡귀를 쫓고 부(富)를 부른다고 생각해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주는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조선시대, 떡이나 과일을 주고 받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0원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세뱃돈의 단위가 달랐다.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까지다. 고액의 현찰이 무리인 어린 아이들에겐 주식으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거액의 세뱃돈 때문에 아버지와 살인도 벌어진다니, 후덜덜하다.
세뱃돈 금액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을까. 화폐경제가 정착된 1960년대 세뱃돈은 ‘10원’이었다. 왕사탕 5개에 1원이었으니, 지금의 만 원쯤이다. 짜장면이 30원 하던 70년대, 초등학생의 경우 지금의 1만7,000원 정도인 ‘100원’의 세뱃돈을 받았다. 좀 사는 집을 대상으로 통계를 낸 게 틀림없다.
1982년, 지폐였던 500원이 동전으로 바뀌면서부터다. 세뱃돈이 ‘1천 원’으로 급격히 인상됐고, 물가 급등으로 ‘5천 원’ 대에 진입한 것은 80년대 중반이다. 90년대, ‘1만 원’ 권이 자리 잡았지만, 97년 IMF경제위기로 98년 설에는 1천 원 짜리가 재등장 한다. 하지만 2009년, 5만 원 지폐가 생기면서 세뱃돈계에 ‘5만 원’ 권이 출현한다. 물론, 지금도 그리 보편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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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설 세뱃돈을 1천 원으로 정착시킨 결정적 요인은 500원 지폐가 사라진 데 있었다.(출처=기업은행 블로그) |
집집마다 세뱃돈에 얽힌 갖가지 사연이 있을 거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지 코가 어디 붙었는지 알 때부터 시작한 세배. ‘원래 엄마 주는 거야’로 시작해 ‘널 위해 쓰겠다’는 말로 이어지다, 십일조를 떼듯 살며시 떼어줬다. 10살 까지, 세뱃돈 덕에 작은 기쁨을 누린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다. 세상을 알아가던 아들 녀석이 세뱃돈 사수를 시작했다. 5만 원 신권을 조신하게 나열해 카스(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친구 덕에 공격적으로 변했다. 눈빛이 살벌해진 아들 녀석과 세뱃돈에 얽힌 다채로운 과오를 겪은 후부터 ‘잘났다. 다 가져라’ 했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은 한 번에 갖기 어려운 목돈이다. 때문에 설은 자녀들에게 합리적인 소비법을 알려줄 기회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생각한 뒤 저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절약하려는 마음과 함께 경제관념도 생길 수 있다. 지나치게 저축을 강요하면 저축 빼고 다 할 지 모른다. 최근에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세뱃돈 관련 금융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으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어르신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올리고, 어른은 듣기 좋은 덕담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본래의 의미를 잊지 말자.
세뱃돈, 부담 되는 게 사실이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조카들에게 기분 좋게 용돈 주는 날이라 생각하자. 올해도 어김없이 덕담을 나누고, 함께 떡국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풍경에 감사하며 말이다.